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혜화문
주산인 백악산을 내려오면 도성 안 가장 낮은 지세인 좌청룡 낙타산을 이어가는 북쪽 관문이 있다. 양주와 포천 그리고 함흥으로 가는 중요한 성문이다. 동쪽의 소문이었지만 한양 북쪽을 지키는 숙정문을 대신하여 30여 명이 성문을 지키며 대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악산을 내려와 낙타산 가는 길목에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중요한 관문이 있다.
혜화문이다.
1397년(태조 6) 지어져 북문과 동문 사이의 동소문으로
수유을 거쳐 의정부, 양주, 포천 방면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문 역할을 한다.
숙정문이 폐쇄되어 소문이지만 대문의 역할을 한다.
혜화동 고개, 동소문 고개, 혜화동, 동소문동 등
혜화문에서 유래된 지명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혜화문 창건 시에는 홍화문이라 칭하였고,
1511년(중종 6)에 창경궁 홍화문과 혼동된다 하여
혜화문으로 이름을 바꾼다.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의 성곽길은
도성 밖 성벽을 쉼 없이 걸을 수 있어 좋다.
7월 한여름,
성곽길에 자라는 토마토는 지금은 푸르지만
소서가 되면
빨간빛 열매로 영글어 갈 것이다.
백악산과 낙타산 사이 가장 높은 성문
가장 높은 주산인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산세와 가장 낮은 좌청룡 낙타산의 주변에는 새들이 많았다. 혜화문 홍예에는 새들의 왕인 봉황이 그려져 있다. 새를 쫓고 악한 기운을 막으려 한 지혜이다.
성곽길 여기저기 바람이 세차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 24절기 중 19번째 입동이다 ~
서리가 내리는 상강과 첫눈이 내리는 소설 사이,
산과 들, 나뭇잎은 단풍 들어 날리고, 풀들은 바짝 말라간다.
무와 배추로 김장하여 겨울채비를 한다.
추어탕이 제철인 듯, 도랑탕 잔치라도 해야 할 시기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추워지는 계절이다.
백악산과 낙타산 사이,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날,
새아침,
활기차다~
내4산인 백악산, 낙타산, 목멱산, 인왕산 성곽길 안,
힘찬 기운이 4대문과 4소문을 깨운다.
600여 년 전 조용한 아침처럼..
역사는 만난다.
역사는 흐른다.
함흥으로 가는 문, 성균관과 카톨릭이 공존하다.
한양도성 4대문과 4소문 안에 궁과 궐이 있고, 종묘와 문묘가 있다. 519년 조선왕조를 굳건히 지킨 유교의 중심에는 성균관이 있다. 백악산 자락에서 낙타산으로 오르는 곳에 성균관대학과 카톨릭대학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또한 혜화문 따라 가장 아름다운 성곽길을 걸으면 혜화동 성당과 카톨릭 성지가 성안과 성밖을 가로지르고 있다.
1909년 낙타산 자락에 혜화동 성당이 들어선다. 카톨릭 성지로써 주변에 카톨릭 학교가 세워진다. 또한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교가 설립되어 해방 후 서울대학교로 이름이 바뀌면서 교육의 메카인 대학로가 되었다.
구름재를 넘어간다.
"노락당과 하늘 사이가
한 자 다섯 치 밖에 안된다."
궁궐은 아니었으나 궁궐보다 더 큰 위세를 누렸던 집.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집, 잠저이다.
운니동 114-10.
운현궁의 가을이다.
혜화문을 따라 내려오면 명륜동에 오래된 가옥 한 채가 보인다.
운석 장면 박사의 집이다.
초대 주미대사 이후
2대 국무총리와 부통령을 지낸 역사적인 인물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제 2공화국 총리,
1966년 6월 4일 명륜동 가옥에서 잠든다.
인재양성과 학문부흥을 위해 한양도성 안 성균관을 짓고 유학을 가르친다.
도읍지 한양엔 성균관,
지방엔 향교를 짓는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성균관과 향교는 거의 불에 타 소실된다.
가슴 아픈 역사다.
100년 후 후손에게 전해야 할 세계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