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Dec 28. 2017

04. 하늘을 나는 만능 헬리콥터, DJI

<중국 디자인이 온다>



2015년 방영된 tvN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는 해외의 아름다운 풍광을 고공에서 촬영한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 궁금해했다. 헬리콥터를 띄운 것이다, 관광청에서 제공하는 기존 영상을 쓴 것이다 등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 그 답이 나왔다.

프로그램 중반에 보면 스태프가 가방 안에서 조그만 소형 헬리콥터를 꺼내서 작동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지나가던 외국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이 기계가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자 모두들 탄성을 내지른다. 조그만 헬리콥터는 산과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며 「꽃보다 할배」의 명장면을 만든다. 다음 날 신문에는 이 신기한 헬리콥터에 대한 기사가 등장했다. 기계의 이름은 드론, DJI에서 만든 <인스파이어 원(Inspire 1)>이라는 모델이었다.

DJI 드론 <Inspire 1>

지상에서 조종하는 무인항공기 드론은 일찍이 군사용으로 발달한 기계였으나 최근에는 촬영이나 배송 등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자 DJI에서는 좀 더 쉽고 대중적인 드론을 개발하여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JI는 전 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했으며 한국 사람들도 촬영을 목적으로 DJI 드론을 구입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DJI가 중국 브랜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DJI의 공식 명칭은 DJI Technology Co., Ltd(大疆创新科技有限公司)로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 있는 드론 메이커다.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프랭크 왕F(rank Wang)이 설립했으며 꼬마들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드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프랭크 왕 역시도 어릴 때부터 모형 비행기를 날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헬리콥터가 사람을 따라다니며 촬영하면 어떨까 상상했지만 그것을 사업화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범대에 진학해서도 비행기 조립은 그저 취미 생활로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자퇴를 하고 홍콩과학기술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뀐다. 대학교 4학년 때 조별 과제로 헬기 컨트롤 시스템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는 다른 수업을 빼먹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그리고 친구 2명과 학교 기숙사에서 헬기 컨트롤러를 만드는 사업까지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중국산은 짝퉁이라는 인식이 있어 세계인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웠다. 여기서 프랭크 왕은 특유의 완벽주의로 중국산에 대한 인식을 불식했다. 그는 중국인들 특유의 말버릇인 “이만하면 됐다(差不多)”라는 말을 경계했다. 품질 우선주의를 외치며 기술 개발에 매진한 끝에 결국 세계 최고의 드론을 만들었고 미국, 일본, 독일 등 다른 나라의 메이커가 DJI 드론의 기능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을 앞다투어 베끼기 시작했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드론 메이커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능이 완벽한 드론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높은 가격뿐 아니라 드론의 복잡한 조립 구조 때문에 대중화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프랭크 왕은 어릴 때 모형 비행기를 조립하는 데 열흘 이상이 걸린 사실을 기억해냈고, 조립할 필요가 거의 없는 쉬운 드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DJI의 드론은 별도의 부품 조립 없이 상자에서 그대로 꺼내서 날릴 수 있었다. 이렇게 편리한 드론의 이용법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고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DJI의 드론이 대중성을 얻게 된 또 다른 중요한 장치는 바로 디자인이다. 기존의 드론은 마치 군사용 헬리콥터를 그대로 축소시킨 듯한 메커닉한 디자인으로 소수의 사람에게만 인기를 얻었을 뿐 대중화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DJI는 <팬텀(Phantom)> 시리즈를 개발하며 이 복잡하고 메커닉한 구조를 하얗고 단순하면서 둥근 디자인으로 숨겨놓았다. 부담없고 친근한 디자인의 <팬텀> 시리즈는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고 특히 여성 소비자들의 호응을 불러왔다. 실제 사용법이나 구조가 복잡하더라도 조작이 간단해보이는 느낌을 준 것이다. 이렇게 프랭크 왕이 추구했던 쉬운 드론의 원칙은 디자인에서도 완벽하게 적용되었다.


쉬워보이는 디자인의 DJI 드론 


한편 DJI에서는 제품별 아이덴티티를 중요하게 여긴다. <팬텀> 시리즈에서 기술을 기체 안으로 숨겨 심플한 디자인을 선보였다면 <인스파이어(Inspire)> 시리즈에서는 제품의 핵심적인 기능을 기체 밖으로 노출시켰다. <인스파이어>는 중급 이상의 전문가를 타겟으로 한 제품이기 때문에 단순한 디자인보다는 좀 더 메커닉하고 전문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이다. 무광택 금속 재질의 <인스파이어>는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s)」에 나오는 로봇처럼 고급스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다.


전문가를 타겟으로 한 DJI 드론 


그러나 DJI를 단순히 드론 제조업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 DJI는 제품 디자인의 혁신 외에도 매장 등에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면이 유리로 뒤덮인 피라미드 모양의 선전 DJI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는 원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것은 드론 프로펠러가 원형으로 도는 모양을 묘사한 것으로 드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포인트다. 매장 내부에는 시연 공간(플라잉존), 영상 상영관, 액세서리 판매점, 라운지 등이 있으며 DJI의 드론 모델들을 전시해놓고 고객이 촬영한 드론 동영상을 상영하는 미니 시네마도 있다. 드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가면 드론에 관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홍대의 DJI 스토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홍대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DJI가 선전 다음으로 낸 두 번째 매장이자, 첫 해외 매장이다. 그런데 드론 실구매층이 많은 강남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를 선택한 것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DJI는 이에 대한 답으로 한국인들의 콘텐츠 생산 능력을 말했다. 한국 드라마가 중화권의 드라마 시장을 휩쓴 것처럼 한국인들의 콘텐츠 생산 능력이 상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홍대는 다양한 유행이 콘텐츠화되어 민감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콘텐츠의 보고다.

이런 맥락에서 DJI는 첫 해외 매장으로 홍대를 선택하고 다양한 경험을 기획했다. 현재 홍대 플래그십 스토어의 지하는 독립영화감독이 시사회를 진행하거나 홍대 아티스트들에게 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이렇게 DJI의 드론이 아티스트들에게 알려지면서 작품에 드론 촬영 기법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DJI는 드론으로 찍은 새로운 촬영 시각과 아티스트들의 창작 에너지를 결합하여 드론 콘텐츠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실제로 DJI에서는 드론 산업의 확장을 위해 매년 드론 사진 공모전을 여는데 출품된 작품들의 수준이 하나같이 탁월하다.

DJI 2016 SkyPixel Photo Contest 수상작들


최근 DJI는 초소형 드론 <스파크(Spark)>를 발명했다. 스마트폰보다 작고 간단한 손동작으로도 조종이 가능한 <스파크>는 사용자들이 결혼식이나 여행 등의 일상을 미니 드론으로 촬영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DJI 초소형 드론 


이제 작품뿐 아니라 일상의 콘텐츠 역시 DJI 드론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은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편집이 가능하고 유튜브로 공유도 할 수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핸드폰이 아니라 드론으로 셀카를 찍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현재 DJI는 드론계의 애플로 불린다. 처음에는 백색의 심플한 외관 때문이었지만 점점 애플과 행보가 비슷해지고 있다. 애플은 전 세계에 아이폰을 보급하고 아이폰으로 제작한 음악,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DJI 역시 드론을 일상으로 보급한 다음 드론으로 촬영한 콘텐츠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꽃보다 할배」의 고공 촬영 영상이 기폭제가 되어 누구나 드론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우리 일상 속의 드론 문화를 기대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03. 역사와 함께하는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