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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08. 2018

10. 마술사, 버트 루탄 (마지막 회)

<XPRIZE 우주여행의 시작>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는 피터의 눈에 자동차 한 대 다니지 않는 도로와 개발을 하기 위해 격자무늬로 조성된 길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개발되어 본 적 없는, 모래에 덮인 평평한 베이지색 캔버스가 쫙 펼쳐져 있었다. 피터의 눈은 사막을 가로질러 길게 뻗은 텅 빈 철로를 좇았다. 철로 양편으로 관절염 환자처럼 보이는 나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큰 구멍은 패스 산에 있는 희토류 광산이라고 했다. 피터가 탄 비행기가 모하비 공항 30번 활주로를 향해 하강하자 왼편으로 빛바랜 격납고가 보였고, 오른편으로는 비행기 폐기장으로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모하비 사막은 비행기가 태어나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늙은 새가 죽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비행기가 부드럽게 멈추어 서자 피터는 비행기에서 나와 지형을 살펴보았다. 서쪽과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와 능선이 짙푸른 하늘과 삐죽삐죽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활주로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과는 완전히 달랐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저 식당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 몇 마리와 바위와 돼지풀 사이에 숨어 등딱지 속에 대가리를 파묻고 있는 거북이 한 마리뿐이었다. 금방이라도 게리 쿠퍼(Gary Cooper)가 보안관으로 나와 악당 네 명과 대결하는 모하비판 <정오의 결투(High Noon)>가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외떨어진 곳으로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터는 어떻게 해서든 인터내셔널 마이크로스페이스의 골치 아픈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1993년 에인절 테크놀로지스(Angel Technologies)라는 새로운 벤처를 공동 창업했다. 이제 막 상업화가 시작되어 세상을 들썩이는 인터넷에 편승해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었다. 대학교와 연구소 간에 쓰던 아르파넷(ARPANET)이 공개되어 일반인도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으로 발전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피터와 에인절 투자 파트너 마크 아널드(Marc Arnold)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저가의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계획은 바다 밑이나 땅속 또는 전봇대에 케이블을 깔지 않고 그보다 더 빠르면서도 값싼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바로 성층권 위에서 광대역을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피터를 마크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데이비드 와인(David Wine)이었다. 와인은 ISU의 후원자이며 인터내셔널 마이크로스페이스의 투자자이기도 했다. 마크는 1991년 스미스 바니(Smith Barney)에게 병원 용역 회사를 팔아 돈을 벌었다. 마크는 회사를 매각한 후 스템(Stemme)의 세일플레인(sailplane: 고성능 활공기)을 구매해 소링(soaring: 글라이딩이라고도 함)이라는 스포츠를 즐기다 스템의 북미지역 딜러가 되었다. 소링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고도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사람의 계획에 경쟁자가 나타났다. 케이블 방송 사업자, 소프트웨어 회사, 신생 기업 등이 수백 대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방법부터 저전압 전력망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여러 가지 광대역 서비스 제공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전 국무장관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가 운영하는 ‘스카이 스테이션 인터내셔널(Sky Station International)’이라는 회사는, 미식축구 경기장 크기만 한 기구를 하늘에 띄워 놓고 여러 도시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구상하기도 했다. 마크와 피터의 계획은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는 고고도 비행기를 띄워 인구 밀집 지역 18킬로미터 상공을 선회하게 하며 뉴스, 오락, 정보 등을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비행기 이름 헤일로(HALO)는 ‘고고도, 장시간 운항(high altitude, long operation)’의 머리글자이기도 했지만, 고객들이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비행기가 하늘을 빙빙 돌며 만들어내는 후광(헤일로) 모양의 비행운을 보고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라는 의도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계획을 계속 밀어붙이려면 높은 고도에서 상시 운항할 수 있는 비행기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독창적인 사고를 하면서 꿈을 가진 세계적 수준의 기술자가 있어야 했다. 그 일에 맞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버트 루탄이었다.

버트 루탄(Burt Rutan)


선인장처럼 키가 삐죽한 데다 아이다호 주 모양으로 구레나룻을 기른 버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작업복 차림으로 사무실에서 나왔다. 버트는 키가 193센티미터나 되어 165센티미터의 피터를 난쟁이처럼 보이게 했다. 피터와 마크와 버트는 활주로에 서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마크의 비행기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크의 비행기는 쌍발 터보프롭 엔진이 달린 세스나 421 컨퀘스트(Conquest)였다. 근처에 파이퍼 몇 대와 비치크래프트, 또 다른 세스나가 보였다. 활주로 건너편에 있는 비행기 폐기장은 비행기를 버리거나 해체하고 재활용하는 곳으로 보였다. 폐기장에 있는 비행기들은 마치 여기저기서 모래사장으로 떠밀려 올라온 거대한 고래 같은 모습이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 이른 아침에 폐기장에서 폭발 소리와 대포 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군인들이 폐기장에 있는 비행기를 이용해 인질 구출 모의훈련을 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비행 대기선을 바라보고 있는 스케일드 컴퍼지츠 안으로 들어갔다. 스케일드 컴퍼지츠는 완공 시기가 각기 다른 여러 동의 건물과 격납고로 되어 있었다. 주 출입구 안쪽에 버트가 만든 비행기 사진과 지금까지 받은 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피터는 집에서 만든 비행기부터 로버트 존스(Robert Jones가) 고안한 좌우로 회전하는 날개를 단 AD-1, 목초지에 착륙해 캠핑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그리즐리(Grizzly), 스스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세일플레인 솔리테르(Solitair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행기 사진을 보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1988년 처음 하늘을 난 캣버드(Catbird)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버트의 형 딕은 최근에 2,000킬로미터 길이의 코스를 시속 396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 경비행기 세계 최고속도 기록을 경신했다. 공장 내부의 일부는 무엇을 개발하는지 방문객들이 볼 수 없도록 칸막이로 가려져 있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비털 사이언스의 페가수스 로켓에 쓸 델타 윙 몇 개가 눈에 띄었다. 피터는 버트가 그런 날개를 개발한 얘기만 해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항공기 개념 설계자로서 버트의 명성은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구름보다 훨씬 높은 곳의 희박한 공기 속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혁신가로서도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피터는 이전에 버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내셔널 마이크로스페이스의 발사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 있었다. 피터는 버트가 설계한 보이저호의 뛰어난 디자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또, 재사용 가능한 수직 이착륙 유인 로켓DC-X(Delta Clipper Experimental)의 개발 진행과정도 좇고 있었다. 국방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피트 워든이 감독하는 프로젝트였다. 버트와 스케일드 컴퍼지츠 직원들은 대기권 재진입시 DC-X를 보호하기 위해 에어로셸이라고 불리는 껍데기도 만들었다.

공장을 다 둘러본 세 사람은 회의실로 향했다. 피터는 에인절 테크놀로지스의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기 전에 궤도에 로켓을 발사하고자 하는 자기 인생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버트는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친구 정말 우주광이로군.’

버트가 갑자기 피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디아만디스 씨, 그렇게 우주에 미쳐 지내시는데, 유인 우주 프로그램에 사용되었던 로켓 네 대를 맨 처음 것부터 한번 말해보실 수 있겠소?”

장난기 섞인 듯하던 버트의 어조가 모하비 공항 활주로 위를 날아다니는 모래보다 더 빠르게 몰아붙이는 투로 바뀌었다. 피터는 개의치 않고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아니, 아니. 틀렸소!” 피터가 틀린 것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버트가 말했다. “가가린이 탔던 보스토크(Vostok)가 첫 번째요.” 물론 피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버트가 미국 우주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다음은 무엇이지요?” 버트가 물었다.
“머큐리지요.” 피터가 대답했다.

버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레드스톤이요! 레드스톤 3호가 두 번째요.” 버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캡슐을 얘기하는 게 아니요! 로켓을 말하는 거요! 세 번째는 뭐지요?”

피터는 해밀턴 대학에서 MIT로 편입한 뒤로 이렇게 주눅이 들어 본적이 없었다.

“제미니요.” 피터가 대답했다.
“아니요. 세 번째는 존 글렌이 탑승했던 아틀라스요!”

피터는 마크를 쳐다보았다. 마크도 따로 할 말이 없었다. 버트는 이 상황을 아주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피터는 우주계획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버트가 원하는 답은 따로 있었다.

“소위 나사의 역사를 꿰고 있다는 사람들하고 한 방에 있다 해도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요. 네 번째는 뭘까요?” 버트가 말했다.

피터는 대답을 할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버트가 대신 대답했다. “네 번째는 X-15요. 다섯 번째는 제미니를 운반한 타이탄 2호요. 여섯 번째는 러시아의 소유스(Soyuz) 로켓이오. 일곱번째는 새턴 1B(아폴로 7호 운반)고, 여덟 번째는 새턴-V요.” 피터에게 결코 짧지 않았던 즉석 시험이 끝나자 세 사람은 당면 문제 논의에 들어갔다. 태양광 에너지로 작동하는 무인 비행기를 중간권에 띄우는 계획이었다.

피터와 마크는 엄청난 가능성이 있는 일을 설파하러 다니는 전도사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획대로 된다면 누구나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동종 업계도 자신들을 보고 더 나은 방법을 배울 수 있을 터였다. 마크가 나서서 에인절 테크놀로지스의 사업계획에 관해 프레젠테이션했다. 마크는 자기네가 생각하는 고고도 비행기의 필요조건을 항목별로 하나하나 설명했다. 우선 800킬로그램의 장비를 실을 수 있어야 하고, 지상으로 향한 지름 5.5미터의 안테나를 보호할 통이 설치되어야 한다. 비행기가 17도까지 기울어도 안테나는 수평을 유지해야 하고, 액체 냉각방식으로 장비를 냉각해야 한다. 마크와 피터의 계획에 따르면, 태양광 에너지를 써서 운항하는 비행기로 지붕에 콘(원뿔) 모양의 안테나를 단 고객의 집 안에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전화나 영상, 또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고객의 집에 달 안테나를 ‘돈벌이 콘’이라고 불렀다.

피터는 마크의 말을 들으며 버트를 쳐다보았다.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고, 그냥 뭔가를 끼적거리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고, 마크의 말을 받아 적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세 사람은 무인 비행과 태양광 에너지 비행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태양광 에너지 비행의 아버지 폴 맥크레디(Paul MacCready)로 이어졌다. 폴 맥크레디는 인간 동력 비행기로 혁신을 거듭해 크레머(Kremer) 상을 몇 번 수상하기도 했던 기술자였다.

맥크레디가 상을 받은 비행기는 고사머 콘도르(Gossamer Condor), 고사머 앨버트로스(Gossamer Albatros), 바이오닉 배트(bionic bat) 등이 있다. 경량의 고사머 콘도르는 정해진 구간에서 8자 형으로 비행한 최초의 인간동력 비행기다. 고사머 앨버트로스는 인력만으로 영국에서 프랑스까지 날아간 비행기이고, 바이오닉 배트는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한 인간 동력 비행기다. 맥크레디가 인간 동력 비행기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던데에는 적은 에너지를 써서 날아가는 새의 비행 기법을 관찰한 것도 큰역할을 했다. 맥크레디는 재미 삼아 시간, 경사각, 회전 반경 등을 측정했다고 한다.

버트와 맥크레디는 친구였다. 두 사람은 함께 여러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 프로젝트를 같이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맥크레디는 보이저호가 실패한다면 자신이 지구를 일주할 비행기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빡빡 깎고 거기다 ‘루탄이 세계일주를 하면 머리를 밀겠다!’라고 쓴 사진을 버트에게 보내기도 했다. 

보이저호가 성공하자 맥크레디는 버트에게 자기가 디자인한 비행기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세계일주 기록이 달성되었으니 이제 자기가 설계한 비행기를 만드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 대신 맥크레디가 운영하던 회사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는 패스파인더(Pathfinder)와 나사가 주문한 헬리오스(Helios)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원격으로 조종하는 태양광 에너지 비행기 패스파인더는 15킬로미터 상공까지 비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75미터 길이의 태양광 전지 날개를 단 헬리오스도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피터와 마크는 그와 유사한 태양광 에너지 기술이 자기네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버트는 두 사람이 설명한 고고도 광대역 아이디어를 듣고 흥분했다. 그런데 태양광 에너지 비행기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염려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자신이 비행기 디자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이야기는 버트가 공군과학자문위원단(Air Force Scientific Advisory Board)의 위원으로 일한 데까지 흘러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모하비 사막에서 가내 공업으로 비행기를 만들던 사람이 국방부 배지를 달아 보기도 했고,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이라 불리던 프로그램이 취소된 후 공군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권고하는 힘을 갖기도 한 지위였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시속 27,000킬로미터로 지구 저궤도로 날아갈 수 있는 ‘오리엔트 특급’(X-30 우주 비행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다 우주 비행기 계획은 기술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보류되었다. 버트는, 여기에 대한 반발심에다 정부 주도의 우주계획에 좌절을 느껴 ‘엉망진창이 된 논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요지는 ‘그래 좋다, 당신들이 오리엔트 특급을 밀어붙일 배짱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10~12년간 나사의 예산을 반으로 깎자’라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깎고 남은 예산 70억 달러를, 오리엔트 특급의 성능을 가진 우주선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쏘아 올릴 수 있는 사람에게 줄 현상금으로 쓰자고 했다. “내 논리는, 만약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정부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소. 또, 만약 가능하다면 서로 윈-윈 하는 거지요.” 버트가 부연 설명을 했다.

피터는 버트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사를 사랑하다가 나사를 버린 자기 이야기를 간략하게 버트에게 해주었다. 피터는 나사가 자기를 우주에 데려다주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자 자신의 의학 학위를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간의 수명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인간의 최대 수명인 122년을 넘어서기 위해 수명 연장 분야에서 무언가를 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것이 우주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피터와 마크가 떠난 뒤 버트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 우주광이 MIT학위가 두 개나 있고, 하버드 의대까지 졸업했다는 거지? 그러면서 개업할 생각은 없다?’ 버트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 어려운 의대 과정을 마치고 의사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크와 피터는, 카리스마 넘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버트 루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트가 자기네 얘기를 제대로 듣기나 했는지 궁금했다. 피터는 버트에게서 다른 무엇보다도 예술가라는 느낌, 현대판 다빈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버트는 내용이 도전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무조건 참여할 유형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개념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러 모하비로 다시 가면 무엇을 보게 될지 마음이 설레었다.

마크와 피터는 크레머 상 이야기도 했다. 맥크레디가 현실적인 이유로 상을 받으려 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맥크레디는 친척의 사업 빚보증을 서 10만 달러의 은행 부채가 있었다. 친척의 사업은 망했다고 했다. 버트는, 맥크레디가 크레머 상에 걸려 있는 5만 파운드가 거의 10만 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맥크레디에게는 상을 타 빚을 갚는 것이 중요했겠지만, 실제로는 상을 타는 과정에서 이룬 혁신이 훨씬 의미가 있었다.

마크는 피터에게 자기하고 자기 친구도 25만 달러를 내 나노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파인만 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어사이트 연구소(Foresight Institute)’가 운영하는 이 상은, 최초로 나노기술을 이용해 두 가지 고안품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에게 주는 장려금이라고 했다. 고안품 중 하나는 나노 규모의 로봇 팔이고, 다른 하나는 나노기술을 적용한 컴퓨터 제작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컴퓨터 장치다. 마크는 에릭 드렉슬러가 쓴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 The Coming Era of Nanotechnology)》을 읽은 것이 이 상을 제정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피터의 머리는 새로운 아이디어, 마크 이야기를 듣고 받은 감명, 예전의 기억 등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마크가 《창조의 엔진》 이야기를 했을 때, 피터는 1980년 자기가 ‘우주 탐사 및 개발을 추구하는 학생들(SEDS)’이라는 동아리를 창립할 때 MIT 학생회관 뒷자리에 서 있던 드렉슬러를 떠올렸다. 당시 드렉슬러는, 몇몇 학생들이 SEDS를 우주 관련 단체 L5에 편입시키자는 주장을 하자 SEDS가 독립 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었다. 피터는 기회가 되면 드렉슬러에게 SEDS를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쪽으로 계속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피터는 게리 오닐의 사망 이야기를 꺼냈다. 오닐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7년째 되는 1992년 4월 27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피터는 5월 26일, 그레그 메리니악 및 ‘GKO 확대 가족’과 함께 추도식에 참석했었다. GKO 확대 가족은 게리 K. 오닐(Gerry K. O)’ Neill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피터가 보는 오닐의 일생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면도 있었지만 교훈적인 면도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한 일을 성취하며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 반면, 자신이 꿈꾸었지만 결코 이루지 못한 혁신적인 과학 프로젝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터는 인터내셔널 마이크로스페이스와 에인절 테크놀로지스라는 두 회사를 야심 차게 운영하고 있으면서 ‘무중력 회사(ZERO-G: Zero Gravity Corporation)’라는 세 번째 회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바이런 리히텐버그, ISU 졸업생 레이 크로나이스와 함께 보잉 727-200을 개조한 비행기로 일반인에게 무중력 체험 기회를 준다는 계획에 따라 설립을 추진하는 회사였다. 피터는 아직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고, 갈수록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했다. 피터는 자신의 강점, 약점, 목표를 나열한 두 쪽짜리 계약서를 작성해 자신과 계약을 체결했다. 거기다 다음과 같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기재했다. 기업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라. 조종 기량을 연마하라.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버려라. 규칙적으로 운동하라. 소울메이트를 찾아라. 피터는 벌써 서른둘이었고, 인생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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