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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02. 2016

04. 모르는 세계의 크기 줄이기

언어와 이미지의 크기가 생각의 크기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병기고다. 과거의 전리품과 미래 정복의 무기를 동시에 담고 있다.”

-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모르는 세계를 알아내는 도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할 수도 있고 소리를 감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만져보고 촉감을 활용하거나, 냄새로 확인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세계를 인지하는 도구로 감각을 사용한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망원경과 같은 감각 도구보다는 획득된 정보를 어떤 형태로 저장하고 출력하고 교류하는가이다.


  인지된 세계를 저장하고 출력하고 교류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저장은 기억이다. 어떤 형태로 머릿속에 저장되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출력은 저장된 기억을 재생하는 것이다. 기억이 어떤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르는가를 말한다. 물론 여기서 단순하게 저장된 것을 꺼내는 재생도 있지만, 재생에는 다른 기억이나 논리, 감정, 경험과 어우러져 통합적으로 발현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교류는 머릿속이 아닌 나라는 존재 밖으로 어떤 형태로든 출력된 기억을 내놓는 것이다.


  컴퓨터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저장하는 모든 데이터는 그것이 글자든 소리든 그림이든 움직이는 영상이든 ‘0’과 ‘1’로 변환되어 저장된다. 우리의 기억도 비슷하다. 가끔 오류가 생기는 것조차 비슷하다. 심지어 실제라고 믿는 가짜 기억도 만들어진다. 반대로 지우고 싶은 데이터를 지우듯,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먼저 사라지기도 한다. 큰 충격으로 만들어진 기억조차 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이것이 기억에 오류가 생기는 경우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사용하는 ‘0’과 ‘1’을 대신하는 우리의 기억 도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와 ‘이미지’다. 글자나 말과 같은 소리는 언어이고, 그림이나 움직이는 영상과 같은 것은 이미지다. 눈으로 본 세계도, 소리로 들은 세계도, 냄새로 기억하는 세계도 일단은 언어와 이미지로 기억된다. 더 놀라운 것은 출력 단계에도 언어와 이미지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냄새를 실제 감각으로 기억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냄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냄새는 언어나 이미지로 바뀌어 출력된다. 실제 감각으로 기억된 냄새는 오로지 자신만 아는 영역에서 나올 수가 없다.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그녀가 알고 있는 냄새를 이렇게 설명했다. “냄새는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으로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과일 향기는 나를 남부의 고향으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장난치던 어린 시절로 둥실둥실 띄워 보낸다.”


  실제로 냄새는 언어나 이미지와 함께 기억된다. 헬렌 켈러는 과일 향기를 눈으로 볼 수 없던 남부 고향 마을 이미지와 함께 기억했고, 복숭아 과수원의 추억을 담은 이미지를 냄새와 함께 기억했다. 그런데 냄새를 아무리 언어나 이미지로 설명해도 경험하지 못한 냄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박꽃 냄새를 맡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호박꽃 냄새를 언어나 이미지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르는 냄새를 이해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책 냄새나 닭똥 냄새를 알고 있다면 이를 경험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설명해보라.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언어로 설명하는 냄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는 색을 예로 들어보자. 유전공학으로 개발한 파란 장미를 선물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 장미의 색이 ‘청명한 가을 하늘 파란빛에 어릴 적 운동회 때 청군의 깃발을 섞은 파란색’이라고 표현했다고 하자. 상대방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운동회를 한 경험이 없어서 백기는 색을 추측할 수 있지만, 청기는 색은 추측할 수 없다면 장미의 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청색계열의 색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스펙트럼의 색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냄새만큼이나 색은 복잡하다.


  이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색은 앞서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악보를 떠올려보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악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와 같은 문외한은 ‘음표들의 집합’이거나 ‘복잡한 계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자라면 악보가 ‘누군가의 그림’이나 ‘음표들의 집합’이 아닌 ‘연주되는 음’이나 ‘예술작품’으로 보일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악보라는 이미지, 실제로는 음악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지에 따른 차이다. 그리고 그 해석력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초등학생의 동요 세계와 조성진의 클래식 세계처럼 말이다.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 심지어 생각과 상상력의 세계조차 언어와 이미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 여러분이 상상에 빠져 백일몽(白日夢)을 꾼다면 그 도구 역시 언어와 이미지다. 실제로 무엇이든 상상하면서 어떻게 자신이 상상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라. 언어와 이미지로 상상하는 자신을 금세 발견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사고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사고력을 키우고 세계와 소통을 잘하고 이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는 것이다. ‘빨강’이라는 단어를 모르면 그 색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영어’를 모르면 그들의 언어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언어만 이해한 수준이라면 대학의 교과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언어와 이미지를 끝없이 키워야 하는 이유다.


  결론은 이렇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감각이 발달해야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저장하고 상상하고 통합하는 언어와 이미지를 키워야 하고, 그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서 세계에 내 상상력과 노력의 산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악보로 남겼고, 연주자들은 약속된 언어로 해석해 연주한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소리’의 수준으로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할 뿐이다. 언어와 이미지 이해력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그런데도 언어와 이미지의 불완전성은 존재한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은 피카소가 그림에 담고자 했던 모든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베토벤이 악보에 자신의 상상력을 다 그려내 보여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음을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눈다고 한들 그것이 어떻게 인간이 상상하는 음과 같아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곡을 잘하려면 더욱 음과 이를 표현하는 음표에 능통해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에 능통해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언어보다 덜 중요시했던 이미지의 중요성이 부각하고 있다. 이미지는 평면의 이차원적 이미지에서부터 삼차원적 이미지, 사차원적 이미지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즐겨보는 3D 영화는 평면의 움직임을 삼차원의 공간으로 확대한 결과다. 스마트폰은 어떤가? 그 자체가 언어와 이미지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기기지만, 그 기기 이미지 자체의 미적 아름다움도 기기의 가치를 만든다. 원시시대 원시인의 돌도끼 같은 스마트폰을 들고 자랑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조명받는 이유는 인류에게 축적된 엄청난 생각의 힘을 언어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이 세월과 관계없이 사랑받는 이유와 같다. 이제는 이미지의 힘에도 주목해야 한다.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는 차원적 이미지 사고력의 중요성을 조각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조각이 평면 예술보다 어려운 것은 삼차원적인 형태에 감응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색맹인 사람보다 형태맹인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나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바위는 이미지로 보이고 그것을 표현한 단어 ‘바위’는 언어다. 바위의 성질을 표현한 과학적 수식어들도 언어다. 건축물은 삼차원 이미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이미지에 능통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더 잘 공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를 더 잘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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