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인문학은 교육혁명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by 더굿북

인문학은 영어로 ‘Humanities’이다.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로 키케로가 기원전 55년에 『웅변가에 관하여(De Oratore)』에서 처음으로 쓴 말이다. 뜻은 ‘인간적인’, ‘인간성’,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의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교육을 ‘파이데이아’라고 칭했다.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성공적이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 즉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파이데이아’는 고대 로마로 넘어가면서 ‘후마니타스’가 되었고 찬란한 로마 문명을 꽃피웠다.


파이데이아, 후마니타스 등 지금은 쓰지도 않는 어려운 말까지 해가며 인문학의 어원을 이야기한 것은 인문학이 본래 교육의 한 분야가 아니라, 교육 그 자체였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파이데이아’를 우리말로 바꾸면 ‘교육’이고 ‘후마니타스’를 우리말로 바꾸면 ‘인문학’이다. 즉 인문학은 교육이다. 이것이 인문학 교육의 역사적 성과이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위대한 성과를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행되었던 파이데이아는 전쟁에 나가 잘 싸우고, 시민 사회에서 대화가 잘 통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느 날 고대 아테네의 대화와 토론의 광장이었던 아고라에 소크라테스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소크라테스 하면 나약하고 키 작고 못생기고 어려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아테네 최고의 전사였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나가 스파르타 전사와 싸운 사람이었다. 이런 소크라테스가 아고라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제대로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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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로 비유하면 강남 대치동 거리에서 학원 가는 아이 붙잡고 “너 어디로 가고 있니?”라고 묻고 “학원 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그 학원이 네 인생을 책임져줄까?” 묻는 식이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걸려든 사람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당시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극작가로 성공해서 정치권에 들어가 부와 권력을 얻고 싶어 했다. 요즘으로 치면 대치동에서 사교육 열심히 받아 서울대 들어가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같다.

그러다 “어디 가고 있니? 그게 너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까?” 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쓴 희곡작품을 모두 불태우고 소크라테스를 따랐다. 이런 식으로 아테네 최고의 명문 귀족 자제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삶을 버리고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자, 아테네 사회에 난리가 났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돈과 명예를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자식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갑자기 돈과 명예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처형되고 만다.

나는 소크라테스를 교육혁명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아테네 교육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한 귀족들만의 교육이었는데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교육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린 것이다.

“교육은 영혼을 생각하는 것이다.”
“양심에 따라 신이 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용기와 힘과 지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교육혁명을 일으켰고 소크라테스가 처형되자 그의 철학은 더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동양에서도 인문학은 교육혁명을 가져왔다. 동양으로 보면 춘추전국시대가 소크라테스가 활동했던 시기와 비슷한 암흑시대였다. 귀족 자녀들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많이 가져오는 교육, 조정에 들어가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한 교육, 백성을 쥐어짜 왕에게 세금을 많이 바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로지 부와 명예를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교육 시스템에 공자가 나타나 제동을 걸었다.

당시 군자(君子)는 임금의 아들, 귀족의 아들 등 신분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공자가 그 의미를 바꿔버렸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품성을 가진 사람’을 ‘군자’라 정의하고, 왕에게 바른말을 해 잘못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사람, 백성을 위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최초로 평민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공부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가르쳤는데 이것은 당시 사회상황으로 봤을 때 대단한 교육혁명이었다.

이처럼 인문학은 교육혁명이다. 자신의 영혼을 살피고 타인을 돌보는 올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인문학 열풍에는 ‘교육’이 빠져 있다. 그전에는 쓸모없는 학문이라 여겼던 인문학이 주목을 받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교육이 빠져 있는 인문학은 부과 권력을 얻기 위한 또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교육과 아이 교육에 있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기 교육은 그동안 나를 세상이 이끄는 대로 아무렇게나 흘러가게 내버려두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TV에서 멋진 연예인이 나와 커피 광고를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착각에 커피를 사 마시면서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를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것이 인문학이다. 아프리카・동남아 아이들이 학교에도 못 가고 온종일 손이 갈라지도록 커피콩을 따서 만들었다는 사실, 그것을 대기업이 헐값에 가져와 문화로 포장해 팔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커피에 아이들의 피땀이 담겨 있구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공정무역 커피 운동에 동참하고, 커피 광고에도 그 아이들의 나아진 삶과 노동환경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기 교육이고 인문학 혁명이다.

아이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짜 아이를 위한 교육이 무엇인가. 대학이 진짜 우리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 대학 나와서 취직도 못 하고, 취직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을 해서 아이를 위한 교육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교육혁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보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좋은 대학을 보내면 좋다. 다만 세상의 조류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 나만의 교육철학을 갖고 대학을 보내고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TV에서 보이는 것,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판단하고 본질을 찾고 나의 길을 가고 아이도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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