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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집을 투자 수단으로 보지 말자.

<인생 2라운드 50년>

by 더굿북

그런데 집 문제를 전부 사회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 그건 큰 틀의 문제이고, 각자의 삶은 자신의 구체성 속에서 더 많이 달라진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 원리지만, 특히 집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실천이 더 중요한 건 개인과 가정의 재무(살림살이)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결론은 그 비중을 낮추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거론된, 선진국에 비해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은 것은 여전히 문제다. 각자 일부러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집값이 비싸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다. 집이든 상가든, 임대료가 무척 부담스럽다. 대한민국은 어떤 면에서는 임대료공화국이다. 그렇지만 노태우 정부 때도 검토된 적이 있는 토지공개념 제도 같은 건 굉장히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실행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1980년대 후반 들어 3저호황의 여파로 부동산 투기가 광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노태우는 택지초과소유부담금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를 골자로 하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했다. 토지를 일종의 공공재로 본다는 취지였다. 기득권층의 드센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당장은 공공이 시장에서 집과 상가의 임대료를 낮추는 데 영향을 줄 정도 물량을 싸게 공급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소유 개념이 아닌 사용 개념으로 전환하는 토대를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면 부동산 소유자가 가격이 오르는 것을 바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서 부동산값이 오르는 걸 바라는 심리 자체를 줄이도록 해야 하고, 그 기본은 소유자를 줄이는 것이다. 국가나 준공공이 소유하는 임대주택이 많게 하자는 것이다. 민간임대주택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이런 정책 흐름에 맞게 개인도 소유가 아니라 임대해서 쓰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요즘 서울시가 앞장서서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아직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그 양이 너무 적다. 서울시 차원에서 새로운 것을 시행하다 보니, 갑자기 크게 하기에 부담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다. 이제 몇 년 동안 검증을 했고, 정부도 바뀌고, 청년을 비롯한 주거취약자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니, 값싸고 질 좋은 임대주택에서 장기간 살 수 있는 정책을 과감하게 확대 추진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의 주거지원 정책은 대부분 가계가 집을 소유하게 하는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생애첫주택자금대출과 같은 것들이다. 집을 소유하는 것을 다 나쁘게 보거나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임대주택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집값과 임대료를 낮출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유 중심의 주택정책은 집값과 임대료가 올라가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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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공 임대주택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5.4%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럽의 선진국들은(21개국, 2014년) 9.3%나 된다. 특히 주거정책이 잘 되어 있기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한때 공공 임대주택 비율이 41%에 이르렀고(1990년),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그 비율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2013년 33%에 달했다.

새로 임대주택을 지을 때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공용공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싸고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 전용공간은 서너 평이어도 괜찮을 수 있다. 화장실을 개인 전용공간에 넣는다면, 그 면적은 좀 넓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에 따라서는 화장실도 공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또 주방, 세탁실, 거실, 베란다 등을 함께 사용하면 된다.

아예 가까이 사는 수십 명이 함께 사용하는 이른바 마을부엌을 배치하면, 싼값에 좋은 식사를 함께하면서 이웃과 어울리는 좋은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개인전용 공간에 간단한 주방을 원룸처럼 설치할 수도 있고, 아예 설치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넓고 쾌적한, 말하자면 카페 같은 공간도 마을부엌처럼 같이 이용하면 된다. 지금처럼 각 가정마다 거실을 꼭 둬야 할 건 아니다. 경제성을 따지더라도 그건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이고, 가정의 구성원이 줄어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이런 얘기는 청년 1인 가구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신혼부부, 자녀를 둔 가정, 노년 부부나 홀몸 어른들에게도 통할 수 있는 얘기다. 60대 이상의 부부가 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위와 같은 마을부엌이나 마을카페, 더 나아가 공용세탁소나 찜질방 같은 것이 있다면, 부부가 사는 공간은 10평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는 작은 주방과 작은 세탁기 등이 있으면 되고 거실도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 때 자녀들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마을부엌이나 마을카페가 있는 거 아닌가. 그동안은 이런 것을 각자가 해결했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두 부부만 살아도 큰 거실, 주방, 세탁기, 냉장고 등이 필요했다. 이렇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지는 집에 돈이 대부분 묶이게 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짐이 많은데, 그 좁은 집에 그걸 다 어떻게 보관해?”
이런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큰 물건들은 같이 사용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옷도 그렇다. 과거에 옷은 참 소중한 자산이었고 상대적으로 비쌌다. 그러나 지금 옷은 정말 싸고 질도 좋아졌다. 아주 고급스런 것이 아닌 바에는 막 입고 버리고 새로 사도 크게 부담될 일이 아니게 됐다. 큼직한 장롱을 차지하던 두툼한 이불 같은 것도 이제는 없어도 된다. 이제는 난방이 힘들고 돈이 많이 들던 시절이 아니다. 얇은 이불 몇 개면 된다.

각자 소유하던 걸 되도록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생활이 바뀌면 공간도 적게 필요하고 돈도 적게 든다. 자동차도 꼭 각 가정이 한 대 이상씩 가질 필요가 없어졌다. 위와 같은 주거라면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차가 적당히 마련되면 되고, 아예 그걸 업으로 하는 회사들도 많다. 인터넷 사용만 해도 그렇다. 각 가정마다 몇만 원씩 내고 각자 가입할 필요 없이 공용 와이파이를 사용하면 된다. 텔레비전 수신료도 절약될 것이다. 부엌의 크고 작은 살림살이도 각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개인 전용공간이 적어도 되고, 살림살이 사는 비용과 유지비도 많이 적어질 것이다.

아예 농촌으로 간다면 비용을 더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다. 개인주택을 마련하는 경우에도 대도시와 비교해 엄청 싸겠지만, 농촌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비용은 상상 이상으로 적게 들 것이다. 귀촌은 널리 알려졌지만, 아직 귀촌해서 공동주거까지는 확산되지 않았다. 이른바 은퇴농장이란 것도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이 활용되리라 본다.

아울러 내가 하나 더 주장하고 싶은 것은 기존 전세제도를 적극 활용해 여럿이 모여 살면서 주거비를 낮추고 함께 어울려 사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대도시에서 정책적으로 주거취약자를 위한 주택을 지을 때 자칫 지역민의 민원 때문에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다. 행복주택 사업이 바로 그렇다. 또 새로 짓는다는 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런데 전세제도는 이미 시장에 있는 주택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시간이 전혀 들지 않고, 이웃주민들의 민원도 거의 생기지 않는다. 기존 전세자금 지원제도를 활용하면 되는데, 그 양이 늘더라도 대출이기 때문에 소모되는 예산이 아니다. 저리지만 이자를 받고 운영되는 자금이고 나중에 돌려받는 자금이다.

나는 2015년부터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큰바위얼굴’이라는 주거협동조합을 만들어 서울대생 16명을 대상으로 공동주거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 연 2%짜리 청년주거지원 정책자금을 받아 방 4개짜리 아파트 두 채를 전세로 얻었다. 2층 침대 네 개씩을 마련해 한 채에 8명씩 사는 방식이고, 재임대 조건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씩이다. 관리비는 8명이 같이 부담한다.

한 사람당 면적은 4~5평인데, 이는 괜찮은 원룸 면적이다. 그러나 임대료는 같은 면적의 원룸에 비해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유럽의 선진국은 1인당 주거면적이 12평 정도라지만, 우리는 아직 7평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눈높이도 유럽 수준의 주거면적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화장실과 사생활이다. 원룸은 화장실을 혼자 쓰는데, 이 공간에서는 8명이 화장실 2개를 같이 사용해야 한다. 또 독방이 아니고 둘이 같이 쓴다.

그렇지만 원룸에 비해 좋은 점도 많다. 화장실, 거실, 주방, 베란다 등이 넓고 쾌적하다.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양쪽 창문을 열면 맞바람이 불어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보통 원룸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있기 때문에 맞바람이 불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잠을 자기 어렵다.

함께 어울리는 이점도 있다. 같이 밥이나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식구회의를 하며 자잘한 일을 함께 논의하기도 한다. 함께 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적은 건축비용과 어울리는 삶, 그래서 결국 사는 비용도 적게 드는 방식이 지금 시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집 사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집 살 여유가 되고 그럴 필요가 있으면 집을 사야 한다. 집을 투자 수단으로 볼 게 아니라는 뜻이지, 삶의 보금자리로써 나의 집도 소중하다. 이사 다니지 않는 고정된 삶의 공간은 우리의 삶에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러기에 국민주택 이하 규모의 집을 소유하는 지원정책은 더 과감하게 펼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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