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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07. 2018

02.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 있는 의미가 없는 사람은 없으며
살아 있는 한 끝이라는 것도 없다.
  
건강할 때 인간은 좀처럼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도전할 수 없었던 일, 꿈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평범한 나에게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하고 아무런 사건도 겪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인생을 보냈든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간호를 통해 수많은 환자분들의 인생을 지켜보며 제가 느낀 점입니다.
  
예전에 해군에서 복무했던 분을 간호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온몸의 뼈가 가늘어지는 병을 앓다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발병 원인을 알 수 없을뿐더러 치료법도 없었습니다.
  
부인이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3주기를 마친 후에 입원하기로 했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분은 입원 직전까지 스스로 이불을 펴고 갰으며, 밭을 갈았고, 부인에게 향을 피우는가 하면 손자를 위해 연금을 저축하는 생활을 계속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머리맡에 전쟁을 기록한 문고본 한 권을 놓고, 이 세상을 볼 마지막 기회라는 듯 눈을 뜬 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덧붙여 그 환자분은 ‘아프다’, ‘괴롭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조금이라도 통증이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그는 진통제를 거부하며 마지막까지 참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_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중에서


 

그분은 전쟁에서 두 형제를 잃었습니다만 어쩌면 본인은 ‘전쟁으로 죽은 형제가 받았을 고통에 비하면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별것 아니다’, ‘나는 오래 살았고 가족이 있으며 손자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젊어서 죽은 형제는 환자분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동안 삶의 버팀목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결정한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설령 자신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이더라도, 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듯 죽는다 해도 인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반드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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