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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13. 2018

04. 인의예지, 유교의 시작을 알리다.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흥인지문


한양도성 인왕산과 백악산을 지나 성곽길 따라 18.627km를 걷다보면 가장 낮은 지형에 이른다. 한양이 배산임수, 서고동저로 되어 도성을 둘러싼 내4산의 물줄기가 한 곳으로 모인다. 인왕산 물줄기는 청계천의 원류로 수성동 계곡과 사직단을 돌아 내려온다. 또한 백악산 물줄기는 경복궁을 지나 청계천을 향해 동쪽으로 향한다. 청계동천과 백석동천은 예부터 산이 깊고 계곡 물이 많았다. 흥인문은 지반이 낮아 땅을 돋운 뒤 축조하였다. 1396년(태조 5)에 4대문과 4소문을 짓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1398년(태조 7) 제일 늦게 옹성을 쌓으며 완성한다.
  
4대문 중 2층 문루를 지어 동쪽으로 나가는 최대의 관문 역할을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흥인문은 조선 말 고종에 의해 재건된다. 동쪽의 약한 지세를 4글자 정사각형 현판으로 힘을 되살리며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2글자씩 써넣어 독특한 현판 양식을 남긴다.


낙타산 자락에 흥인지문을 나선다.
낙타의 등 같다 하여 낙타산, 타락산이라 불린다.
124m 정상에서 성안과 성 밖을 본다.
  
인왕산, 백악산, 목멱산과 청계천
그리고 삼각산(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이 한눈에 보인다.
어진 마음을 북돋우라고 일컬으며 쓰여진다.
정사각형의 현판에 2글자씩 4글자이다.
흥인지문.
  
8개의 성문중 유일하게 옹성을 쌓으며, 늘~ 백성을 돌본다.
  
역사는 흐르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힘들지만 오늘도 힘차게 굴러간다.

한양도성 성곽길,
낙타산을 따라 내려오는 길.
서울 도성의 정동쪽, 흥인문이다.
  
1396년(태조 5)에 건립을 시작하여
1398년 가장 늦게 완성된 흥인문이다.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지기가 약하다 하여
그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흥인지문 4글자로 고친다.
  
종로 6가 69,
8개 성문, 4대문과 4소문 중 유일하게 반달 모양의 옹성이 둘러있다.
  
인의예지신,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 있다.
도심 속에 든든한 옹성이 있는 동쪽 대문이다.
서울 성곽길 도성 밖 화강암으로 건축된
위엄있는 자태의 흥인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꿋꿋이 버텨낸다.
  
흥인문 옆에 오간수교가 있는
청계천 변에 두루미 가족이 유유히 거닌다.
  
  
낙타산과 목멱산 사이 옹성을 갖춘 보물 1
 

4대문과 4소문 8개 성문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춘다. 낮은 지세에 적을 공격하기에 필요한 대문 밖에 성을 쌓고 성벽을 쌓아 성안을 공고히 하였다. 또한 내4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줄기는 청계천에 모여 수문을 향해 나간다.
     

새해 새롭게 내리는 첫눈 ~
마전교에 행복한 눈이 쌓인다.
종로 5가와 을지로 사이에 청계천 다리가 있다.
마전교이다.
  
조선시대, 마필을 사고팔던 곳, 마전이다.
종로에서 청계천을 건너야 소와 말을 살 수 있다.
소와 말을 팔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오늘 눈이 내리듯 옛날도 눈이 내렸다.
  
행복과 행운을 팔고 사던 곳,
청계천에 원앙새 가족이 눈을 맞는다.


     
낙산정 아래 양조루와 낙조루를 향해 거닐다.

내4산 중 가장 낮은 125m 산 정상에 오른다. 낙타등에 오른 듯하다. 낙타등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낙타산이다. 가장 낮은 산이지만 내려다 보는 한양은 평온하고 아름답다. 저 멀리 백악산과 목멱산 사이로 4계절 24절기 뜨는 태양은 낙타산에 걸린다.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과 셋째 아들 인평대군은 낙타산이 있는 이화동 마을에 누각을 짓는다. 형제의 우애를 전하며 뜨는 해와 지는 석양을 지켜본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성곽길 속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멋지다. 바쁜 직장인에게, 말없이 하루를 보내는 가족들에게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여유있는 길이다.
  
 

4월 초하루.
백악산에서 내려와 종묘를 향해 걷는다.
1394년(태조 3) 한양천도 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9월 완공한다.
종묘와 사직단. 좌묘우사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소실되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중건되나 광해군은 신위가 없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폐위된 왕 연산군과 광해군은 신위가 없다.
노산군에서 복위된 단종은 숙종 이후 종묘에 배향한다.
일제강점기에 순종이 승하한 후
창경궁과 종묘는 도로 건설의 미명하에 잘려나가 율곡로가 된다.
훈정동 1-2 사적 125호.
Jongmyo Shrine.
   

숭례문은 조선 초 건축양식으로 국보 1호이다.
  
흥인지문은 조선 말 건축양식으로 보물 1호이다.
  
8개 성문 가운데 유일한 옹성을 쌓은 문으로 흥인지문이었다.
  
좌청룡 낙타산 아래 지세가 약하여
옹성을 쌓아 적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또한 한양도성 안의 서고동저로 청계천 물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동쪽이 가장 낮은 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옹성을 쌓았다.
  
1396년(태조 5)에 가장 오랜 작업 기간으로 건립된다.
1453년(단종 1)에 중수되었다.
1869년(고종 6)에 개축하면서 흥인문의 약한 지세를
네 글자 정사각형 현판을 만든다.
정동 쪽 흥인지문이다.
  
흥인문 밖에는 버드나무가 울창하여 한양의 놀이터로도 유명하였다.
  
청계천 옆 오간수문의 중요한 역할만큼
운종가의 대로에 대문으로,
돈의문을 잇는 지금껏 중요한 성문이다.
  
비 그치면
보신각 종소리 들으며 흥인지문을 향해 걸어보자.
  
흥인지문도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고,
장마에 기청제를 지내는 중요한 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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