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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1. 2018

03. 현실을 바꾸고 싶은 꿈

<계단을 닦는 CEO>



겉만 멀쩡했던 우리 집은 나날이 가난해져 갔다.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부족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도 돈을 벌 수도, 모을 수도 없었다. 밥상은 초라했고 살림은 어려웠다. 그러나 남들 눈엔 여전히 부잣집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저녁때가 되면 친구 어머니가 “너 같은 공주님이 우리 집에서 어떻게 밥을 먹겠어.”라며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공주가 어디 있을까. 내가 정말 공주라면 아마도 저주받은 공주인가보다 생각했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말았다. 순하고 어리숙한 아버지는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차량 보증을 서주었다. 당시 운수업은 보험이 없어서 인사사고가 나면 타격이 매우 컸다. 그래서 운수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증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누군가가 형편이 어렵다면서 할부 차 한 대만 뽑게 도와 달라고 사정하면 그냥 도장을 꾹꾹 눌러 주었다. 간혹 아버지가 먹지도 못하는 술대접을 받고 오면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 준 날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이, 임 사장!” 아니면, “남진아!”라고 부르면서 이용할 뿐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아버지가 보증을 서 준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하자 결국 회사는 무너졌다. 훗날 어머니는 이때를 회상하며 많이 후회했다. 당신이 진즉에 나섰더라면 그렇게 많은 재산을 잃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나서면 안 되는 줄 알았고 아버지를 믿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아버지는 버스 운전, 빵 배달, 연탄 배달 등의 일을 전전했다. 아버지가 할 줄 아는 일은 오직 운전이었는데, 돈 계산을 잘못하거나 상황판단을 잘하지 못해 번번이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버스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승차 신호를 잘못 들어서 사람이 미처 타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을 하는 사고를 냈다. 승객이 버스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버지는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고 말았다. 어머니는 돈을 구하러 나가고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경찰서로 갔다. 열일곱의 나이에 처음 가본 경찰서는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다. 그러나 불안감에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형사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자 눈물이 났다. 다행히 피해자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많이 화가 나 있었다. 나는 피해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피해자는 합의금도 필요 없고 딸 때문에 합의해 주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경찰서를 나갔다.
  
이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잦은 사고를 냈다. 벌어 오는 수입보다 합의금이 더 많이 나가게 되면서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유치장에서 빼내기 위해 빚을 얻어 합의금을 마련하곤 했다. 쌀독에 쌀이 말라 가고 죽을 끓여서 일곱 식구가 나눠 먹는 날들이 이어졌다. 빚을 갚으라며 찾아온 사람이 어머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당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에 공포에 떨기도 했다.
  
나는 집안의 맏딸로서 반드시 우리 가족을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내겠다고 결심했다. 꼭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잘살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존재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품고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흙탕물 속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어려운 환경을 딛고 건강한 꿈을 키워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건강한 마음으로 꿈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고, 마음의 깊은 상처로 남아 두고두고 괴로워했다. 삶의 역경을 건강하게 감당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몰라 헤매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어려움을 만날 때 도망을 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속마음이 어떻든 겉으로는 의연하게 상대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의 힘으로 현실을 바꿔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나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 일을 피한 적은 없다. 맨주먹으로 사업체를 일구고 운영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의지와 책임감 때문이다. 그것이 남들보다 빼어난 것 하나 없는 내가 지금도 유일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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