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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3. 2017

01. 프랑스 철학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1교시 철학수업>



최근 타이완 철학 학계는 고등학교 철학교육을 추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양한 철학캠프를 마련해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학생들이 서서히 철학을 받아들이고 고등학교 철학교육이 실현되어 중등교육을 전면 개조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교육이념, 대입시험문제, 시험 전에 받는 일명 ‘족집게 과외’ 현상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고등학교에서 철학수업을 추진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나는 장기간 프랑스에 머무르며 내 아이의 교육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프랑스의 초·중등 교육은 고등학교 3학년 철학수업을 위한 준비과정이나 다름없다는 것! 우리의 현행 초·중등 교육에는 아직 이런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육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초등학교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철학의 교육목표는 학생들에게 ‘사고력과 논리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프랑스 고등학교 철학교육의 기본방침이 일리 있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사고와 논리’를 훈련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고 갑자기 사고력과 논리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철학시험을 본다. 4시간 동안 달랑 한 문제를 푸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은 또박또박 15쪽을 꽉 채워 쓴다. 거의 소논문 한 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런 내공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값비싼 뇌영양제를 먹는다고 해서 기를 수 있는 능력도 아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3이 될 때까지 쓰기와 독해 훈련을 한다. 10년 동안 독해, 언어표현, 쓰기 능력을 훈련하는 목적은 바로 고등학교 3학년 철학수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어를 중요시하듯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내 아이는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한번은 학부모회에 참석했는데 교사들이 학부모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이 대화를 나눴다. 2학년 수학을 가르치던 교사 후이융씨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어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면 어떻게 수학문제를 보고 이해할 수 있겠어요?”

프랑스 수학시험은 계산문제보다 응용문제 위주여서 숫자와 기호만 아는 거로는 부족하다.
프랑스에서 불어를 못하면 수학은 끝이다. 응용문제는 그 자체로 추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답을 쓸 줄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없어요. 전 그 답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봅니다.”

교사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었다.
“반 학생이 24명인데 학생들에게 2개씩 사탕을 나눠준다면 통에 사탕이 최소 몇 개가 필요할까요?”

후이융 씨가 이어서 말했다.
“48개라고만 대답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해서 48개라는 답이 나왔는지 써야 해요. 왜 48개인지 알려주시겠어요?”

어린 학생들에겐 각자 48개라는 답이 나오게 된 풀이절차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이런 수학 응용문제를 연산 추론하는 과정을 절대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10년 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없다면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는가?”
“우리는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한가?”
“일의 가치는 ‘실용성’의 유무에만 달려 있는가?”
“인간은 즐거워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다 자유로운 것인가?”
“예술작품은 우리의 감각을 키워주는가?”
“예술가는 작품의 주인인가?”
“법률의 정의(定義)는 정의(正義)인가?”

그렇다. 프랑스 고등학교의 철학 시험문제는 해마다 놀라움을 자아낸다. 고등학교 철학교육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하다. 우리 청년들은 프랑스의 시험문제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눈물 나게 감동적이에요. 수험생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학부모들은 자녀가 과연 이런 문제에 답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솔직하게 이런 답변을 내놓은 대학생들도 있었다.
“전 대학교 4학년이 돼도 이런 문제에는 대답 못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마저 이런 시험문제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응용문제를 접한 이후로 10년간 객관식 문제, OX 퀴즈나 간단한 주관식 문제만 풀어서 아이들의 사고력이 심각하게 저하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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