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라운드 50년>
“자식농사는 광구가 제일 잘 지었네.”
모처럼 모인 서울법대 운동권 친구들 모임에서 친구들이 나를 부추겨 세웠다. 사회를 보는 친구가 나를 소개하면서 온달이가 서울대 다닌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친구들은 애를 어떻게 키워서 그러냐는 등 수군거렸다.
“잘 나가는 분들께서 왜 그러셔.”
나는 잠시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던졌다.
“확률이야.”
생뚱맞게 ‘확률’이란 말이 나오자, 다들 그게 뭔 뜻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셋 키워봐. 그럼 그 중에서 한 놈쯤은 잘하는 놈 나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친구는 “나도 셋인데?” 하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사실 진실도 많이 담겨 있는 말이다. 억지로 공부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여럿 키우다 보면 그 중에는 공부에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거기에 부모가 좀 더 잘 도와주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웃음소리가 그치자마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려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돈벌이하던 직장에서 잘렸다는 둥, 새로 하는 일은 장애인들과 함께 쌀을 도정해서 파는 일이라는 둥, 강화 지역사회를 위해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사람들과 모임을 하고 있다는 등의 얘기를 떠벌렸다.
내가 이렇게 온달이 얘기를 얼른 마무리 지은 이유는 이런 얘기가 누군가에게는 자칫 불편한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의 학식이 높거나 사회적 지위가 괜찮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더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유독 애들 문제가 걱정거리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법대 친구들 모임에서도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낸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사교육비 안 들이고도 서울대 보냈다더라’ 하는 식의 얘기는, 뜻하지 않았는데도 잘못하면 비교가 되게 하고 평가받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면, 자녀를 해외로 일찍 보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도 정말 많다. 법륜스님은 부부생활의 근본을 생각해 보라며,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가 좀 일찍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은 괜찮지만, 부부가 떨어져 사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법륜스님은 자식을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사는 거라고 강조한다. 나도 법륜스님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런데 법륜스님의 문제의식과 다른 차원에서, 기러기 아빠 문제를 생각해 볼 게 있다. 돈의 효율성과 심리적 측면이다.
해외유학을 보내거나 아내까지 같이 보내는 사람들은 나름 그만큼 돈이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 몇몇은 확실히 그렇다. 동수가 그렇다. 사업체가 제법 자리 잡은 동수는 일찍부터 가족을 해외로 보냈다. 인터넷 사업을 하는 그는 해외에서도 직원들 업무관리를 할 수 있어서인지, 해외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다. 이런 점에서는 법륜스님이 말하는 단점을 많이 보완한 셈이다.
가족들이 처음엔 싱가포르로 갔는데, 뉴질랜드를 거쳐 지금은 캐나다에 정착했다. 아이들도 잘 적응했다. 첫째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아마존 취업이 확정됐다. 둘째는 미 동부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이쯤 되니 아내가 캐나다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안식구 언제 들어오냐?”
동수를 만날 때마다 친구들이 묻는 말이다. 해외에 나가 살면 아내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싫어한다는 말 때문에 묻는 말이다. 동수 부인은 곧 들어오기로 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동수네는 참 잘된 경우다. 동수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아내와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들어와 함께 지냈다. 동수가 나가 같이 지내는 시간도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진학과 취업을 잘했고, 이제 아내가 다시 들어와 같이 살게 될 거라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는 동수네만큼 만족스러운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가끔 언론에 나오는 기러기 아빠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또 주변에서 그런 소식을 종종 듣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가족이 함께 해외에 나가 있는 비용은 보통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다. 공무원이나 회사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조기유학을 포함한 해외유학을 해서 얻을 일자리는 어떨까? 이것 역시 갈수록 신통치 않다.
둘째 온달이가 수학으로 미국 유학을 갈까 고민할 때 친구 동수는 계속 반대했다.
“내가 미국 실정을 좀 알지 않냐. 미국 사회에서 교수들 별거 아냐.”
이렇게 말하며 동수는 한국 사회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런 교수 자리를 위해 뭐하러 힘들게 미국 유학을 가느냐는 것이다. 아직 한국에서 대학교수는 꽤 좋은 자리지만, 곧 급격하게 그 지위는 떨어질 것이다. 주요 대학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 좁은 주요 대학 교수자리는 얼마나 들어가기 힘들겠는가. 그래서인지 결국 온달이는 미국 유학 생각을 접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이제 한국과 선진국 학문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거지.’
90년대까지만 해도 격차가 무척 컸다. 그때는 선진국 유학은 무척 가기 힘든 기회였지만, 갔다 오기만 하면 좋은 일자리가 보장됐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렇지 않다. 유학파라고 해서 괜찮은 일자리가 주어지던 시대는 지났다. 국내 박사들도 넘쳐난다. 조기유학을 포함한 해외유학의 효용성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우리나라의 해외 유학생 수가 전 세계적으로 손꼽는 정도인 것은 이제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데,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거기에 더해 국내의 학문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그렇게 짐작하게 하는 얘기를 듣곤 한다.
한국예술종합대학을 다닌 연규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 청년의 삼촌한테 들으니 그 청년이 곧 돌아오겠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 돈이 모자라거나 프랑스의 엄격한 학사운영을 못 견뎌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한예종에서 배운 걸 거의 같은 수준에서 하더라는 거야.”
결국 거기서 더 배울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어릴 적 강화에서 본 연규의 당찬 모습이나 연규 부모의 인품을 알기에,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청년만의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런 게 상당히 보편적인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니 이제 유학에 그렇게 많은 돈과 정력을 바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나아가 국내의 고학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학력을 쌓은 것이 그만큼 값어치를 하느냐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