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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19. 2017

04. 책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천년의 독서>


맛보는 독서:
도서 탐색 고공비행

책 정보를 듣다보면 직접 보고 싶은 책이 있다. 레이더를 보다가 신호가 잡히면 비행기를 띄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보고 싶은 책들을 메모했다가 정기적인 지식의 향연 시간에 살펴본다. 그때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면 정조처럼 갑작스럽게 규장각을 찾을 수도 있다. 사전에 책 정보를 가지고 왔든 규장각에 모여있는 장서를 보다가 발견했든,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집어서 살펴본다. 베이컨이 말한 ‘맛보는 독서’ 시간이다. 

“어떤 책들은 맛만 보면 되고… 다시 말해서 어떤 책들은 부분적으로 읽으면 되고”



규장각 초대 검서관(檢書官)이던 이덕무(李德懋)는 평생 2만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전해진다. 몹시 가난한 살림에 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였지만 책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특했고 대단한 문장가가 되었으나 자기를 내세우는 데 관심이 없어 오래도록 무명으로 지내다 정조에게 발탁되었다. 왕명에 따라 조선의 무예를 집대성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런 그가 책을 볼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전체 구조를 보는 일이었다.

“책을 볼 때는 가장 먼저 서문과 일러두기를 보고 저자, 편집자(교정자), 규모, 목차를 살펴서 전체 구성을 알아야 한다. 되는대로 읽어놓고 다 알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예비 독서의 첫 단계는 맛보는 독서다. 즐길 만한 요리인지 살짝 떼어서 먹어본다. 숲을 탐험하는 관점으로 보면 숲에 들어가기 전에 비행기를 띄워 공중에서 숲을 미리 보는 것이다. 되도록 높은 곳에서 거리를 두고 보는 고공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구조를 본다.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만 훑어본다. 중요한 것은 시간제한이다. 맛보는 독서는 책 한 권에 매달리는 시간이 아니라 여러 책을 살피고 고르는 시간이다. 하나를 빨리 훑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한 권에 1시간이 넘으면 의미가 없다. 보통은 30분 정도가 적당하다. 더 읽고 싶으면 별도로 시간을 다시 잡는다.

책을 훑어본다고 해서 책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 풍경을 담는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은 공중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말한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우리 지구는 늘 제게 우리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신비감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지구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킬리만자로 산정의 만년설이 점점 녹아 없어지는 것이 하늘 위에서 보면 다 보이니까 말입니다.”

위에서 보면 전체를 볼 수 있다. 신비한 것뿐 아니라 문제점도 볼 수 있다. 맛보는 독서는 총 10가지 항목을 살펴보면서 책을 평가한다.

1. 책 이름

2. 저자/역자/출판사: 보통 앞표지와 앞날개에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경험이나 권위 등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3. 추천사/책 소개: 광고성 이야기도 있지만 핵심을 짚어줄 때가 많다. 보통 뒷표지와 뒷날개에 있다.

4. 목차(차례): 목차에는 이야기의 구조와 흐름이 나타난다. 시간순으로 되어 있는가, 주제별로 되어 있는가? 나중에 깊이 읽으며 전체 개요를 파악할 때 참고가 되는 부분이다.

5. 저자 서문/후기: 서문과 후기에는 대개 책을 쓴 의도, 해결하고 싶은 문제, 이야기 방향 등이 나타나 있다. 단,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서문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내용을 너무 많이 알려주거나 특정 해석을 강요해서 재미와 신비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본문을 직접 읽고 알아내기 원한다면 이런 서문은 건너뛴다.

6. 책 분류: 분류 방식은 각자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도서관에서 많이 쓰는 십진분류를 사용한다. 부록의 ‘한국십진 분류표(KDC)’를 참고하기 바란다. 2단계 분류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약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라면 1단계 분류는 문학(800)이고 2단계 분류는 영미문학(840)이다.

7. 주요 키워드/주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룬다고 생각하는 키워드(핵심 단어), 주제들을 적는다. 책에 색인이 있다면 강조된(많이 나오는) 키워드를 더한다. 예를 들어 『논어』에 색인이 있다면 인(仁), 학(學), 안연, 자로 같은 단어가 될 것이다.

8. 함께 떠오른 책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맛보기 했다면, 『15소년 표류기』가 떠오를 수 있다.

9. 핵심장: 서론, 갈등과 논박, 결론 등 어떤 부분이든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읽는다.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말하는지 본다.

10. 결말: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본다. 물론 읽는 재미를 더 느끼고 싶은 책이면 건너뛴다.

총평: 책의 특징과 감상 등을 짧게 정리하고 평가한다.

소설 등 문학 작품은 상세하게 맛보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전지식이 너무 많으면 나중에 읽을 때 재미가 없다. 특히 9, 10번 항목은 살펴보면 안 된다. 6~8번 항목을 탐색해놓으면 이 책을 더 읽지 않더라도 나중에 참고할 일이 있을 때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다. 맛보는 독서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더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다. 탐색 결과를 노트에 기록한 후에 더 읽을지 판단한다. 읽고 싶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책을 맛보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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