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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9. 2017

08. 파리의 명물 '폴리 베르제르 술집'

<마네와 모네>


마네는 10월 초에 파리로 돌아갔다. 육체적 고통은 여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안정된 상태였다. 공기 좋은 시골이 그에게 신체적으로 낫겠지만 파리의 공기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대화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활력이 되었다. 발목이 뒤틀리고 근육통이 있고 보행이 어려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지만 그는 카페에도 가고 카바레에도 갔다.

마네가 카페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린 대작 <폴리 베르제르 술집>199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9 마네, <폴리 베르제르 술집>, 1882, 유화, 97×130cm

마네가 국전에 출품한 마지막 작품이다. 웨이트리스 의 뒤 거울에 술집 내부가 비쳐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모자를 쓴 남자가 거울에 비친 웨이트리 스와 마주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화려한 파리의 세계, 불빛 아래 서성이는 남녀, 실재감을 느끼게 하는 술병 과 과일의 대비 등이 마네의 회화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거울 속 웨이트리스의 뒷모습과 오른편 남자의 앞모습이 원근법적으로 일치하지 않지만 마네는 이런 모순을 개의치 않았고, 회화적 구성을 위해 자유롭게 그렸다.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카페, 카바레, 서커스 공연장이었으며 입장하는 데 2프랑만 내면 되었다. 1869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부르주아들의 매춘 또는 불륜 커플이 만나던 장소로 알려진 이곳은 상점 점원, 가수, 배우, 댄서, 한량에서 예술가, 작가, 사업가, 은행가까지 다양한 류의 사람들이 출입했으며 매춘하는 창녀들의 연령도 다양했다. 각종 술이 진열되어 있는 내부에는 밝은 등이 켜져 있었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마네는 그 명소에서 몇 시간씩 앉아 스케치하곤 했다.

하루는 마네가 웨이트리스 쉬종에게 유니폼을 입은 채 화실로 와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청하자 그녀는 선뜻 응했다. 그녀는 가슴 부분이 사각으로 파진 기다란 드레스에 꼭 끼는 벨벳 조끼를 걸치고 마네의 화실로 왔다. 마네는 대리석으로 카운터를 만들고 거기에 서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 마네는 술집의 세 카운터 가운데 하나를 주제로 선택했다. 꽃과 술병들은 마네에 의해 연출되었다.



마네는 그녀가 웨이트리스에게 어울리는 화장을 하게 했으며 적당한 헤어스타일과 액세서리를 하게 해서 중산층이나 노동자 출신으로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쉬종의 가슴에 작은 꽃다발을 달게 하고 관람자를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녀의 멍한 시선과 꽃다발이 심한 대조를 이룬다. 두 송이 장미가 유리잔에 담겨 있는데 장미는 고대에 비너스에게 헌화한 꽃이라서 술집의 웨이트리스를 현대판 비너스에 비유한 듯한 인상을 준다. 흰장미는 순결을, 분홍 장미는 신성한 사랑을 상징하며 꽃병은 순결을 상징하는 전통이 있다.

올랭피아의 차세대라 할 수 있는 금발의 쉬종 뒤에 거울이 사용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림이 관람자의 인식에 혼돈을 주는 이유는 그림 오른편에 나타난 쉬종의 뒷모습과 모자를 쓴 남자의 모습 때문이다.


거울이 쉬종의 등 뒤에 가로로 길게 부착되어 있으므로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관람자는 카페 내부의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병렬된 그녀의 뒷모습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오른편의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림의 구성상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모자를 쓴 남자는 실재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거울에 반사된 모습처럼 보이는데 두 사람의 위치를 설명해줄 만한 거울이 그곳에는 없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마네는 불가해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우리의 인식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화에서는 이 같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려는 것 같다.

이 그림은 마네가 살던 당대 파리의 삶을 기념비적으로 그렸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는 여기에 모든 기교와 폭넓은 주제 그리고 마지막 열정을 불어넣었다. 그림 속 모자를 쓴 남자는 앙리 뒤프레이고. 거울에 반사된 테이블에는 마네의 친구들이 앉아 있다. 그림 왼쪽 끝에 모자를 쓴 남자는 화가 가스통 라투셰이고 그 옆에 흰옷을 입은 여인 메리 로랑과 잔 드마르시의 모습도 보인다. 이 그림이 1882년 국전에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는 데 도저히 인식될 수 없는 세계가 실재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네의 인생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기념비적 해석은 관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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