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11. 2016

03. 왜 그들은 똑같은 것만 생각했을까?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당신은 공대 고학년생이다. 당신과 과 친구들은 지금 제품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쪽지시험을 앞두고 있다. 과제 발표를 기다리며 당신은 두 손을 비빈다. 어떤 과제를 주든 멋진 결과물을 내놓을 자신이 있다. 종이의 구김을 펴고, 제도용 연필을 가지런히 놓는다.

     
과제가 발표된다. 차량용 자전거 거치대를 디자인하라고 한다. 다양한 요구 사항이 있지만, 핵심은 차량에 쉽게 부착할 수 있고 자전거를 올려 두기에 편한 거치대를 만드는 것이다. 시험관이 시판되고 있는 차량용 거치대를 보여 준다. 자동차 지붕 위에 자전거를 싣는 형태의 비효율적인 거치대다. 차량 지붕을 가로지르는 금속제 튜브에 자전거 바퀴를 끼우게 되어 있다.
     
시험관은 시판되고 있는 모델은 자동차 지붕에 자전거를 고정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콕 찍어 지적한다. 또 아주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아니면 튜브에 자전거 바퀴를 끼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제 요구 사항에 맞춰 최대한 여러 종류의 디자인을 내놓으면 된다.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시험이 시작된다. 당신은 자전거와 자동차에 관해, 각각의 형태와 크기에 관해 생각한다. 자전거를 들어 올려 자동차에 싣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생각한다.
     
당신이 꿈꾸는 것은 평범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단순히 합격 판정을 받는 데 그칠 디자인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연필을 쥐고 작업을 시작한다. 재료, 형태, 접근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전거 거치대를 디자인하면 된다. 당신은 종이를 빙글 돌려 본다.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다. 연필이 종이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미지가 당신의 마음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차량 지붕에 부착한 튜브로 자전거를 고정하는 그 모델, 여러 가지 단점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던 그 모델이 계속 생각난다. 당신이 처음 그린 스케치는 그것을 빼닮았다. 두 번째 스케치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계속 시도를 해 보지만 당신의 디자인은 차량 지붕 위에 부착된 튜브형 거치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객이 미국프로농구협회 NBA 선수들이라면 딱 좋긴 하겠지만.
     
당신이 그 결함 있는 디자인의 변형을 잇달아 만들어 내는 동안, 당신은 몰랐지만, 옆 교실에서는 다른 공대생들이 자전거 거치대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차이점은, 그들에게는 나쁜 디자인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량의 지붕 중앙에 자전거를 올려놓는 방식을 피하라는 얘기도 없었다. 요구 사항은 역량을 한껏 발휘해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라는 것뿐이었다.
    

 
이 실험을 진행한 데이비드 얀손과 스티븐 스미스는 당신이 속한 집단의 디자인과 비교집단 학생들의 디자인을 받아서 한자리에 쭉 늘어놓았다. 차이는 엄청났다. 나쁜 사례를 먼저 본 집단은 통합적인 디자인이 적었고, 독창적인 접근법은 더더욱 적었다. 게다가 자전거를 싣는 장소로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선택한 경우는 훨씬 더 많았다. 두 번째 집단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전거나 자전거 거치대에 해박한 학생들이 많았던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두 집단 간 차이는 딱 하나, 첫 번째 집단에게만 자전거 거치대의 일반적 문제를 해결한 디자인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그런 요구 없이 최선의 거치대를 디자인하라고만 했다. 그러자 그들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문제를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해결했다.
    

 
얀손과 스미스는 과제의 종류를 바꾸어 다양한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일례로 시각장애인용 계량컵을 디자인하는 과제에서, 결함이 있는 디자인을 미리 본 엔지니어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반면 결함이 있는 디자인을 사전에 보지 못했던 엔지니어들은 80% 이상이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의식하지 못한 채로 문제를 해결했다. 내용물이 쏟아질 염려가 없는 머그를 디자인하라는 과제에서도 결함 있는 디자인을 사전에 본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비율이 17배나 높았다.
     
그들은 모두 뛰어난 엔지니어들이었다. 풍부한 지식, 뛰어난 역량, 숙련된 기술을 갖췄고 의욕도 넘쳤다. 그런데도 그들 개개인의 성공 여부는 무엇을 하려고 애쓰는지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사전에 결함 있는 사례를 보지 않은 집단은 천부적인 재능을 자연스레 발휘해 훌륭한 디자인을 해냈다. 한순간도 문제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모조리 해결에 쏟았다. 문제를 먼저 보았던 집단은 애써 그것을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재능이 이끄는 대로 사고를 전개하지 못했다. 벤 커티스가 자신의 결점에만 신경을 썼을 때 골프를 잘 치지 못했던 것처럼, 엔지니어들도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는 좋은 디자인을 내놓지 못했다. 그들이 문제에 계속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가 그만큼 유혹적이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간 것이다. 일단 문제에 끌리면 좀처럼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다.

작가의 이전글 12. 자신감 습관 - 작은 친절을 베풀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