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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18. 2017

03. 독서, 마음을 훈련하자.

<천년의 독서>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

증삼(曾參)은 공자 공동체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제자였다. 공자를 따르던 무리가 3,000명이었고 70명 정도가 별도로 배우던 제자였다. 증삼은 그 70명에 들기는 했으나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뒤늦게 제자가 된 데다 나이도 한참 어렸다. 그러면 배움에 뛰어나거나 행동이라도 민첩해야 할 텐데 정반대였다. 오죽하면 스승인 공자조차 굼뜬 친구라고 평했을까? 그는 좋게 말하면 우직했고 나쁘게 말하면 둔하고 단순하고 요령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안연(顔淵)이나 자로(子路) 같은 선배 틈에서 눈에 띌 리가 없었다. 『논어』에 보면 공자와 자주 대면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자의 뒤를 이어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제자는 증삼이었다. 그는 『논어』에서도 그냥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선생을 뜻하는 ‘자(子)’가 붙어 증자(曾子)로 불린다. 증삼의 제자들이 『논어』 편집을 주도하며 증삼을 우상화시켰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떤 식이든 증삼의 영향력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그는 책을 남겼다. 선배들은 당대에 이름을 떨쳤으나 생(生)이 다하자 명성도 저물었다. 몇몇 제자들도 책을 지었으나 오직 증삼의 책들만 전해진다. 『효경(孝經)』이 대표적이다.

그는 효에 큰 관심을 쏟았다. 넓은 세상과 많은 사람을 향하기보다 부모의 뜻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는 실천에 있어서도 우직했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후회하기보다 안도했다. 부모가 물려준 신체를 손상시킬까봐 평생 노심초사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맘 놓고 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의 삶뿐 아니라 부모의 죽음, 장례 그리고 그 뜻이 이어지는 남은 자들의 삶에까지 관심을 쏟았다. 그의 눈은 늘 인간의 내면을 향해 있었다. 많은 선배와 동료가 세상과 사람들을 볼 때 그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논어』 서두에서 그는 매일 자기를 성찰한다고 했다(吾日三省吾身). 첫째,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마음을 다했는가(爲人謀而不忠乎)? 둘째, 친구들에게 한결같았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셋째,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 제대로 알고 난 후에 전해주었는가? 알지도 못하면서 떠벌린 것은 아닌가(傳不習乎)? 인생의 기본자세요 배움의 기본자세다. 독서의 기본자세다. 이 사람에, 이 일에, 이 책에, 이 순간에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忠) 들쑥날쑥하지 않고 한결 같은가?(信) 제대로 익히며 실천하고 있는가?(習) 훗날 주자(朱子)는 이 가르침을 해석하면서 마음을 다함과 한결같음이 배우고 익히는 근본 자세라 했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효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또한 책의 저술과 전파와 영향력으로 이어졌다. 우직함이 명민함을 넘어선 것이다.

증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공자의 가르침을 ‘무조건 충성’ 버전으로 좁혀놨다고 한다. 체제순응적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위대한 스승은 제자들 시대에 조각나기 마련이다. 조각남은 왜곡됨을 부른다. 하지만 하나의 조각에 그 시대가 반응했던 것은 다 필요가 있어서였다. 조각의 전체되지 못함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모든 잘못을 그 조각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다. 훗날 그 조각이 비판받는 것은 잊혀진 다른 조각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통합하는 스승이 나오기 전까지 진자운동(振子運動)은 계속된다. 우리가 더 넓게 보면 되는 일이다.

증삼은 내면을 선택했다. 마음을 훈련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정조도 따라갔다. 그는 증삼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자신의 일기를 『일성록(日省錄)』이라고 불렀다.

책을 읽음에 있어, 지식을 접함에 있어, 사람을 대함에 있어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첫 번째 훈련은 마음 훈련이다. 태도 훈련이다. 지식이 제일 되는 세상이라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지식이 틀리면 다시 배우면 되지만, 태도가 틀리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틀린 태도에 오만한 지식은 재앙이다.

우리도 반성은 한다. 얼마나 유명해졌는가(댓글이 얼마나 달렸는가)?, 얼마나 벌었는가?, 얼마나 높아졌는가? 따위다. 내면은 없고 회칠한 무덤만 있는 욕망이다. 마음을 다하고 한결같이 다하고 또다시 훈련하고 실천하는, 증삼의 자기성찰과 얼마나 다른가? 스승 공자의 근심과는 또 얼마나 다른가?

“인격이 나아지지 않는 것, 배워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옳은 것을 들어도 행동이 없는 것, 잘못을 반복하는 것, 이것이 내 근심거리다.”

스승들은 같은 마음을 품었다. 이 마음을 이율곡은 독서에 담았다.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바르게 앉아서 공손하게 책을 마주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한다. 자세히 생각하고 몰두하여 책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 따로 나 따로이니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책을 만나는 날부터 책을 덮고 다시 하루를 맞이하는 아침까지 이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들처럼 고민하고 그들처럼 질문해야 한다. 아침 저녁 거울삼고, 중간중간 책갈피 삼아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찰하는 마음 훈련

1. 나는 하루를 어떤 식으로 돌아보는가? 특별한 질문이나 방법이 있는가?

2. 최근에 중요한 책을 읽었던 시간을 돌아보며 다음 질문을 던져보자. 
(1)마음을 다했는가? (2)한결같았는가?(예를 들면,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꾸준하게 독서 했는가?) (3)익히고 실천했는가?

3. 오늘날이라면 스승들이 이렇게 꾸짖으실 것이 분명하다.
“분주함을 핑계로 책에 마음 다할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무시로 끼어드는 휴대폰과 컴퓨터를 밝혀두고, 책을 펴기 전에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열어서 생각이 산란하다면, 이는 쫓기는 것이요 또한 중독된 것이니 이러고도 책에서 뭔가 얻기를 구하니 천하에 도적이 따로 없구나.”
독서를 방해하는 잘못된 습관이나 태도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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