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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9. 2017

09. 모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마네와 모네>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으므로 자신이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는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 벨일섬의 절경은 수십 점 그렸다. 이것들은 연작이 아니라 장소와 일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풍경화다. ‘진정한 바다의 장면을 담기 위해’ 매 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주제를 여러 번 그린 것이다.


노르망디의 해안 푸르빌

1881년 12월 푸아시로 이사한 모네는 알리스와 새로 꾸민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사한 걸 후회했는데 아무런 영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초라한 푸아시가 싫다”고 불만을 털어놓았고 1882년 5월 27일 뒤랑뤼엘에게 이곳의 전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편지했다.

모네는 2월부터 주로 노르망디 해안에서 작업했으며 그것들을 집에 와서 완성시켰다. 그는 디에프를 근거지로 반경을 넓혔는데 푸르빌이 호텔 숙박료가 싸다는 걸 알고는 그곳에 묵으면서 그림에만 전념했다. 푸르빌의 바다와 해변 풍경이 그의 캔버스에 아름답게 담겼으며 특히 바랑주빌의 강 언덕과 그 위의 집과 교회가 아름다운 장면으로 나타났다.

201 모네, <푸르빌 근처의 벼랑>, 1882, 유화, 60×81cm


202 모네, <바랑주빌의 오두막집 세관>, 1882, 유화, 60×78cm


204 모네, <바랑주빌의 교회, 석양>, 1882, 유화, 65×81cm


그해 여름에는 가족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는데 알리스가 무료하지 않도록 밖으로 나가는 걸 자제하고 근처의 강언덕과 들을 주로 그렸다. 모네는 인내심이 많은 화가였으므로 자신이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는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 르누아르가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1882년 뤼니옹 제네랄 은행이 파산하면서 뒤랑뤼엘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은행에서 빌린 돈을 속히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네의 주고객이던 뒤랑뤼엘의 경제적 어려움은 모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모네는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제7회 전시회 앙데팡당전에 적극 참여하기로하고 35점이나 출품했다. 1882년 3월에 열린 이 전시회에는 드가가 불참했고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베르트, 카유보트 등이 참여했다. 제6회 전시회를 두고 혹평했던 위스망스와 같은 일부 저널리스트들은 이번에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화풍과 극도로 독자적인 모네의 화풍을 모두 비난했지만 바다를 주제로 한 그의 풍경화는 호평했다.

뒤랑뤼엘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10월에 모네가 푸르빌에서 그린 그림 20점을 사주었다. 모네가 작품을 팔 때마다 장부에 가격과 구입자의 이름을 적어 두었기 때문에 누가 언제 몇 점을 구입했는지 알 수 있다. 뒤랑뤼엘은 이듬해 3월 파리에 마련한 자신의 화랑에서 모네의 그림 56점을 소개했다. 작품이 잘 팔리지 않자 모네는 전시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뒤랑뤼엘을 책망했다. 뒤랑뤼엘은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를 위한 전시회도 열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좋지 못했다.

모네는 푸아시에서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어 1883년 2월 에트르타로 갔다. 쿠르베와 부댕이 그랬던 것처럼 모네도 다몽항·이몽항·아발항의 기암석을 그렸으며 에귀유의 뾰족한 바위들도 그렸다. 모네는 1868-69년에도 이곳에 와서 바다와 어우러진 가파른 절벽과 동굴들을 그렸다.


205 모네, <만포르트, 에트르타>, 1886, 유화, 81×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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