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인도의 모든 것 담긴 바라나시 풍경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영원 불변의 도시라고 했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갠지스(강가) 강물이 모이는 신령한 장소인 데다 2000년의 세월을 견뎌온 힌두교 성지여서다. 전설에 따르면 강가는 원래 천계(天界)에 흐르던 강이었다고 한다. 강가 주변의 풍경에는 삶의 모든 신산한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강의 상류에서는 죽은 이를 화장(火葬)하는 모습과 바로 그 아래서 물을 마시거나 목욕하는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포착된다. 윤회의 굴레를 벗고 극락으로 향하려는 이들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신성한 곳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화장한 시신과 온갖 오물이 떠다니는 하류에서 물을 길어 밥을 하는 모습은 생경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생명이 돌고 도는 윤회의 법칙처럼 인간의 육신이 타고 스러지면 그 스러진 물을 먹고 생을 이어간다. 사진 속에 화장장 풍경을 담으려고 하자 성난 표정의 인도인이 카메라를 막아선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사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니 사진기를 들이대는 모습이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스쳐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강가에 있으면 하찮게만 느껴진다. 가트(계단) 주변은 번잡하다. 갠지스 강을 향해 무언가 염원하는 이들, 묘기를 보여주며 루피를 구걸하는 아이들의 표정 없는 얼굴까지 겹쳐 강가는 삶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연옥처럼 느껴진다.
곧이어 강가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인 푸자, 아르티가 시작됐다. 어둠 속에 하나둘 촛불이 켜지고, 저녁 강가에서 화려한 제사의식이 펼쳐진다. 젊은 힌두교 사제들이 음악에 맞춰 횃불을 들고 현란한 춤을 춘다. 몽환적인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그 불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 소박하며, 화려하고, 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장면이 뇌리에 박힌 사람들은 몇 번이고 인도를 찾고, 또 바라나시로 향한다. 바라나시를 기점으로 기차는 부처의 출생지와 열반지를 차례로 따라갔다.
열반으로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남으로부터 죽음이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쿠시나가르에서 석가모니는 ‘춘다’라는 신도가 공양한 버섯(혹은 돼지고기라는 설도 있다)을 먹고 탈이 나서 며칠을 앓다 열반에 들어간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룸과 함께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났는데도, 또 자신의 죽음 정도는 알고도 남는 신통력을 갖췄는데도 석가모니는 자연의 법칙에 몸을 맡겼다.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온화와 미소를 띤 거대한 와불만이 당시 모습을 재현해줄 뿐이다. 부처의 탄생지는 네팔 룸비니에 있다. 싯다르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싯다르타를 낳은 마야데비 연못과 사원을 지나 카필라성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슴까지 서늘하게 하는 타지마할
인도 여행의 끝은 아그라다. ‘인도의 상징’이라고 해도 무방한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부인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영민했고 아름다웠다. 샤자한 황제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법. 뭄타즈 마할은 출산하는 도중 세상을 떠났다. 마침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무려 22년간이나 계속된 무덤 건축에 인부 20만여 명, 코끼리 1,000마리가 동원됐다. 동서양의 문화적 정수가 모두 모여 있다는 게 놀랍다. 이란 출신의 기술자가 설계를 맡고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기술자들이 최고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몰려 들었다. 타지마할의 장식에는 모자이크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됐다. 꽃 모양의 문양을 대리석에 판 뒤 그 홈에 각기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놓은 것이다.
인도의 정수가 깃든 곳에서의 마지막은 행복했다.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누추하고 생경했던 곳. 머리보다 가슴에 먼저 와 닿아 비추던 작은 햇살을 기억한다. 몸은 인도를 떠났으나 인도는 다시 마음속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최병일
한국중앙일간지 여행기자협회 회장. 잡지사와 신문사 등을 거쳐 현재 <한국경제신문> 여행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여행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해 여행사를 직접 차리기도 했지만, 송충이가 솔잎을 그리워하듯 다시 신문사로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해맑은 미소와
감동을 길어 와서 신문기사를 통해 전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