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닦는 CEO>
이런 여자가 있다.
지적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진 아버지,
똑똑하지만 냉정한 어머니,
매일 식구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가난한 살림의 장녀.
22세 어린 나이에 미혼모에 미망인의 몸으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자.
남대문에서 13년간 옷 장사를 했고,
청소용역회사를 운영해서 성공했지만,
식당업에서 폭삭 망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가
다시 일어선 여자.
43세에 덜컥 병에 걸려 15년째 뇌종양과 동거하는 여자.
바로 나다.
잘 살고 싶었고 남들처럼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미친 듯이 일해서 돈을 벌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여자 CEO로 보이는, 그럴듯한 명함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돈만 벌다 보니, 내가 일하던 분야 외에 다른 영역에서는 깡통이나 마찬가지다.
“누님, 혹시 깡패 아니었어요?”
2016년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닐 때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남학생(나는 53세 때부터 대학을 다니기 시작해서 20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부 중이다)이 나한테 건넨 말이다. 평소 눈썰미가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 별명을 단박에 알아맞히다니 신기했다. 그래도 시치미를 떼고 대꾸했다.
“뭐라고? 짜식아, 내가 어디를 봐서 깡패야?”
“거봐~ 거봐, 말하는 폼부터 깡패 맞잖아요.”
그는 너스레를 떨더니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누님 부군께서 깡패일지도 모르죠. 누님은 집에서 내내 갇혀 있다가 이제 나가도 돼, 하는 허락을 받고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쩌면 이렇게 아는 게 없을 수가 있냐고요.”
이 친구만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고생 한 번도 하지 않고 화초처럼 살았나 봐, 라고 하기도 한다. 죽어라 고생을 했는데 정반대의 평가라……. 내가 아는 게 없어도 어지간히 없나 보다.
허우대 멀쩡한 겉모습 이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내면을 절감하게 되면서 오십이 넘어서 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탐구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배우는 중이다.
배움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좀 더 큰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난 철저하게 내 울타리 안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목표에만 올인했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부족하지만 내 경험을 나누며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한 집안의 장녀, 장사꾼, CEO로 살아온 나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놓은 집약체다. 혹시 나와 같은 삶을 살았거나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13년, 시장 바닥에서의 장사 경험과 25년간의 회사 CEO로서의 경험은, 자영업자나 사업가들 입장에서 꽤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감히 자신한다.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는 책 한 권도 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책을 쓰게 되었으니 엄청난 변화다. 못난 모습을 들킬까 봐 벌벌 떨던 주제에 어떻게 이런 결심을 했는지, 이 책을 쓰는 순간순간이 신기하다.
당신 참 잘 살았다, 고생했다, 이런 칭찬을 받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기대하는 건, 내 삶에 대한 다른 이들의 냉정한 평가다. 그렇게 살면 되겠냐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달게 듣고 내가 변화하는 데 밑거름으로 쓰고 싶다.
살면서 늘 손가락질받을까 봐 두려웠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면 누구든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나를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책을 쓰면서 기꺼이 이것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매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못한 것은 못한 것대로 인정하고 다독이며 살고 싶다.
내 손도 잡아 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 손도 끌어 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혹시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나와 함께 가보지 않으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