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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Dec 27. 2017

02. 뒤틀린 인문학

<고전 읽는 가족>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꼭 고전이어야만 하는가? 생각은 자연스럽게 고전의 가치로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가족 전체가 무작정 모험을 떠날 수는 없었다. 실체와 동기를 좀 더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고전을 따라 가족 학교를 열기로 결정할 무렵 사회적으로 고전 독서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어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색어 동향을 알려주는 구글 트렌드에서 ‘인문학’이라는 단어의 변화를 보면 2011년 전후로 사람들의 관심이 빠르게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인문학과 고전 독서는 어느새 유행이 되고 있었다.

그림 1 / 구글로 본 ‘인문학’ 검색수 변화



뒤틀린 인문학

좋은 것이 널리 퍼진다면야 휘파람을 불며 박수 칠 일이었다. 과연 그런지 가늠할 방법이 있었다. 질문을 던져보았다. “고전을 읽으면 어떻게 될까?” 책과 사람들의 대답을 들어보았다. 안타깝게도, 머리가 좋아진다, 논술이 풀린다, 상위 1%가 된다, 부자가 된다는 식의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 어떻든 고전을 읽게 만들어준다는 면에서 위안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문 고전을 읽으면 케네디 집안처럼 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고는 당황을 넘어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 케네디 가문을 유명한 가문, 유력한 가문이라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출세와 명성을 얻는 모델로 삼는다면 그 역시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자녀교육의 모범으로 삼을 가문은 아니었다. 행복한 가정의 모범은 더욱 아니었다. 케네디 가문에서 자녀교육은 엘리트 교육이고 낙오자를 용납하지 않는 경쟁 교육이었다. 지적 발달이 늦었던 큰딸 로즈마리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안다면 케네디 가문에서 자녀교육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방향은 출세와 성공이었지 고전 독서와 인문학에서 배운 대로 사는 게 아니었다. 케네디 가문의 성공을 따라가자는 주장은 각자 알아서 들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고전 독서와 인문학으로 자녀를 교육시켜서 케네디 가문처럼 되자는 것은 처음부터 신기루를 따라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계발과 인문학이 뒤엉킨 상황이었다. 인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비슷한 면이 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관계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분은 필요하다. 자기계발은 그 이름처럼 대부분 자신을 긍정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생각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외친다. 이에 반해 인문학은 자신을 극복하고 넘어서고 재창조하는 방향으로 생각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외친다. 자기계발은 자기 우물에 빠진 탐욕스러운 개구리가 될 위험이 있고, 인문학은 자기 실체와 현실을 외면하는 말쟁이 위선자가 될 위험이 있다. 

자기 긍정과 자기 극복은 선악이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순서 문제다. 잘못된 자아를 그대로 두고 긍정과 계발부터 하면 심각한 괴물을 키울 수 있다.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잘못된 자아를 처리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참된 자아를 찾은 후에 긍정하고 계발하면 날개를 다는 것이다. 고전 읽기와 인문학은 내 안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를 들으며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다. 벌거벗은 욕망을 그대로 두고 고급스런 모자만 쓰는 것은 인문학이 아니다. 자기반성 없는 자기계발일 뿐이다. 회칠한 무덤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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