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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7. 2017

06. 마네가 그린 모네

<마네와 모네>


전시회를 둘러싸고 잔뜩 긴장된 생활을 한 모네는 전시회가 끝나자 아르장퇴유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그의 친구들도 아르장퇴유로 와서 모네의 가족과 함께 지내곤 했다.

마네는 친구의 단란한 생활의 일면을 <정원에서의 모네 가족>133으로 남겼다. 르누아르가 그린 <모네 부인과 아들>134에는 모네가 없고 카미유와 장만이 등장한다.

133 마네, <정원에서의 모네 가족>, 1874, 유화 _구도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이 그림에는 정원을 손질하는 모 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모네는 보트에 이젤을 고정시키고 센 강을 오르내리면서 강의 풍경들을 그리곤 했는데 1874년 어느 날 마네가 이런 모습을 보고 <보트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135를 그렸다.


135 마네, <보트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1874, 유화, 80×98cm


마네는 모네가 카미유를 보트에 태우고 작업에 여념 없는 모습을 그렸다. 배경에 아르장퇴유 둑이 보이는데 마네는 이 둑 너머에 별장이 있었기 때문에 아르장퇴유에 종종 와서 모네와 함께 작업하곤 했다.


마네의 그림 속에서 모네가 그리고 있는 것은 1875년에 완성한 <아르장퇴유의 유람선들>136인 것 같다.

136 모네, <아르장퇴유의 유람선들>, 1875, 유화, 54×65cm


마네가 평소 친동생처럼 여겼던 모네의 작업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마네가 처음으로 야외에서 그린 그림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모네 자신도 몇 차례 묘사한 적이 있는 이 보트 스튜디오는 센 강에서 작업할 때 사용하려고 1873년에 개조한 것이었다.

모네는 훗날 마네와의 우정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 화실(보트를 말한다)에서 나는 50보 또는 60보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센 강 장면들을 그렸다. 내 그림이 많이 팔려 모처럼 돈이 생기자 나는 보트를 사서 이젤을 고정시키고 화실을 만들었다. 내가 마네와 함께 보트에서 보낸 시간은 아주 즐겁게 회상된다. 보트에서 마네가 나의 초상화를 그렸다. 나 또한 그와 그의 아내의 초상화를 그렸다. 우리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르장퇴유는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요트의 중심지로서 가장 큰 요트 클럽의 본부가 있고, 1876년의 만국박람회 때는 이곳에서 요트 경기가 개최되었다. 자연히 파리의 중산층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요트는 모네가 선호하는 주제였고 카미유가 장과 함께 요트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을 그린 적도 있었다. 아르장퇴유에는 돈을 받고 배를 빌려주는 곳도 있어 모네는 보트를 타고 센 강을 오르내리면서 정박한 요트들을 그리기도 했으며 멀리 떠다니는 배들을 배경으로 센 강의 다양한 장면들을 그렸다.


137 모네, <붉은 보트>, 1875, 유화


아르장퇴유는 자연과 현대 인생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다. 모네의 그림에서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배경의 철로라든가 농촌에서 볼 수 없는 현대식 집들이 그러하다. 1871년 네덜란드에서 일본 판화를 취향대로 수집한 모네는 일본 화가들의 구성을 자신의 그림에 응용했다.

1874년 여름 마네가 모네를 방문했을 때 그린 <아르장퇴유>138에서는 모네의 화법이 좀 더 분명히 나타난다.

138 마네, <아르장퇴유>, 1874, 유화, 149×131cm


절반은 야외에서 그린 이 그림은 모네가 센강변의 풍경화에 몰두하는 데 자극을 받아 마네도 빛의 효과를 나타내는 강변의 풍경들을 그린 것이다. 마네는 이듬해 이 작품을 국전에 출품했는데 사람들은 강물을 너무 푸르게 그렸고 원근법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어떤 사람은 “인디고색의 강물이 벽처럼 평편하고 … 아르장퇴유가 펄프와도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마네를 옹호한 평론가들은 수면의 강렬한 푸름은 잘못된 색이 아니라 여름의 빛으로 조화시킨 것이며 또 아르장퇴유의 근대 생활상을 묘사하기 위해 정직하게 시도된 것이라고 했다. 그림에는 뱃사람이 여인에게 다가앉아 수작을 거는 것 같으며 여인은 사내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채 건성으로 사내의 말을 듣고 있다. 마네의 그림에서 여인들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장면은 물론 마네의 연출에 의한 것이었다. 마네는 두 모델을 바짝 관람자 앞으로 당기고 배경에는 원근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넉넉하게 구성했지만 강물을 지나치게 파란색으로 칠해서 원근감이 많이 감소되고 말았다. <아르장퇴유>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자연주의 화풍을 확인해주었으며 이 점이 새로운 화법임을 시위했다.

이때 그린 <보트 놀이>139는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붓질을 가늘게 하지 않고 색채도 영롱하게 하기보다는 바깥 공기의 신선함을 색조로 나타내려고 했다.

139 마네, <보트 놀이>, 1874, 유화, 96×130cm


파란색과 흰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강조해 아르장퇴유의 뜨거운 공기보다는 서늘함을 나타내려고 한 듯하다. 구성에 있어서는 배의 뒷부분만 남기고 대담하게 절단했으며 흰옷의 남자와 오른쪽의 돛의 일부 그리고 배에 기대앉은 여인으로 균형을 잡았다. 강렬한 물빛의 효과는 모네의 영향이며 수평선을 생략한 과감한 인물 구성은 일본 판화의 영향이다.

마네는 두 모델을 그림 앞쪽에 구성했으므로 배의 일부만 보일 뿐이며 관람자는 배의 내부를 볼 수 있다. 눈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강물만 모델들의 배경이 되어 커다란 여백으로 나타났으며 원근감보다는 이차원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이 여기서 부분적으로 나타났는데 마네는 카미유의 드레스를 짧은 붓놀림으로 칠했다. 이 그림은 뒤늦게 1879년 국전에 소개되었다.

마네의 <보트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센 강둑>, <아르장퇴유>, <보트 놀이>는 인상주의의 황금기에 모네와의 친분을 말해주는 그림들이다. 르누아르도 아르장퇴유에서 모네와 함께 작업하면서 <모네의 초상>140을 그렸다.


철로가 생기면서 아르장퇴유의 쾌적한 환경도 개방되었다. 모네는 철로와 다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1872년에는 <나무 다리>141를 그렸다.

141 모네, <나무 다리>, 유화, 54×73cm


그는 <아르장퇴유의 철로 다리>142에서 못생긴 철로 다리를 평범하게 구성하면서 고전주의 방법으로 검은색이나 어두운 갈색을 피하고 변조된 색들을 사용해 빛과 색의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려고 했다.


142 모네, <아르장퇴유의 철로 다리>, 1873, 유화, 58.2 ×97.2cm


그의 그림에서 낭만주의 화법이 발견되었고 쿠르베와 마네가 사용한 짧은 붓놀림이 발견된다. 붓놀림이 짧아진다는 건 그만큼 대상을 묘사하는 데 빛에 대한 관찰이 작용함을 시사한다. 들라크루아로부터 시작된 빛의 신비한 역할에 대한 관심이 모네의 그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인상주의 화법은 회화가 시각적 사실주의의 최고 수준임을 고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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