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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3. 2016

04. 퓰리처상을 받은 난독증 환자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필립 슐츠는 학교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안고 있던 커다란 문제가 학교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탓이다. 벤커티스와 마이클, 테스의 경험이 보여주듯, 얀손과 스미스의 연구가 검증했듯 매사에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은 끝없는 패배감만 안겨줄 따름이다. 필립 슐츠 또한 문제를 옆으로 밀치고 나서야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필립은 책상 앞에 똑바로 앉아 연필을 손에 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잘하자고 날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날마다 실패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 그는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며 고통 속에 앉아 있었다.
    

 
교사들은 필립이 대답을 못 하는 일이 반복되자 더는 지명을 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예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자리를 교실 뒤쪽으로 옮기고는 점차 수업에서, 생각 속에서 필립을 지워 갔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은 둔한 필립에 대해 절대 관심을 끊지 않고 항상 괴롭혔다.
     
필립은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때려눕히고서야 학교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교장은 필립을 전학시키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필립은 새 학교에서 다시 3학년 과정을 반복했지만, 이전 학교에서 맛봤던 좌절과 실패를 되풀이해야 했다.
     
그가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단순했지만,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어린 소년에게는 유독 가혹한 이유였다. 필립은 글을 읽을 수 없었다. 부모, 교사, 가정교사들이 몇 년 동안 노력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읽지 못하는 필립에게는 그 과정이 종이 위에 버티고 선 글자들과의 싸움에서 패전을 거듭하는 것일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용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난독증’ 때문이었다.
     
필립이 글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게으름 때문이라고 판단한 한 가정교사는 비꼬듯이 이렇게 물었다. “글도 읽지 못하면서 넌 도대체 뭐가 될래?” 그때 필립은 마음속에 떠오른 유일한 대답을 했다.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러자 가정교사는 배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필립의 삶에서 핵심을 차지했다. 거듭된 실패들 위에 또 실패들이 쌓였다. 그러다 보니 필립도 자신을 바보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바보는 읽기조차 배울 수 없으니 성공을 꿈꿀 수도 없다고 생각한 필립은 자신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자기 모습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상상 속의 필립은 작가가 될 터였다. 상상 속의 필립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종이 위의 글씨들을 이해할 터였다. 상상 속의 필립은 읽을 줄 알았으니까. 현실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매여 있었지만, 가상의 필립은 전도유망했다.
     
필립은 자기 방에 숨어서, 현실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상상 속의 자신을 불러냈다. 가상의 자신을 통해, 어머니가 큰 소리로 책을 읽어 주었을 때 들었던 발음과 단어들을 결합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갖기를 원했던 자질을 갖춘 인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또한 자기를 그 인물로 바꾸어 가는 과정에서, 현실의 필립은 스스로 읽기를 가르쳤다. 그는 단어에 대한 사랑과 언어의 선율에서 즐거움을 발견했다. 가정교사의 비웃음을 샀던 필립 슐츠는 꿈꿨던 대로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다.
     
필립 슐츠는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의 원천을 필생의 역작으로 재탄생시킨 시집 『실패 (Failure)』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유년시절을 돌아보면서 난독증의 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돌파한 힘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는 것과 똑같은 시선으로 저 자신을 보는 걸 멈춰야 했습니다. 제 결점부터 보는 일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자유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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