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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8. 2017

05. 가족은 웃으며 꾸는 꿈과 같다. (마지막 회)

<하루하루가 안녕이면, 땡큐>


아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웃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키울 때는 너무 힘들고 울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훗날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정말 순식간이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각자 가정을 이루고 독립한 지금, 그 귀여웠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려져 버린 걸까. 그렇게 말하면 주위 친구들은 모두 웃는다. 정말, 순식간에 커버렸다.

사는 곳도 제각각이라 다 같이 모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요전에 담은 장아찌가 너무 맛있는데, 가지러 오지 않을래?” 하며 맛있는 걸로 유혹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하하, 이건 뭐, 농담이다. 궁금하고 보고 싶으면 전화를 걸어 “잘 있니?”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1년에 한 번 정도 건강한 얼굴로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첫째 아이였는지 둘째 아이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작문 시간에 글을 정말 재미있게 잘 써서 반 아이들 앞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 내내 이 일이 우리 가족의 화제였다. 선생님이 앞으로 나와서 읽으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부끄러워서 싫다며 집으로 도망치려고 했단다.

아저씨(나는 남편을 ‘아저씨’라고 부른다)에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대요” 하며 보여줬더니 아저씨는 속으로 기쁘고 좋으면서도 멋쩍었는지 그 마음을 감추려는 듯 “내 술, 어디 있어?” 하며 술을 찾았다.

우리 집은 밝고 건강한 편이었다. 그건 물론 아저씨의 긍정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마음에 구김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한번은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아직 나를 새엄마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저기 말이야, 아이들한테 세이코 아줌마라고 부르게 하면 난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해?”
“당신은 지금처럼 하면 돼요. 어이, 하고 부르면 금방 갈 테니까.”
“말도 안 돼. 개도 아니고!”

유머 감각이 있었던 아저씨는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지만,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아이들이 잘못하면 똑 부러지게 화를 내는 편이었다. 한 번씩 크게 혼을 내는데, 아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꾸지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진심으로 좋아했다. 엄마 없이 자란 아이들인데도 천진하고 밝았던 건 순전히 아저씨 덕분이었다.

아저씨와 결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직 어렸던 아이들은 나와 이야기를 하겠다고 아우성인 적도 있었다.

“세이코 아줌마, 내 얘기 들어줘요.”
“기다려. 내가 먼저야.”
“내가 먼저.”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침부터 줄을 섰다.

“그래그래. 자아 1번부터 들을게.”
“1번은 없어요.”
“어디 갔는데?”
“쉬하러.”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배꼽이 빠져라 웃는다. 그럴 때 아저씨가 쓱 다가와서는 “너희들 뭘 그렇게 웃니? 내 이야기도 들어줘” 하며 애들처럼 줄을 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침식사 시간이 되면, 이번에는 아저씨가 “저요, 저요, 저요” 한다.

아이들 틈에 섞여서, 나도 “저요” 하고 외친다.

그러면 아저씨는 “몸집이 큰 사람부터 주는 걸로 할까?”라며 순서를 정리해버린다.

아이들은 당연히 입이 삐죽 나온다. 어찌 되었든 어른이 아이들보다 클 테니까. 억울하다는 눈으로 아이들은 아저씨를 쳐다본다.

“농담이야, 농담. 이건 우선 몸이 작은 사람한테” 하며 아이들과 바로 협상에 들어간다.

그러면 “네-엣”이라고 가장 작은 아이가 기뻐하며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는 가장 먼저 밥을 받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세이코 아줌마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웃어!”라는 말을 곧잘 들었다. 그 시절 우리는 정이 넘쳤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재잘대던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컸네’ 하고 느끼는 순간 입을 닫아버린다.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오늘은 친구와 뭘 했고, 선생님은 어땠고, 지겨우리만큼 조잘대던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가게 되면 입을 꾹 다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 녀석이 집을 떠나고, 또 둘째가 집을 떠나고. 짝을 만나 일찍 결혼한 아이도 있고, 결혼에 느긋한 아이도 있고. 어느 쪽이든 집을 떠난다. 이것이 인생의 순리라는 걸 알면서도 종종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그때가 참 많이 그립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든 날도 있고 화가 나는 날도 있지만, 웃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 가족이란 꿈과 같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가족과의 한때가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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