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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노후준비, 있는 그대로 봐라.

<인생 2라운드 50년>

by 더굿북

중년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온달아빠의 힘
낙관주의_있는 그대로 보면 불안감이 덜어진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온달이는 수학으로 미국 유학을 생각했었다. 그러다 그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럴 즈음에 온달이가 나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노후준비 해놨어?”

뜻밖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아내는 이때다 싶었던지 온달이의 말을 빌미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해놓은 게 뭐 있겠니? 나리아빠, 우리 늙으면 어떻게 살아!”

나리와 보리도 아빠 정신 차리라는 둥 한마디씩 거들었다. 거기에 더해 아내는 온달이의 유학 고민이 돈 때문이라며 나를 몰아붙였다. 이쯤 되자, 지나가는 말로 했던 온달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온달이가 유학을 고민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유학 이후의 진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는 부모가 돈이 풍족하면 온달이가 유학을 쉽게 생각할 거라는 주장을 하곤 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차분하게 얘기했다.
“온달아, 엄마 아빠도 우리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야. 만약 엄마 아빠의 노후가 문제 될 거 같으면 대한민국 문 닫아야 할 거야.”

그러자 아내, 나리, 보리는 일제히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둬라”는 식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온달이가 아빠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말렸다.

사람마다 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이십여 년 동안 같이 산 우리집 식구들도 많이 다르다. 아내와 나리는 감성이 앞서는 편이고, 나와 온달이는 반대로 이성이 앞서는 편이다. 목소리를 높이는 건 감성이 앞선 사람들이다. 나와 온달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성이 앞선다는 게 이성이 앞서는 것보다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차이일 뿐이다.

‘이런 차이의 근원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논거 중 하나는 낙관주의다. 나는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될 일은 될 것이고, 안 될 일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중간에 사람의 의지가 들어가 있다. 이런 내 생각은 대학 때 선배와 나눈 나의 대답에서도 드러난다. 그때 선배가 아주 상식적인,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얘기를 꺼냈다.
“운동이 뭐지?”

그 당시 학생운동을 하던 우리에게 운동이란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민족주의운동들처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집단이 오랫동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조직적인 운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막 학교에 들어온 1학년도 아닌, 이제 학생운동을 마감해야 할 3학년 말에 들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되는 걸 되게 하는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질문을 한 선배는 내 얘기를 경청해 주었다. 그때 내 논리는 이런 거였다.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다. ‘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는 권위주의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그게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이 충분해서 될 만한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 될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조건이란 없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이 아닌 사회문제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 사람의 의지가 개입해서 될 만한 것을 확실하게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천이고 운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명제의 앞부분 ‘되는 것(또는 될 만한 것)’은 누가 판단하는가? 실천하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어떻게 판단하는가? ‘있는 그대로’를 차분하게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보면 안 된다. 고정된 생각을 버리고 사물이나 현상을 잘 봐야 한다. 그럴수록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해진다.

노후, 아직 닥치지 않았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불안한 건 기본이다. 적정한 노후준비 자금, 똑 부러지게 얼마라고 정해진 기준이 없다. 상황에 따라 너무 다르고 매우 주관적인 문제다. 은퇴자금의 이런 성격은 생각하기에 따라 문제 해결을 매우 쉽게 하기도 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 문제를 주관과 객관을 잘 살펴 해결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잘 되겠지’ 하고 낙천적으로 봐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마냥 걱정스럽게만 볼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낙천주의와 낙관주의를 생각해 보았다. 사전을 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모르겠다. 한문으로는 낙천(樂天)과 낙관(樂觀)의 차이다. 낙천에는 하늘 천(天) 자가 들어 있고, 낙관에는 볼 관(觀) 자가 들어 있다. 학문 수준의 차이는 모르겠으나, 낙천하면 객관적 조건을 잘 따져보지 않고 그냥 잘 되겠지 하고 기대하는 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낙관하면 객관성에 근거해서 좋은 쪽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잘 되겠지’ 하는 믿음과 ‘잘 되게 해보자’는 의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볼 관(觀) 자다.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인데,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남들이 보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잘 봐야 한다. 또 보는 주체는 당연히 행위의 주체인 바로 ‘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나는 낙천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낙관주의란 말을 사용한다.

다시 가족과 나눈 은퇴자금 얘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온달이에게 “엄마 아빠의 노후가 불안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 문 닫아야 할 거야”라는 얘기는 괜히 해보는 소리는 아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얘기다. 그 근거를 살펴보자.


나와 아내는 국민연금을 꾸준히 납입하고 있다. 다른 어느 금융상품보다 수익률도 좋고 안전한 은퇴상품이다. 보통 가정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자녀의 대학 학자금이나 결혼자금 등은 우리 집에서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집은 실평수 24평짜리 집이 있다. 채권과 땅도 조금 있다. 실손보험과 종신보험도 보장내역이 크지는 않지만 각자 하나씩 들어 있다. 몇 년만 더 불입하면 납입기간도 끝난다. 그리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비를 벌 것이다. 소비도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경차와 중고차로도 편하게 잘 이용하고 있고,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지는 않았어도 잘 견디고 있다. 남들 따라 해외여행을 즐겨하지도 않고, 외식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갈수록 노인에 대한 복지 혜택은 늘어날 것이다. 이런 정도인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걱정해야 한다면 돈이 아니라 건강이다.

아파도 돈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 건강보험도 잘 되어 있고, 개인 실손보험으로 비용이 다 충당된다. 돈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때문이다. 아프면 일도 못 하고 사는 것도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이라고, 근거 없이 노후의 돈 걱정을 하다 보면 괜히 병만 생길 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근거를 따져보면서 일이 잘되게 조금씩 노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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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우리 형편에는 해외여행을 하는 건 무리다. 어쩌다 한번 적은 비용이라면 모를까, 삼사백만 원씩 들여 호주나 유럽을 가는 건 무리다. 백만 원 이내의 돈으로 일본이나 동남아 등을 다녀오는 건 가끔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봄에 모임 분들이 호주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는 사양하다, 아내만 가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정도의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을 이렇게 보면서 즐겁게 사는 게 낙관주의 아닐까. 이렇게 살면 마음이 편해지고 몸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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