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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30. 2017

05. 서양철학수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1교시 철학수업>



이후 누군가 저를 찾아와 프랑스 고등학교 철학을 소개해달라고 했어요. 저는 〈수업 하나가 빠졌나?〉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적게나마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저는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걸 아주 싫어해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프랑스 철학이 받아들여지는 건 까놓고 얘기해서 ‘수입품’이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저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일반인은 철학에 대해 흥미가 많더라도 철학을 공부한 경험은 비교적 적습니다. 타이완에는 타이완만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한편 우리가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상업적인 면이나 편견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자아가 식민통치한 결과일 수도 있고요. 철학의 현지화를 이야기할 때 먼저 반드시 식민주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프랑스 철학인지.

저는 서양철학을 전부 그대로 타이완 고등학교 수업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 정신은 우리에게 문화적 시각을 넓히는 데 참고할 만한 것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 생각해 본 적 없던 것을 사고하고 어쩌면 보이지 않는 사고의 금기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사고의 금기를 깨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마주하는 용기 말이죠. 더 나아가 사고와 행동을 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모든 사고에 있어 일종의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유일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프랑스 철학은 더더욱 유일한 철학이 아닙니다.



과거 계엄시기에 철학적 사고는 금지되었습니다. 계엄이 해제된 후에 규제가 풀린 것이 많았지만 타이완에서는 철학에 대해 여전히 많은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철학을 공부하는 것을 점쟁이가 되는 걸로 생각하고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결국 미쳐버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철학에 대한 오해는 사고에 대한 순수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만약 철학이 사고하는 것에 대해 순수한 흥미를 주지 못한다면 ‘사고하다’라는 말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단지 실용성과 공리적 사고에 머물 뿐이죠.

철학교육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학문화되거나 정통화되는 것입니다. 저는 권력이 어떤 지식의 존재를 창조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사고를 통해서 힘을 만들 수 있어요. 저항의 힘이죠. 철학적 사고를 추진하기 위해 우리 세대는 반드시 고된 일을 해내야 합니다. PHEDO(타이완 고등학교 철학교육보급/홍보학회)라는 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뚝심을 발휘해 철학캠프를 열기 시작했고 난샹 고등학교에서는 실험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 방송국에서는 ‘철학카페’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고 학회도 존재주의를 주축으로 일련의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프랑스 고등학생 철학교과서1, 정부는 시민의 주인인가, 종인가? 정치를 논의하는 철학의 길》을 출판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우리는 8개 강좌로 나눴는데 국가, 사회, 교환, 정의와 법률등 여러 주제를 다룹니다.

사실 고등학교 철학교육을 추진하는 것은 무슨 위대한 이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성했어요. 그것은 바로 우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상이 식민통치되는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서양철학이나 동양철학은 비록 각자의 지향점에서 출발해 다른 사고의 시야를 제공하지만 사상이 값진 이유는 현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사고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조국으로 돌아와 사고하는 것에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대합니다. 새로운 세대의 철학인들이 ‘우리와 같은 난쟁이의 어깨 위에 설’ 수 있기를.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다음 세대가 좀 더 높이 설 수 있도록,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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