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남편은 집에 와서 왜 말을 안 할까?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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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웃기는 놈(?)입니다. 저는 아내를 잘 웃기죠. 유머 감각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했다고 하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요즘이야 인터넷 검색만 하면 유머 소재가 널려 있지만,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에는 그런 게 없었죠. 그땐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꼭 메모를 해서 갖고 다니며 좌중을 웃기곤 했습니다. 한때는 유머수첩만 4권을 갖고 다녔을 정도로 유머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죠. 요즘도 개그 프로는 빼놓지 않고 봅니다.

평소 조신한 성격의 아내가 저를 가장 좋게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유머 감각입니다. 때로는 유머의 포인트가 안 맞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어서 아내의 눈치를 살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아내가 저를 결혼 상대로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유머 감각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자다가도 당신 때문에 웃어.”

아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응, 자고 있어. 당신 자고 있을 때 내가 웃겨줄게.”

그러면 아내는 또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아내들이 가정에서 스트레스받는 원인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남편과의 성격 차이, 경제적 문제, 자녀의 학업 성적, 고부 갈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는 도대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퍽 많다고 합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 98%의 아내들이 같은 고민을 한다고 하니 한두 가정의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그러니 아내가 남편과 같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재미있을 리 없습니다. 재미는커녕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겠지요.

그렇다면 왜 남편은 집에 와서 말을 하지 않는 걸까요?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지쳐서 쉬고 싶거나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와 가슴이 굳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가정에서도 권위적이거나 근엄해지는 경향이 있지요. 일면 이해가 갑니다. 회사 사장이 밖에서 절도 있고 근엄하게 업무 처리를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아내나 자녀들과 시시덕거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모 장성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온 가족이 차렷 자세로 일렬로 도열해 아버지가 귀가하는 걸 맞는다고 합니다. 대단한 직업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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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그렇다고 쳐도 아내까지 덩달아 그러는 가정도 있습니다. 남편의 직업이 교수인 어떤 아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남편을 가리켜 ‘교수님이……’라고 호칭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의 직업이 자랑스러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일과 무관한 제3자가 들으면 웃을 일이죠.

위에서 예를 든 교수 부부의 경우 집에서도 서로 근엄하게 격식을 차리다 보니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 동거인에 가까웠습니다. 집에서도 늘 의관정제하고 서로 한 침대에 앉아 책만 읽다가 잠자리에 들곤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부이면서도 부부관계를 안 한 지 몇 년이 됐다고 하네요. 서로 편하고 익숙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갔습니다. 한마디로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 거죠.

그 얘기를 듣고 누군가 이렇게 코치를 해줬습니다.

“사모님, 이제부터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침대에 기대서 책 보시다가 잠잘 때가 되면 남편에게 ‘자자, 이 자식아’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아내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러나 그날 이후 그 말은 자꾸만 아내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몇 번인가 연습을 했습니다. 며칠 후 평소처럼 부부는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불을 끄려고 하자 아내가 남편에게 외쳤습니다.

“자자, 이 새끼야!”

“자자, 이 자식아!”라고 한다는 게 그만 실수를 해버린 거죠. 속으로 ‘이제 큰일 났다. 이걸 어쩌지?’ 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남편이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아내에게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그래, 이년아!”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빵~ 터져버렸다고 하네요. 그날 밤 부부는 몇 년 만에 황홀한 운우지정을 나눴다고 합니다.

아내를 웃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나는 웃지 않으면서 남을 웃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웃음은 전염됩니다. 한 사람이 웃으면 옆에 있던 사람도 따라 웃습니다. 내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불편한 기분이 있어도 상황을 호전시키려면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비록 웃을 상황이 아니지만 웃으면 스스로 기분 전환이 되어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가요무대>를 같이 보다가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팬티 바람에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깔깔거리며 웃지요. 자기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집 분위기도 무척이나 차분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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