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an 08. 2018

02. 첫 임브린

<기묘한 사람들>



편집자 주 : 이 책의 많은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생존했고 살아서 걸어 다닌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증명하기 힘들다. 이야기들이 글로 적히기 시작한 수세기 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며, 그래서 달라지기 쉬웠다.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자기 시각에 따라 이야기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이야기는 역사보다 전설에 가까워졌고,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가치가 되었다. 그렇지만 영국 최초의 임브린 이야기는 특기할 만한 예외다. 역사적으로 그 사실성이 인정되는 몇 안 되는 이야기로 손꼽히며, 여기 묘사된 사건들은 동시대의 많은 자료뿐 아니라 임브린 자신(유명한 교시집 <꼬리 깃털 수집>에서)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뜻깊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우화의 가치를 가지면서도, 뛰어난 재미를 선사하고, 기묘한 역사에서 중요한 연대기이기 때문이다 . -MN

최초의 임브린은 새로 변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로 변할 수 있는 새였다. 사나운 사냥꾼인 참매 가족은 임브린이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땅에 서서 다니는 육신이 있는 동물로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것, 가족을 둥지에서 떨어뜨릴 만큼 갑자기 크게 변하는 것, 이상하게 재잘대는 말로 사냥을 방해하는 것,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임브린에게 이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참매 언어로 ‘이상한 자’라는 뜻이었다. 이민은 고개를 가눌 수 있을 만큼 자란 뒤부터 자신의 이상한 면을 쭉 외로운 짐으로 느꼈다.

참매는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부심이 강했으며, 맹렬한 싸움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이민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이 개구리매와 격한 싸움을 벌일 때면 이민도 용감하게 싸웠다. 자신도 오빠들과 똑같은 참매임을 증명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참매 가족은 크고 강한 새들에게 수적으로 열세였고, 작은 분쟁에 자녀를 잃기 시작해도 이민의 아버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개구리매를 쫓아냈지만, 이민은 부상을 당했으며 오빠는 하나만 살아남고 모두 죽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는지 알 수 없었던 이민은 아버지에게 왜 그냥 달아나서 다른 둥지를 찾아서 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가족의 명예를 지켜야지.”
이민이 대꾸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가족은 사라지고 없어요. 그럼 명예가 어디 있어요?” 
“너 같은 괴물은 이해 못하겠지.” 아버지는 그 말을 남기고 깃털을 곧추세운 뒤 하늘로 날아올라서 사냥하러 갔다.

이민은 아버지와 함께 가지 않았다. 사냥 욕구를 잃었다. 피를 보고 싸울 욕구도 잃었다. 이것은 참매에게는 가끔 인간으로 변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날아가다가 숲 바닥에 인간의 다리로 착지하며, 이민은 자신이 매로 살아갈 운명이 전혀 아니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몸을 잘못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이민은 오랫동안 떠돌았다. 인간의 정착지 주위를 맴돌며 안전한 나무 꼭대기에서 인간을 연구했다. 사냥을 그만두어서 배고팠기 때문에 결국 이민은 용기를 내서 마을로 들어가 인간의 음식을 훔쳐 먹었다. 닭고기에 곁들이려고 준비해 둔 구운 옥수수, 창틀에 식히려고 내놓은 파이,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냄비 속 수프 등이었다. 맛있었다. 인간의 언어를 조금 배워서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음식도 좋았지만, 인간과 어울리는 것은 더 좋았다. 인간의 웃는 모습, 노래하고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이민은 마을을 하나 골라서 거기 살기 시작했다.

친절한 노인이 헛간에 묵게 해 주었고, 그 노인의 아내는 이민에게 바느질을 가르쳐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러다가 이민이 도착한 지 며칠 뒤, 마을의 빵집 주인은 이민이 새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민은 인간 모습으로 잠드는 데에 아직 익숙해지지 못해 밤마다 참매로 변해 나무 위에서 날개 밑에 머리를 묻고 잠들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이민을 마녀라고 비난하며 횃불로 내쫓았다.

이민은 실망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다니며 정착할 다른 마을을 찾았다. 이번에는 새로 변하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이민을 믿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민이 좀 이상해 보였다. 어쨌든 매로 자랐으니까. 새로운 마을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쫓겨났다. 이민은 점점 슬픔에 잠기며 생각했다. 진정으로 자신이 속할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어느 아침, 절망에 빠지기 직전인 상태에서 이민은 숲의 작은 빈터에 누워서 해가 솟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아름다운 장관에 이민은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관이 끝났을 때 이민은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자 금세 하늘이 어두워지고 동이 다시 트기 시작했다. 이민은 불현듯 깨달았다. 이민에게는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능력 외에 또 다른 재능도 있었던 것이다. 짧은 순간이 되풀이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민은 며칠 동안 그 재주로 즐거워했다. 우아한 사슴의 도약, 순식간에 기우는 오후의 태양, 이런 것들을 되풀이하게 했는데, 그 아름다움을 즐겁게 감상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민은 아주 크게 기운을 얻었다. 첫눈이 내리는 것을 되풀이 하고 있을 때, 이민은 어떤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남자가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이런 일을 하시는 게 댁이신가요?”

이민이 돌아보았다. 짧은 녹색 튜닉을 입고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은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특이한 옷차림이었지만,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목에서 완전히 분리된 머리를 겨드랑이 밑에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갈퀴 혀 공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