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라운드 50년>
사람들은 여전히 고학력을 쫓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조부모의 재력’ 농담까지 동원하며 돈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한다. 처음에 그 농담을 들었을 때 나는 한참 웃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비유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농담 속에 섞여 있는 사람들의 낙담과 아픔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국회의원이 이른바 ‘손자학비지원법’이란 걸 만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낙담과 아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률인데, 손자의 학비를 지원하는 금액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주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부의 대물림이 학력 때문에 조장되는 게 문제인데, 조부모의 재력까지 동원해 양극화를 심하게 하라고 국가가 인정해 주자는, 참 말도 안 되는 법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가만히 그 의원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그가 그런 법을 제안한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았다.
‘그럼 나와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하지?’
그래서 생각한 게 있고, 그즈음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그 얘기를 하곤 했다.
“내가 의원이 되면, ‘자녀학비지원금지법’을 만들겠어!”
친구들은 뭔 뚱딴지같은 얘기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나는 힘주어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자녀 학비를 지원하면 감옥 보내는 거야!”
감옥 얘기가 나오니 친구들은 더 어이없어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주장의 논거를 설명했다. 집집이 재산 차이가 나는 건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 그 재산 차이에 맞게 살아야 하는데, 사람이 사회적 동물인지라 그렇지 못하다. 남들 하는 대로, 세상 분위기대로 따라 하는 게 더 많다. 게다가 자녀교육은 더 하다.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니, 각 개인의 책임과 능력에 맡겨지게 되고, 진학 여부에 따라 이후 삶이 달라지니 어느 부모인들 무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대학부터는 자녀들이 각자의 능력으로 다니던가 말던가 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출받아 다닐 수도 있고, 포기하고 일찍 사회에 진출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자녀교육비를 쓰는 게 문제인 것이다. 특히 상류층이 그걸 과도하게 해서 사회 분위기를 안 좋게 몰고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학비는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 이후의 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각 가정의 재정 능력으로 교육이 좌우되게 하지 말자는 취지다.
그렇다고 모든 부모가 지원을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회 분위기가 ‘아, 대학부터는 애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하는 식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가난한 가정의 부모들이 ‘내가 무능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못 가르치는구나’ 하는 허탈감에 빠지지 않는다. 자녀들도 ‘왜 우리 부모는 내 교육비를 못 대주지’ 하며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앞날을 헤쳐나갈 것이다. 사람들이 돈이나 학력 또는 지위 때문에 마음고생 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다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해야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노후자금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어느 대기업 은퇴연구소는 이렇게 분석했다. 보통 가정들이 은퇴자금의 30% 정도를 40대에 자녀교육비로 허비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50대에는 자녀의 결혼비용으로 은퇴자금의 50%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녀들한테 은퇴자금의 80%를 쏟아부으니 늙어서 노후가 힘들다는 것이다.
위 은퇴연구소의 주장을 소개한 다큐 프로는, 그렇게 은퇴자금이 없는 상태로 노후를 맞이한 노인들의 외롭고 힘든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결국 고독사로 끝맺었다. 옆에서 보던 아내는 내게 또 푸념을 했다.
“우리는 어쩔 거야~.”
아내가 내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 중 하나다. 나는 그럴 때마다 “걱정 마셔~” 하며 넘기곤 하는데,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몇 년째 이어지는 똑같은 대사다. 나는 아내의 그 말이 어느 가정에서나 있는, 괜한 불안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집은 자산이 늘었다. 넉넉한 친구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집도 많은 게 현실이다. 상대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고, 우리 집의 10년 전, 5년 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봐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우리 집의 순자산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됐고, 앞으로 받을 채권까지 생각하면 많이 늘었다. 빚은 서울에 있는 아이들 전세방 관련한 전세자금 대출인데, 이건 자산에 보탬이 된 빚이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내의 ‘우리는 어쩔 거야’ 하는 걱정이 별로 사실에 근거한 걱정이 아니라는 뜻이다. 5년 전, 10년 전에 비해 나이가 더 들었으니, 노후 걱정이 좀 더 될 거라는 것은 이해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보면 분명히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걱정은 상당 부분 마음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점은 아내뿐만 아니라, 대다수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 다큐 제작자의 뜻도 그렇고, 그 내용 중에 나오는 은퇴연구소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자녀들에게 돈을 덜 들이고 본인들의 은퇴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대기업 은퇴연구소의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그 그룹의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은퇴설계에 적합한 금융상품을 팔게 할 것이다. 그런 영업에 필요한 적절한 자료인 것이다.
그 논리가 영업에 활용된다는 점이 조금 거슬렸다. 20년쯤 전에 보험사들은 가장이 죽었을 때 남은 가족을 생각하라며 종신보험을 열심히 팔았다. 10년쯤 전에는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며 펀드와 변액상품을 많이 팔았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시대를 맞아 은퇴자금에 필요한 상품을 팔고 있고, 그에 필요한 논리를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논리가 시대에 적합한 면이 있고,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바람직한 방향인 것 같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 논리대로 자녀교육비나 결혼비용을 지나치게 쓰지 말고 미리미리 은퇴자금을 준비하면 좋겠다. 다만, 그것도 각자의 처지 즉 자신의 재무상황(살림살이)과 취향에 맞게 하면 좋겠다. 남들 하는 분위기, 금융사나 언론사가 부추기는 흐름에 빠져 무조건 많이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조바심을 갖지는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