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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7. 2017

08. 외도 아닌 외도, 기악곡의 쾨텐 시대

<클래식에서 리더의 언어를 배우다>



음악을 과학으로 만들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깊은 신앙심을 가진 바흐가 교회에서 잠시 멀어져 세속적인 기악곡들에 집중했던 시기이다. 쾨텐은 작은 도시였지만 바흐는 궁정 악장이라는 지위가 맘에 들었다. 악기와 연주자가 갖추어진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시험하며 자유롭게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시기였다. 열 식구 남짓의 다복한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서 이곳의 안정적인 생활 여건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1717년, 쾨텐으로 이주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9월에는 프랑스의 루이 마르샹과 거액의 상금을 걸고 오르간 경연을 펴기로 했는데 마르샹은 남몰래 바흐의 오르간 실력을 확인한 뒤 결국 경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흐는 기권승을 거두긴 했지만 빈손으로 귀가해야 했다. 11월에는 불어난 식구들과 살아가기에는 너무 열악했던 바이마르의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 면직을 요구했는데, ‘명령 불복종’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한 달 가까이 옥살이를 했다. 바흐가 평생에 딱 한 번 치룬 옥고의 추억은 구금 당시 집필을 시작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에 담겨 있다.

연말부터는 작센 지방의 쾨텐에서 궁정 악장을 지냈다. 쾨텐의 군주 레오폴트는 스물세 살의 젊은 영주였는데 미성의 테너였다. 그는 직접 궁정 악단에 참여하여 비올라다감바(16-17세기에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저음부의 현악기다.) 또는 쳄발로를 연주할 정도로 실력 있는 아마추어 음악인이기도 했다. 17명 정도의 기악 연주자로 구성된 쾨텐 궁정 악단을 위해 바흐는 수많은 기악 명곡을 썼다. 안정적 생활 여건과 음악 애호가 영주의 지지에 힘입어 바흐의 창작욕은 그 어느 때보다 왕성했다. 3개의 <바이올린 협주곡(Violin Concerto)>,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Unaccompanied Violin Sonata)>, <무반주 첼로 소나타(Unaccompanied Cello Sonata)>,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 Concertos)> 등을 탄생시킨, 기악곡의 최절정기였다.

안락한 생활이 이어지던 중 바흐를 절망케 한 일은 아내 마리아와의 사별이었다. 1720년, 13년 동안 헌신하며 곁을 지키던 아내는 바흐가 음악 여행을 간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바흐는 이듬해 겨울 새로운 배필을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는데, 상대는 쾨텐 궁정의 소프라노 가수 안나 막달레나였다. 그녀는 스무 살에 결혼하여 자녀 일곱을 낳았다. 애석하게도 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궁핍한 생활을 하다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마리아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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