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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7. 2017

10. 진짜 공부를 하려면 (마지막 회)

<백만장자와 함께한 배낭여행>



“그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합니까?”
“난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 좋아요. 빗소리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에스토니아 탈린의 호텔 창가에서 비 오는 거리를 내다보며 선생이 말했다. 내가 다짜고짜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선생이 나를 기가 차다는 듯 넘겨다보더니 픽 웃는다.

“주식 투자하는 방법이나 각종 세금과 회계, 부동산 관련 지식, 호텔의 구조, 식물의 이름, 가구의 종류…. 이번 여행하면서 보니 엄청나던데요. 그걸 다 어떻게….”
“강 국장님은 좋은 대학을 나왔고, 나는 학력이 별 볼 일 없는데, 신기하다, 그거죠?”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선생이 다시 창밖을 묵묵히 바라보다 로비로 내려가서 커피 한잔하자고 했다. 비가 오는데 밖은 너무 추웠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놓자 선생이 입을 열었다.

“강 국장님, 죽은 공부를 해서는 곤란해요.”
“네?”
“그냥 무작정 책에 있는 지식을 머릿속으로 집어넣는 공부는 죽은 공부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인 거죠.”
“….”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신이 보기에 대한민국의 교육은 매우 기형적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하는데, 막상 세상에 나오면 직장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거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동기가 전혀 부여되지 않은 공부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공부가 좋아서, 세상에 유익한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은 제대로 된 공부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결국은 교수가 되어 편하게 살고 싶어 대학원 공부하는 거고, 좋은 직장, 멋진 차 타고 다니고 싶어서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 게 거의 전부잖아요. 내가 보니 뭐 대단한 교양을 갖춘 것도 아니고, 그냥 간판만 이마에 걸고 다니던데요. 그런 공부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대다수 가정은 돈을 내다 버리다시피 하지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던가요?”

교육 문제는 꽤 오랫동안 고민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이 잘못 돌아간다는 건 안다. 각 가정의 사교육비는 생계를 위협하고 노후를 망가뜨리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다른 인생행로를 모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 좋은 대학 보내기’에 모든 것을 건다. 그렇게 하면 성공할 확률이라도 높아야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입시에서 낙오하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 취업에서 낙오한다. 100명 중 한 명 정도가 살아남는 수준이다. 치킨런 게임.

대화 중에 무언가 서로 기억하고 있는 지식이 다른 경우, 우리는 흔히 농담처럼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에게 물어봐.” 네이버 지식인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 농담 속에는 우리 교육에 대한 서늘한 풍자가 묻어 있다. 한 가정의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아무리 열심히 교육을 시켜도 네이버 지식인 하나를 못 당한다는 뜻이니까.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을 보면, 앞으로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은 거의 모두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동화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것도 머지않은 미래에. 이런 마당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암기식 교육, 문제 풀이식 교육에 바쳐야 하는 걸까.

그걸 막겠다며 내놓는 대안이 수능 절대평가라고 하지만, 그 역시도 자세히 보면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수능 대신 내신이 중요한 대학 입시의 변별 요인이 되는 까닭인데, 내신이야말로 달달달 암기식 학습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작은 시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의 실력을 변별하기 위해서 학교의 선생님들은 어쩔 수 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수 있는’ 지식을 외워야만 풀 수 있게 문제를 내기 때문이다.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선생은 살아 있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 진짜 공부는 몸으로 하는 공부, 몸에 새기는 공부라고 했다.

“오늘 기사 봤지요? 이제 해운업과 조선업 쪽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 조선학과 같은 곳을 나오면 취직이 되겠어요?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바뀝니다. 부모들이 옛날 생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아이도 망가지고 가정도 망가지는 거지요. 교과서에 쓰여 있는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를 시켜서 그래요. 그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보고 필요를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해 들어가는 훈련을 시켜야 하는 거죠. 그러면 아이가 강해지는 거예요.”

선생은 아이에게 공부만 시키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부모가 다 해주는 것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아이에게 독이 된다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합니까?”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자 선생의 현명한 답이 돌아왔다.

“지금 내가 강 국장님에게 가르치는 방법으로 공부를 시켜야죠. 강 국장님이 이번에 여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있나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더듬더듬 열차표를 끊고 숙소를 찾아야 하죠. 낯선 관광지나 식당에 가기 위해 구글의 네비게이션을 다뤄야 하고요. 처음에 보니 잘 못 하데요. 그러다가 점점 나아진 거죠. 그게 배우는 거예요. 이번에 우버도 타봤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강 국장님에게 들려주고 있고요. 강 국장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그건 그랬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내가 직접 낯선 곳에서 A부터 Z까지 다해야 한다는 것과 선생으로부터 세상에 대해 듣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공부’였다.

그리고 드넓은 세상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가는 것은 그저 덤일 뿐이었다.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일 게다.

아이에게 진짜 공부를 하게 하려면, 부모의 심장이 더 튼튼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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