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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7. 2017

06. 어머니의 칼

<빗소리 몽환도>



어머니는 여러 개의 칼을 남기셨다. 어머니가 남긴 유물인 칼들이 바닥에 놓여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스스로의 금속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앙증맞은 과도는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듯이 웅크리고 있었고, 일제 식칼은 선택해준다면 멋진 칼솜씨를 보여주겠다고 벌렁 자빠져 건방진 포즈를 취했다. 칼들은 어머니의 재산목록 1호에 속했던 거였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무 손잡이로 만들어진 뭉뚝하고 음험한 식칼에 손이 갔다. 코끝 가까이에 두고 그 식칼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미제도, 일제도, 쌍둥이 칼도 아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칼날이 둔탁해 보였고 무지막지하게 촌스러웠다. 코에 가까이 댔다. 어떤 냄새가 푹 배어 있었다. 베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냄새를 또 맡아보았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이고 메슥거렸다. 지독했다. 그건 마늘 냄새도, 채소 냄새도, 음식 냄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의 냄새였다. 반세기 동안 내 목구멍으로 넘어갔던, 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무수히 죽임을 당했던 소뼈, 닭뼈, 소갈비뼈, 북어 대가리와 돼지껍질의 냄새였다. 그 칼은 우리 가족의 맥을 이어가게 하고,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업보를 만들고, 수없이 많은 죽음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입에 들어갔으니 우리도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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