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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30. 2017

09. 가지고 싶으면 가져라.

<느리더라도 멈추지 마라>



욕망은 행동과 자기의 꿈을 실현시키는 힘이다.
욕망이 에너지와 결의를 불러일으켜서 계획의 결실을 맺게 한다.
_디오도어 루빈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축복받은 세대다.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났던 이들은 보릿고개 세대의 부모들이 했던 고생을 겪지 않았다. 우리 부모들은 당장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보리마저 여물지 못해 가을걷이로 쟁여놓았던 식량이 떨어져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는 더 이상 굶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경제 발전과 호황의 혜택을 받은 세대였다. 가장 풍요로운 세대라고도 한다.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자가용으로 주차장이 가득 찬 세대는 아니었을지라도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쉬울 게 별로 없었다. 그때는 저성장이니 고령화니 하는 말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로지 고속 성장과 꿈을 실현시키는 희망에 부푼 시대였다. 당장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말고도 자신의 욕망이나 정서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는 세상에 진입하게 되었다.

지금도 사고 싶은 것을 가지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려 한다. 하지만 한껏 성장 궤도에 달리던 시절과는 왠지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 살뜰히 아끼고 모아야 하는 부모님 세대보다 더 큰 불안감을 가진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실패하더라도, 혹은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해도 여러 안전망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우선 가족과 친지라는 사적 안전망이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모두가 힘들고 저마다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을, 욕망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라고 말하면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아낄 생각은 하지 않고 ‘지름신’에 굴복하는 나약함을 탓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매일 신문을 펼치면, 긍정의 신호보다 위기와 불안의 부정적 신호들이 지면을 채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지고 싶으면 가지라’는 말은 철없는 어린아이의 투정과 다를 바 없게 들린다.

살다 보면 개인의 욕망을 경제적 상황과 형편 때문에 억눌러야 할 상황이 종종 생긴다. 무작정 지르고 싶은 마음을 표출했다가 자칫 빈털터리 신세가 될 수 있으니 자제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욕망이, 가지고 싶다는 것이 부질없는 소유욕과 탐욕이 아니라면?

청주 KBS 시절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차를 샀다. 준중형 SUV차량을 마련했는데, 내 나이 스물일곱 무렵이었다. 당시 차를 사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반대하셨다.

“벌써부터 돈을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집에 있는 차를 더 타는 게 어떻겠냐?”

아버지는 서른도 안 된 내가 차를 산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도 차가 필요할 테니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이 생길 게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방송 일은 늘 정해진 스케줄과 시간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서 항상 신속히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혼자 타고 다닐 차가 필요해요. 그러니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유지비가 적게 드는 차로 하는 게 어떠냐? 경차도 좋겠지.”

내가 차를 사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작은 차를 사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또래들보다 차를 빨리 구매하는 셈이니 괜한 욕심 부리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아버지는 자동차 유지비를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차를 구매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내가 사고 싶은 차를 골랐다.



내가 고른 차는 “야, 타!”를 할 정도의 외제차나 중형차는 아니었지만 내 눈에 너무 멋져 보였다. 차를 가지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어린 나이에 가지는 과시욕이 아니었다. 내가 그 차를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기동성과 장거리 운행 때문이었다. 서울과 청주를 오가는 통행 수단으로써, 이런저런 짐까지 실어야 하는 운송 수단으로써 필요했다.

내 생애 첫차는 나를 과시하기는커녕 방송에 필요한 의상이나 소품 등을 직접 챙기고 들고 다녀야 하는 이동식 사무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편하고 궁합이 맞는 자동차를 산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가지고 싶다는 것이 오로지 목적 없는 욕망, 의미 없는 낭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니까. 워낙 불안한 시대이다 보니 이러한 바람마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을 뿐이다.

가지고 싶은 욕망은 아끼고 모으는 미덕과 묘한 균형을 이루며 삶을 이끈다. 욕망은 갇혀 있는 현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추진력이기도 하다. 내 첫차는 답답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실의 울타리를 뚫고 나가 시원스레 질주하는 꿈을 실은 차였다.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나는 기필코 꿈을 이루겠노라 모질게 마음먹고 또 먹었다.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실행을 이끌어내는 강한 원동력이 되기에 억누르기보다는 오히려 키워주어야 한다. 특히 그 욕망이 물질이 아닌 목표나 꿈과 같은 가치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은 늘 책을 가까이하며 감각을 키우고, 꾸준한 습작을 통해 집필 역량을 키워나간다. 가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서라도 늦은 밤까지 노래를 부르며 훈련한다. 이처럼 반드시 가지겠다는 마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것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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