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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로켓을 향한 소년의 꿈

<XPRIZE 우주여행의 시작>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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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20일 밤 10시경, 여덟 살 꼬마 피터 디아만디스는 뉴욕주 마운트버넌에 있는, 나무 패널을 두른 집 지하실의 커다란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여동생도 함께 앉
아 있었다. 잠옷을 입고 망토를 두른 피터는 어머니의 슈퍼8 카메라의 렌즈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향했다. 그러다 한 바퀴 빙 돌며 방 안을 촬영하다가 하얀색 독일산 셰퍼드 프린스 위에 잠시 멈춘 다음 다시 텔레비전을 향했다.

피터 옆 카펫 위에는 신문기사를 오려 붙인 스크랩북이 놓여 있었다. 스크랩북은 머큐리(Mercury), 제미니(Gemini), 아폴로(Apollo) 등 나사의 프로젝트와 레드스톤(Redstone), 아틀라스(Atlas), 타이탄(Titan), 새턴(Saturn) 등 로켓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답게(어머니는 피터를 ‘아탁토스(ataktos)’라 불렀는데, 그리스어로 말썽꾸러기라는 뜻이다) 피터는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풀쩍풀쩍 뛰기도 하고, 몸을 흔들어대기도 했다. 피터가 꿈꾸어 오던 순간, 즉 라디오색(Radio Shack)에서 어떤 전자제품을 살 때보다도 훨씬 기쁜 순간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 만든 에스테스(Estes)사의 어떤 모형 로켓보다도 멋지고, 생일날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몸을 숨기라고 한 후 M80 폭죽에 불을 붙일 때보다도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시어즈(Sears)사의 실버톤(Silvertone) TV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가 진행하는 CBS 이브닝뉴스에 채널이 맞춰져 있었다. 노련한 앵커 크롱카이트는 플로리다 주 케이프케네디(Cape Kennedy, 현재의 케이프커내버럴)에 나가 있었다.

피터는 카메라를 켠 상태로 TV 자막을 읽었다. ‘인류의 달 착륙: 아폴로 11호의 장엄한 여정’ TV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5월에 한 연설이 흘러나왔다. “나는 우리나라가 1960년대가 저물기 전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다시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기간에 단일 우주계획으로 이 계획보다 더 인류에게 감동을 주고 장거리 우주 탐사에 중요한 계획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보다 성취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 Buzz’ Aldrin)이 착륙선을 타고 달 표면에 내리기 위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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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탐사요, 냉전 시대의 요구이며,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호를 발사하며 촉발된, 많은 것이 걸린 국가 간의 경쟁이었다. 스푸트니크호 발사 이후 거의 1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새로운 역사를 쓰려는 중이었다. 아폴로 11호의 사령선인 컬럼비아(Columbia)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는 착륙선과 분리한 후 동료들이 달에 착륙하기를 기다리며 홀로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콜린스와 올드린과 암스트롱은 24시간 안에 달 궤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아폴로 11호의 발사를 위해 일해온 기술자, 정비사, 관리자가 플로리다의 우주센터에 모였다. 아폴로 프로그램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사람은, 델라웨어 주의 도버에서 고무를 입힌 우주복 천을 꿰매거나 접착하는 일을 하던 여자부터 수년동안 컬럼비아호를 위해 낙하산 시스템을 만든 나사, 노스럽(Northrop), 노스아메리칸(North American Aviation)의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합해 40만 명가량으로 추산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투입된 비용만도 250억 달러가 넘었다.

피터는 아홉 살짜리 조숙한 아들 윌 로빈슨(Will Robinson)과 사람을 닮은 전투 로봇이 나오는 텔레비전 드라마 <우주가족 로빈슨(Lost in Space)>처럼, 자가용 우주선을 타고 별이 반짝이는 어둡고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이날 밤만은 텔레비전 스크린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크롱카이트의 굵고 느린 목소리가 들렸다. “착륙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10분 후면 달에 착륙합니다.” 달의 영상과 나사의 도움을 받아 CBS가 제작한 달 착륙 시뮬레이션 장면이 화면에 번갈아 나타났다. 달을 찍은 카메라의 신호는 40만 킬로미터를 날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서쪽에 있는 파크스 전파천문대(Parkes Radio Astronomy Observatory)에 도달한 뒤, 다시 위성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휴스턴에 있는 관제센터로 전송되었다. 거기서 영상은 다시 TV 방송국으로 보내졌다가 마지막으로 미국 및 전 세계의 텔레비전 수상기로 전송되었다.

비행을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새턴-V 1단 로켓(이 로켓 디자인의 원형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쓰던 탄도 미사일이다)은 2,000톤의 추진제를 써 지구 상대속도를 0에서 초속 2.7킬로미터까지 끌어올려 상승했다.

크롱카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착륙까지 3,000피트 남았습니다.”
“이글(Eagle) 상태 양호.” 휴스턴 관제센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TV 화면에서는 암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황량한 달 표면을 찍은 거친 흑백영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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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1,600피트. 이제 공중에 뜬 채 착륙 결정을 내릴 시간입니다. ……아, 착륙 결정을 내렸군요. 이제 700피트. 서서히 내려가고 있습니다.”
“19초, 17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달은 동트기 직전의 시간으로, 태양은 착륙선 너머 동쪽 지평선 아래 있었다.

피터는 TV 화면에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그전에도 어머니의 카메라로 TV에서 방영하는 나사 관련 프로그램을 찍은 적이 있었다. 피터는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수많은 우주탐사 관련 기사를 스크랩했고, 미국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에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다. 나사가 발행한 《간단한 우주용어집(Short Glossary of Space Terms)》을 가지고 있어 ‘단일추진제’라든가 ‘인공중력’ 같은 용어도 알고 있었다. 또, 달을 향해 발사되는 아폴로호 그림 밑에 ‘집을 떠나도 양치질은 하루 세 번’이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그려, 군(郡)에서 시행하는 양치질 장려 포스터 경진대회에서 1등에 뽑히기도 했다. 학교 친구인 웨인 루트(Wayne Root)와 함께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여러 우주선 모형을 낚싯줄에 걸어놓고, 스톱모션 영화도 찍었다. 그러다 촬영 후 편집할 때 필름을 긁어 우주선이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주말에는 2층 거실에 가족들을 모아놓고 LEO, 즉 지구저궤도 같은 용어를 설명해 가며 별이나 달, 태양계 등에 관해 이야기해주기를 좋아했다.

피터는 달 착륙 예정일 4일 전인 7월 16일 새턴-V 로켓 발사를 보고, 해마다 돌아오는 독립기념일을 한꺼번에 맞이한 것 같은 흥분을 느꼈다. ‘세 사람이 불을 뿜는 로켓에 올라타고 우주를 향해 간다! F-1 엔진 다섯 개가 액체산소와 등유를 연소해 3,400톤의 추력을 낸다!’ 워싱턴 기념탑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2 피터의 교과서는 여러 행성과 우주인, 우주선 등의 그림과 낙서로 지저분했다. 피터는 새
턴-V 로켓 1단, 2단, 3단 및 착륙선, 기계선, 사령선을 그리고 또 그렸다.

미식축구 경기장을 세로로 세워 놓은 것보다 높은 110미터의 길이에, 발사 준비를 마친 2,900톤이 넘는 새턴-V 로켓은 아름다우면서도 괴물 같아 보였다. 피터는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착륙선을 점검하러 컬럼비아에서 도킹터널을 지나 이글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달착륙선(원래 이름은 ‘달 탐사 모듈(Lunar Excursion Module)’이고 약칭으로 LM이라고 한다)은 달과 같은 극미 중력 아래에서 시험을 거친 적이 없었다. 우주선이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피터뿐만이 아니었다. 컬럼비아호는 시속 27,0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지구 진입각도가 너무 가파르면 화염에 휩싸일 터였다. 반대로 너무 완만하면 다시 대기권을 뚫고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대기권에 완벽하게 진입한다 하더라도(초음속으로 바늘에 실을 꿰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외부 온도가 1,600도가 넘는 불덩어리가 될 터였다.

피터의 아버지 해리 디아만디스(Harry Diamandis)도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해리는 베트남 전쟁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당시의 시민권 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어떤 뉴스라도 좋아했다. 하지만 지구에서의 삶만 해도 벅찬데 아들이 우주에 마음을 빼앗긴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해리와 그의 아내 툴라Tula는 그리스의 작은 섬 레스보스 출신이었다. 해리는 염소를 치고, 올리브로 아몬드를, 케일로 우유를 바꾸는 등 물물교환을 하고, 아버지가 하는 카페 일도 도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리의 어머니 아테나(Athena)는 앞치마 주머니에 여분의 반죽을 담아 와서는 빵을 구워주곤 하던 가정주부였다. 해리가 가장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빨간 풍선이었다. 시골 소년 해리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해리는 아테네에서 의사 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 브롱크스에 도착했을 때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었다. 해리는 가끔 자기 가족이 레스보스에서 미국으로 올 때까지의 여정이나, 자신이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로 자리 잡기까지 거쳤던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그 자체가 달나라 여행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으며, 항상 일말의 두려움과 이방인으로 타국에 던져진 듯한 느낌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거실의 TV 화면에 달 착륙 시뮬레이션 영상이 보였다. 그러다 아폴로 11호 선장 암스트롱이 무선으로 전송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이 착륙했다.” 이글이 달 북반구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사뿐히 착륙한 것이었다. 관제센터의 응답 소리가 들렸다. “알았다, 고요의 기지. 착륙 사실 확인했다. 당신들 때문에 여러 사람 숨막혀 죽을 뻔했다. 이제 다시 숨 쉬기 시작했네.”

“드디어 착륙선이 달에 내렸습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인류가 달에 갔습니다.” 크롱카이트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디즈니랜드에서 TV 화면 앞에 모여 있던 군중부터 베트남에 있던 미군에 이르기까지 5억 명이 넘는 사람이, 흰 우주복을 입고 탱크 같은 핼멧을 써 육중하면서도 유령처럼 보이는 암스트롱이 뒷걸음질로 착륙선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 툴라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리지나 않았나 하는 표정으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암스트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금 사다리 맨 아래 칸에 와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표면이 아주 고운 알갱이처럼 보인다. 거의 가루 같다. 이제 착륙선에서 발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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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만디스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 시간으로 밤 11시를 몇 분 앞둔 시각이었다.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모습은 초승달이었다. 활석 가루로 덮인 것 같은 달 표면에 암스트롱이 발을 천천히 내렸다.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솔로 문질러 깨끗이 청소한 사막처럼 보이는 달의 모습은 황량해 보이면서도 매혹적이었다. 하늘은 검은 벨벳처럼 짙은 어두움에 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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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가 촬영을 멈추었다. 그 장면은 신이 있다고 믿는 것과 신을 직접 보는 것만큼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달 착륙은 답이자 질문이었고, 신세계 개척이었으며, 지구를 구대륙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사가 약속을지켰다. 우주인들은 현대판 마젤란(Magellan)이었다.

크롱카이트가 아버지 같은 점잖은 태도를 버리고 두 손을 비벼댔다. 그러다 검은 테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달에 발을 디뎠습니다. 암스트롱이 달에 내렸습니다. 서른여덟 살의 미국인,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우뚝 섰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 영상을 보십시오. 달까지는 384,000킬로미터입니다.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눈을 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정이 가까워서야 어머니 툴라는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힐 수 있었다. 여덟 살의 마르셀(Marcelle)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피터는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 크면 우주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그래, 그것도 멋지구나. 그래도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의료는 이미 알고 있는 분야지만 우주는 불확실했다. 게다가 그리스 집안에서는 장남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야 했다.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은 벌써부터 어린 피터를 미래의 닥터 디아만디스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피터에게 의사놀이 장난감 세트를 선물로 사주었다. 피터는 가끔 어머니를 소파에 앉히고는 맥박을 재거나 심장 고동소리를 듣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의사는 피터에게 영예로운 직업이 될 터였다.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자 피터는 손전등을 켜고 침대 이불 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비밀 일기장을 꺼내 그날 일을 적었다. ‘달은 그늘진 곳은 몹시 춥고 해가 있는 곳은 타는 듯이 뜨겁다. 달에 가려면 우주복과 알맞은 신이 있어야 한다. 스키 부츠 정도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달에는 숨 쉴 공기가 없으므로 산소도 필요할 것이다. 먹을 것도 있어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한다. 물론 로켓도 필요하다.’ 피터는 새턴-V 로켓과 우주인 그림도 그렸다. 그러다 밤이 늦어서야, 달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 곯아떨어졌다. 주위에는 일기장과 그림이 흩어져 있었다.

달 착륙에 성공한 이듬해부터 몇 년 동안 피터는 다른 장치는 제쳐두고 로버(rover: 월면차)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피터는 로버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뜯었다. 한번은 잔디 깎는 기계의 엔진이 사라져 찾아보니 피터의 고카트에 달려 있었다.3 또 한 번은 침대시트가 사라진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고카트의 낙하산이 되어 있었다. 피터네 집은 브롱크스와 인접한 뉴욕 주 마운트버넌의 북쪽, 중산층이 사는 동네 한가운데에 있었다. 뉴욕시에서 30분 떨어진 거리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풍의 2층 주택은 파란 덧문이 달려 있었고 앞마당이 넓었다. 피터는 자갈로 덮인 좁은 진입로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이 집은 뒷마당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마당이 있었다. 벚나무가 심어진 마당에는 피터의 아버지와 삼촌이 공들여 설치한 그네가 있었다.

피터는 잔디 깎는 기계 엔진을 단 고카트를 타고 집 앞의 길을 지나 프림로즈가로 들어선 뒤 높은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헬멧도 쓰지 않고, 마치 존 스탭(John Stapp) 2세나 된다는 듯 프림로즈가를쏜살같이 내려왔다. 존 스탭은 로켓 엔진을 단 썰매를 타고, 최고 시속 1,022킬로미터로 선로 위를 달리며 중력가속도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 공군 대령이다. 피터는 복잡한 사거리에 가까워져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만 고카트에 달린 ‘낙하산’을 펼쳤다.

피터는 까마귀가 살찐 동물의 사체를 보듯 여동생 장난감을 호시탐탐 노렸다. 동생 마르셀이 ‘바비 인형 꿈의 집’을 선물로 받자 거기서 모터를 떼어내 자기가 만들던 기계장치에 사용했다. 또, 창문 차양의 부품을 떼어내서는 로봇 팔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하는 체인으로 썼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다가 나중에는 화를 냈다. 피터는 무기와 관련된 실험도 여러 가지 시도했는데, 한번은 담배 파이프를 청소하는 헝겊 막대로 비비총 총알을 만들었다. 그런데 총알이 나가지 않자 총구에 입을 대고 빠는 바람에 총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피터는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그래도 해질 무렵에는 다시 다른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통지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터는 말이 너무 많은 편입니다. 조금 더 차분해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터네 가족은 일요일이면 차를 타고 로슬린(Roslyn) 인근에 있는 ‘천사 장 미카엘 그리스 정교회’에 갔다. 복사였던 피터는 향, 촛불, 커다란 금제 십자가를 나르거나 성찬식을 도왔다. 고해성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애로운 알렉스 칼라웃소스Alex Karloutsos 신부에게 자기가 동생 장난감을 자주 훔치고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 드린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우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이야기하며, 우주야말로 자기의 ‘길잡이 별’이라고 했다.

피터는 인간이 사는 생물권은 외계인이 생명의 씨를 뿌린 일종의 식물원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알렉스 신부에게 이야기했다. 외계인은 지구로 돌아와 표본이나 묘목으로 쓰려고 사람을 데려가는데, 눈에 띄지 않으려고 네브래스카 주같이 외딴곳으로만 간다고 했다. 알렉스 신부는 피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와 같은 말로 넘어갈 만한 꼬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가 위대해 보이는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느 이른 봄날 피터는 바나나 안장이 달린 스윈 스팅레이(Schwinn Stingray)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폭죽을 팔고 있던 이웃 소년과 마주쳤다. 얼마 후 피터의 생일이 다가오자 어머니와 피터는 생일파티 계획을세우게 되었다. 피터는 새로 산 폭죽을 터뜨리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소음을 걱정하다, M80 폭죽(피터는 평범한 폭죽이라고 계속 우겼다)을 진입로 자갈 무더기 밑에 묻으면 소리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불은 어머니가 붙이겠다고 했다. 친구 웨인 루트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한 다음 긴장한 표정으로 빨간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는 허둥지둥 몸을 피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도 사방이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빵! 빵! 어머니가 소리를질렀다. “엎드려! 모두 엎드려!” 자갈이 날고, 잔디가 파였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황급히 몸을 숨겼다.

마침내 고개를 든 어머니 눈에 자욱한 연기 속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웨인은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얼핏 보기에 집 측면으로나 있는 조그만 창문만 금이 간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한바탕 총격 세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에, 뛰는 가슴을 쓸어안고 ‘너 이제 난리 났어’ 하는 시선으로 피터를 바라보았다. 피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화약의 위력에 감탄하며, 다이너마이트에 있는 화약을 조금만 써도 발사체를 날려 보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흥분을 느꼈다.

피터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1974년 여름, 디아만디스 가족은 마운트버넌에서 롱아일랜드에 있는 킹스포인트로 이사했다. 브롱크스에 있는 해리 디아만디스의 병원은 성업 중이었다.

가족이 롱아일랜드로 이사한 이유는 학교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 툴라가 《뉴욕타임스》 광고를 보고 100년 된 그 집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었다. 3년이나 매물로 나와 있던 집이었다. 750제곱미터 넓이의 새집은 언덕 밑에 있었는데, 동네 테니스장이나 수영장, 요트 계류장과 아주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은 할 일이 많다고 애물단지 취급하는 집이었지만, 어머니 눈에는 좋은 점만 보였다. 어머니는 바로 하나씩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맨해튼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넥은 F. 스콧 피츠제럴드(F.Scott Fitzgerald)가 쓴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무대였다. 그레이트넥은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저택마다 진입로가 길었으며, 롱아일랜드 해협과 맨해셋 만을 따라 15킬로미터 길이의 해안선이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디아만디스 가족이 살던 킹스포인트는 나소 카운티에 속하는 그레이트넥 반도 북쪽 끝에 있었다.

피터는 3층을 자기 혼자 쓰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새로 산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어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인쇄해 계단 맨 꼭대기에 붙였다. 피터가 차지한 공간에는 방이 세 개 있었다. 방 하나는 침실 겸 공부방으로 썼고, 다른 하나는 로봇, 로켓 등을 만들거나 화학 또는 일반실험 등을 하는 용도로 썼으며, 또 다른 방은 탁구를 치거나 전기 기차놀이를 하거나 TV 시청, 음악 감상 등을 하는 용도로 썼다.

피터의 침실에는 아직도 나사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포스터의 인물은 유진 서넌(Eugene Cernan), 로널드 에번스(Ronald Evans), 나사 최초의 과학자 출신 우주인 해리슨 슈미트(Harrison Schmitt) 등 아폴로 17호 우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2년 전인 1972년, 그들은 달 표면 탐사 3일을 포함해 12일 동안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월면차를 몰고 32킬로미터 이상 달을 누비며 지질 표본을 채집한 서넌은 달을 떠나면서 희망적인 말을 남겼다. “우리는 올 때처럼 이곳을 떠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인류의 평화와 희망을 안고 다시 오게 될 것입니다.” 아폴로 계획은 끝났지만 1972년 닉슨(Nixon) 대통령의 발표에 따라 새로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우주왕복선은 비행기처럼 착륙이 가능한 로켓으로, ‘가까운 우주로의 이동을 일상화함으로써 우주여행을 혁신할 재사용 가능한 궤도 비행체’를 목표로 했다. 피터는 ‘우주왕복선’이라는 이름이 아폴로에 비해 평범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나사가 하는 일이라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피터가 그레이트넥에서 새로 사귄 친구 빌리 그린버그(Billy Greenberg)는 곧 자기네가 계획한 프로젝트와 실험을 하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있는 여러 기구나 동생 장난감 부품을 떼어내 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두 소년은 개리 거모위츠(Gary Gumowitz), 대니 펠즈(Danny Pelz), 클리포드 스토버(Clifford Stober) 등 뜻이 맞는 친구를 규합해 돈을 모은 다음 자전거를 타고 은행으로 갔다.

아이들은 은행원에게 자기네 클럽에서 계획하고 있는 멋진 일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계좌를 개설하고 싶다고 말했다.

“클럽 이름이 뭐니?” 은행원이 물었다.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뭐 하는 클럽이니?”
“그게요…… 그냥 뭘 만들어요.” 피터가 대답했다.
“어떤 걸 만드니?”

로켓, 기차, 로봇, 원격 조종 비행기, 원격 조종 자동차, 보트 등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 만드는 게 없구나. 그렇다면 ‘만물 클럽’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그럭저럭 ‘만물 클럽’이 탄생했다. 아이들은 피터네 트리 하우스에서 모였다. 발판 사다리는 어른이 올라올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약하게 만들었다. 실험실로 쓰는 피터의 방에서도 모였다. 아이들은 기술 수준별로 나뉜 에스테스사의 모형 로켓 조립용품 세트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고전적인 데어레드맥스(Der Red Max)부터 시작했다. 이 로켓은 빨간색 나무 날개가 달려 있고, 앞부분은 검은색이며, 몸통에 해적선 깃발이 그려져 있었다. 길이는 40센티미터 정도 되었는데, 150미터가량 날아올라 낙하산을 펴고 내려왔다. 아이들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 나중에는 직접 로켓과 추진제를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피터와 빌리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레이트넥 노스 고등학교’의 컴퓨터 클럽과 수학 클럽, 의사 지망 클럽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계산기에 프로그래밍하는 것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학생들의 직업 교육을 위해 제공되던 컴퓨터에 프로그래밍하게 되었다. 또 저항, 콘덴서,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가감 저항기, 소형 스피커 등을 연결해 소형 히스킷(Heathkits)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조립하며 전자 기술도 익혔다. 나중에 같은 반 친구 존 린Jon Lynn이 동기 중 가장 먼저 컴퓨터를 제작하게 된다. 프로세서 테크놀로지(Processor Technology)사에서 만든 Sol-20으로, 초기 알테어(Altair)와 유사한 기종이다. 아이들이 처음 쓰던 컴퓨터는 펀치카드를 이용해 프로그래밍하는 방식이었다. 자카드 직조기의 작동 원리를 기초로 한 이 방식은, 펀치카드 판독기가 천공된 구멍을 1이나 0의 전기 신호로 변환하면, 이것을 컴퓨터가 숫자와 명령 부호로 인식해 계산한다. 당시 펀치카드를 들고 교내를 돌아다니는 학생은 비밀 클럽의 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골드코스트 게임방에 모여 퐁, 탱크, 스피드 레이스 같은 게임을 하고 놀았다.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달착륙선’으로, 화살표 버튼을 조작해 착륙선을 회전시키거나 분사 장치를 써서 달위의 목표 지점에 안착시키는 게임이었다. 피터는 교내 다이빙 팀원이기도 했다. 운동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레슬링 선수처럼 근육질인데다 선 자세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넘을 정도는 되었다. 피터는굵고 검은 머리를 깃털 모양으로 가꾸었으며 십자가 달린 금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키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는데, 165센티미터에서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피터와 친구 빌리가 인기 있는 투오리(Tuori) 선생의 화학 수업을 듣게 되면서, 강력한 로켓을 만들어 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그레이트넥 노스 고등학교에서 몇십 년 동안 화학을 가르쳐온 투오리 선생은, 학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고 오래도록 인상에 남을 만한 실험을 즐겨 했다. 피터와 빌리는 한 조가 되어 선생님의 가르침을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나중에 직접 해볼 요량이었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보호안경을 쓴 피터와 빌리는, 투오리 선생이 작은 병에서 금속처럼 보이는 재색 요오드 결정을 떠서 비커에 넣자 그대로 따라 했다. 투오리 선생은 흄후드(fume hood: 실험실용 배기장치)로 자리를 옮겨, 요오드 결정 위에 소량의 농축 암모니아 용액을 부었다. 그러고는 비커를 천천히 흔들어 내용물을 섞으며, 이 새로운 화합물은 질소원자 하나에 요오드 원자 세 개가 결합한 형태의 삼요오드화질소로 젖은 상태에서 상당히 안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마르면 눈송이든 깃털이든 아무것이나 닿는 순간 폭발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투오리 선생은 화학 물질이 반응할 시간을 기다린 다음, 진흙 빛깔의 화합물을 걸러 여분의 암모니아를 제거했다. 다시 한 번 마르기 전에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화합물을 테스트할 시간이 되자 피터와 빌리는 주의를 집중하고 쳐다보았다. 투오리 선생이 긴 막대를 숯처럼 보이는 화합물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때 삼요오드화질소 바로 위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피터 눈에 띄었다. 피터는 파리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빌리 옆구리를 쿡 찔렀다. 투오리 선생이 막대를 화합물에 대려는 순간 파리가 가루 위에 앉았다. 곧바로 크고 날카로운 폭발음이 들렸다. 뒤이어 폭발의 증거로 자줏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운 나쁜 파리는 산산이 찢어지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자에 담긴 폭발물이 피터네 집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상자 겉면에는 해골 그림과 함께 ‘위험: 폭발물’이라는 경고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아이들이 《파퓰러 사이언스(Popular Science)》라는 잡지뒷면 광고에 나오는 화학약품 판매 회사를 통해, 원하는 화학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UPS를 통해 다량의 화학약품을 바로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었다. 피터는 부모님이 돌아오기 전에 상자가 도착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3층에 있는 옷장 하나를 화학약품 보관함으로 바꿔 놓았다. 그런 다음 화학약품을 반씩 나누어 보관했다. 그래야 들키더라도 반만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비커, 분젠 버너, 플라스크, 마개, 점적기, 깔때기, 온도계 등 화학실험용 도구도 주문했다. 피터는 알칼리 토류 금속, 그중에서도 특히 밝은 흰색 빛을 내며 연소하는 마그네슘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마그네슘 띠와 가루를 여러 통 주문했다. 마그네슘에 바륨을 첨가해 연소시키면 초록색 불꽃이 났고, 스트론튬을 섞으면 빨간 불꽃을 피웠다. 또, 칼슘을 비롯해 질산칼륨, 황, 화약의 주재료인 숯으로도 실험했다.

유일하게 피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질산칼륨과 황을 연소시키려면 산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피터는 산소 없이 연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화학은 피터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했
다. 정상적인 학교수업과 정반대 같았다. 신비로움과 함께 질서와 논리가 있었다. 화학실험을 하다 보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빗물 고인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스스로 물웅덩이를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 물결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터는 러시아의 물리학자이자 교사였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Tsiolkovsky)가 쓴 책을 읽으며 로켓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57년에 태어나 청력을 거의 잃다시피 한 치올코프스키는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런 그가 내놓은 우주여행과 로켓공학 이론은 1세기가 지난 그때까지도 쓰이고 있었다. 1800년대 후반 치올코프스키는 무중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글을 발표하며, 언젠가 우주여행을 하려면 기밀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올코프스키는 또 러시아 최초의 풍동을 개발했고, 액체수소와 액체산소 혼합물을 연소해 추진하는 로켓을 구상했으며, 로켓의 추진력과 속도의 변화에 관한 수학공식을 만들기도 했다.5 피터는 로버트 고다드(Robert Goddard)의 책도 읽었다. 고다드는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을 만들어 발사한 미국의 물리학자다. 이 일은 라이트(Wright) 형제가 키티호크(Kitty Hawk)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 것에 비유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다. 고다드는 언젠가 대형 로켓을 만들어 달에 보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가 조롱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사였던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피터는 고다드가 우스터 폴리테크닉 대학 재학 시절에 로켓 실험을 하던 중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나자, 교수들이 소화기를 찾아 허둥댔다는 이야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피터는 독일 물리학자 헤르만 오베르트(Hermann Oberth)와 새턴-V 로켓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의 책도 읽었다. 오베르트도 액체 연료 로켓이 고체 연료 로켓보다 낫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폰 브라운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 V-2 탄도 미사일 기술을 활용해 새턴-V 로켓을 만들었다. 피터는 폰 브라운과 독일 기술자들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1960년대 말에 달에 가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터와 친구들은 주말이 되면 자기네가 만든 로켓과 여러 가지 원격 조종 비행기를 넣은 배낭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인근 킹스포인트에 있는 해양사관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에스테스 모형 로켓을 발사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관학교 경비원이 그들을 내쫓곤 했다.

어떤 때는 부모님 중 한 분을 골라 ‘루스벨트 필드(Roosevelt Field) 쇼핑몰’까지 태워 달라고 졸랐다. 예전에는 린드버그가 ‘스피릿 오브 세인트 루이스(Spirit of St. Louis)’호를 타고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Le Bourget Field)까지 날아가기 위해 이륙한 광장이었던 곳이다. 쇼핑몰에는 주차장뿐만 아니라 아주 넓은 공터가 있었다. 아이들은 여기서 직접 만든 화약을 채운 로켓을 발사했다. 이 로켓은 휙 하고 공중으로 사라지기도 했지만, 폭죽처럼 터져버릴 때도 있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탄도 미사일로 변해 하늘을 나는 뱀처럼 아이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한번은 아무런 낌새도 채지 못한 피터의 아버지를 향해 날아가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었다.

피터와 빌리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몽고’라는 이름을 붙인 로켓 시리즈였다. 몽고1, 2, 3으로 갈수록 로켓이 점점 커지면서 아이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장착되었다. 두 소년은 ‘555 타이머IC’를 활용해 직접 설계한 회로를 써서, 로켓 세 대까지 차례대로 자동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니, 두 사람만 있을 때도 한 사람이 멀리 떨어져 로켓을 발사하면 다른 사람은 사진을 찍을수 있었다. 이 사진으로 에스테스사 주최 로켓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해 더 많은 로켓을 받을 수 있는 증서를 부상으로 받았다. 피터와 빌리는 보관해 놓은 화학약품으로 주기율표를 따라 실험을 계속하다가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질산칼륨보다 염소산칼륨의 폭발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피터는 또 과염소산칼륨의 중요한 특성도 발견하였다. 폭발력이 강할 뿐 아니라 분해되면 산소를 방출했다. 피터는 폭죽이나 탄약, 대형 로켓 엔진 등에 흔히 쓰이는 이 무색 결정물질을 2.3킬로그램 들이 상자로 여러 통 구입했다. 그러고는 필름 보관용 통에 구멍을 뚫고 자동차 외장 충전제로 구멍을 메운 다음 그 통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과염소산칼륨이나 염소산칼륨으로 폭발을 일으키려면 그것을 연소할 수 있는 물질, 즉 황이나 알루미늄 가루 같은 것을 섞어야 했다. 제대로 섞이면 폭발하면서 막힌 구멍이 뚫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피시식 하다 말거나 폭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겨울 오후 아이들은 존 린네의 집에 모였다. 아이들은 과염소산칼륨 양을 달리해 담은 필름 보관용 통 여러 개를 접착테이프로 감싼 다음 얼음에 덮인 진입로에서 폭발시켰다. 대부분 계획대로 날아갔지만, 그중 한 개는 누군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고, 몇 개는 폭발이 일어나다 말았다. 아이들은 같은 실험을 몇 번 더 하다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과염소산칼륨이 담긴 필름 통 폭탄을 물속에 넣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로 하였다. 과염소산칼륨은 연소하는 데 산소가 필요 없는 물질이다.

아이들은 집 뒤에 있는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수영장은 군데군데 얼어 있었다. 아이들은 필름 통 하나를 얼음 밑 물속에 넣은 후 조금 옆으로 떨어져 서서 지켜보며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났다. 갑자기 쉬~익 하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얼음이 2~3센티미터 정도 솟아오르더니 (이때 아이들은 뒤로 물러섰다) 다시 가라앉는 것 같았다. 피터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바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린네의 어머니는 갑자기 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교외에 위치한 이 동네는 로켓을 향한 피터의 꿈을 펼칠 무대로 너무 좁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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