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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1. 2017

01. 마네, 쿠튀르의 영향에서 벗어나다.

<마네와 모네>



역사적인 장면을 재현하다니,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야! 중요한 점은 이것이야. 첫눈에 본 것을 그리는 것. 잘 되면 만족하고 잘 안 되면 다시 그리는 거지. 나머지는 죄다 엉터리 짓이야.

마네는 이렇게 역사화가 쿠튀르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1856년 봄부터 그의 화실에 나가지 않았다. 스승의 회화론을 의심하고 비판할 만큼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네는 명목상으로만 가톨릭 신자였다. 평생 5백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지만 기독교를 주제로 한 그림은 단 6점에 불과하다. 이들 중 5점이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것이지만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라든가 전통적인 형식의 그리스도를 묘사한 것은 없다. 1864년에 <그리스도와 천사들>을 그렸고 이듬해에는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는 예수>를 그렸다. 마네는 자신이 본 것을 그린다며 사실주의 미학을 주장했는데 <그리스도와 천사들>은 쿠르베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 번도 천사를 본 적이 없는 마네가 어떻게 천사를 묘사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자 드가가 쿠르베에 반박하며 마네를 옹호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그리스도와 천사들>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훌륭한 소묘가 있는데. 여기를 보라구. 속이 내비치는 이 푸른색을. 마네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

마네, <그리스도와 천사들>, 1864, 유화, 179.5×150cm


마네는 코펜하겐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만테냐의 <피 에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1864년 국전에 응모하기 전 보들레르가 이 그림을 칭찬하면서 그리스도의 가슴에 난 창에 찔린 자국이 오른쪽보다는 왼쪽에 있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편지에 적어 보냈지만 편지가 늦어져 수 정할 수 없었다.


마네가 남몰래 없애버린 캔버스가 없다면 1858년까지 2년 넘도록 그린 그림은 모두 12점이며 이 중에 5점이 모사한 것들로 별로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1856-59년 마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틴토레토, 벨라스케스, 루벤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대가들의 화풍을 익히는 데 전력했다. 평생 우정을 나눈 판탱 라투르와 드가를 만난 곳도 루브르였다. 마네는 박물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처음에는 고야의 극적인 장면, 적나라한 사람들의 모습, 검은색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고 나중에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에 매료되어 그들의 화풍을 익혔다.

이때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압생트 마시는 사람>은 벨라스케스의 <메니프>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왼쪽) 마네, <압생트 마시는 사람>, 1858- 59, 유화, 181× 106cm / (오른쪽) 디에고 벨라스케스, <메니프>, 1636-40, 유화, 179× 94cm


마네는 벨라스케스의 단순화하는 기교를 사용해서 파리장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 의도가 충분히 표현되었다. 바닥에 술병을 그려 모델이 독한 압생트에 중독된 자임을 강조했고 이 그림에서 처음으로 레몬 껍질과도 같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림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6년 이상 그를 가르쳐온 쿠튀르에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쿠튀르는 “압생트 마시는 사람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다”라고 혹평했다.

마네도 지지 않고 “내가 그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린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젠 끝이다! 그가 한 말은 자기의 그림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이제 내 두 발로 설 것이다”라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화실을 떠난 후에도 스승을 방문하며 자신의 그림에 관한 고견을 듣곤 했으나 더 이상 그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1859년 국전에 출품된 <압생트 마시는 사람>은 심사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들라크루아의 옹호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반대로 낙선되었다. 하지만 마네에게는 첫 성공작이었다. 주정뱅이를 그린 그림은 교육적인 목적을 중시하는 심사위원들의 심기를 건드렸겠지만 대충 문지른 듯한 붓질과 자유로운 소묘는 갈고닦은 솜씨임에 분명했다.

<압생트 마시는 사람>이 국전에서 낙선한 뒤 친구들과 함께 마네의 화실을 방문한 프루스트와 보들레르가 현대 회화에 관해 토론했다. 보들레르가 “결론적으로 작가는 솔직해야 한다”고 하자 마네가 “그건 제가 늘 한 말이 아닙니까? 제가 <압생트 마시는 사람>에서 솔직하지 않았단 말인가요?”라고 응했다. 보들레르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자 마네는 “당신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지요”라고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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