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무릎 꿇고 동생에게 준 선물

<나는 언제나 술래>

by 더굿북

사형제 중 막내 여동생은 오빠, 언니가 학교에 가고 부모님이 회사에 출근하면 늘 혼자 집을 봤다. 맹긴이가 대산부락에서 혼자 집을 본 것만큼. 신월1동 사글셋방에서, 그리고 신월3동 칠성 연립에서 혼자 3년 정도 집을 지켰다. 서울에서 혼자 지낸 3년이 여동생에게는 아주 외롭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늘 엄마에게 칭얼대고, 울고, 매 맞고 또 울고, 칭얼대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어머니가 집에서 동생을 돌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벽돌을 찍는 공장으로, 인형 만드는 봉제공장으로 다니느라 바쁘셨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서울로 왔지만 당장 교육보다 생존 자체가 급한 시기였다. 쌀과 반찬 그리고 학교 공과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여동생을 따뜻하게 보살필 수 없었다. 동생은 고집이 세지고, 가슴에 있는 울분을 아무렇게나 표출해서 늘 매를 불렀다.

1학년부터 국민학교 6년 동안 동생은 매 맞고 울고, 고집 세우고, 맞고, 우는 식이었다. 나도 동생을 많이 때렸다. TV 채널만 해도 동생은 나한테 맞고도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아프다고 하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늘 때리고, 부모님이 있으면 동생이 내게 욕하고, 고자질하고 그러면 부모님이 날 때리고. 다음 날 또 앙갚음하고 또 고자질하고 그랬다. 참 가난한 마음으로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나 싶다. 집도 가난했고, 형제들이 주로 먹는 거 가지고 싸우고. 형은 옷 사주고 나는 왜 안 사줘? 누나는 해주고, 나는 왜 안 해줘? 이런 식이었다. 일하면서 사형제를 키우신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의 민원을 나무로 된 빗자루로 해결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지만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다.

신월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 전교조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틈만 나면 학교 뒷담벼락에 가서 주먹 싸움을 하고, 싹수없는 후배들을 패고, 손거울로 여선생님 치마 속을 보려고 애썼다. 신월3동 돌산파가 있었고, 화곡여중에 7공주, 흑장미, 뭐 조폭 영화 흉내를 내면서 빠른 애들은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

작은 악마들.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작은 악마들. 우리는 작은 악마들이었고, 선생님들도 만만치 않았다. 작은 악마들은 강자에게 맞고, 약자를 패는 것이 일이었다.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책 읽고 말하는 게 전부다. 하나 마나 한 모임이다. 생각이 다르든 말든 몇 마디 떠들면 그만이다. 이런 시시한 모임을 들어간 건 모임에 여자애들이 있어서였다.

책을 좋아했나? 동화책은 읽었지만, 소설책 같은 건 읽어본 적이 없어서 모임에서 정한 책을 읽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독서모임에서 세 번째 책으로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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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게 울었다. 불쌍한 여공들 그리고 그 여동생을 바라보는 전태일의 시선에 내 마음도 함께 했다. 부당한 상황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질 줄 알면서도,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동생들을 위해서 울던 전태일의 눈물을, 그 눈물을 함께 했다. 친구들과 토론을 마쳤다. 약자에 대한 동정심 이야기를 하면서 내 여동생 얘기를 잠깐 했다. 순서가 오면 몇 마디라도 해야 하니까. 며칠 동안 『전태일 평전』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토요일 오후 독서모임에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토론하기로 했다. 여동생이 학교에서 왔다. 서로 인사도 없었다. 약속 시각하고 시간이 남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동생을 안방으로 불렀다. 할 얘기가 있다고.

“아, 왜~”
동생은 벌써 시비조다. 정면으로 앉지도 않는다. 비스듬히 앉아서 네 살 많은 오빠에게 말을 던진다.
“왜에~”
“….”
처음으로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놀란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동안 때린 거, 보살펴주지 못한 거. 스스로 그동안 너 때린 거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오빠는 달라지고 싶다고. 할 수 있거든 용서해달라고.
“….”

한참 묵직한 침묵이 흐른 다음에 갈라진 음성으로 동생이 알았다고 “오빠 혼자 좀 있을게.” 한다. 나는 마루로 나와 서성인다. 이 멋쩍고, 안절부절못한 마음은 뭐지? 이 어수선한 마음은? 괜히 거울에 있는 얼굴을 본다. 많이 낯설다. 방에서 동생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엉엉 운다. 깜짝 놀라서 들어서려는데 동생이 말한다. “오빠 혼자 있을래. 나가 나가줘.”

다시 나와서 서성이면서 안방을 본다. 동생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데 울컥한 마음에 참을 수가 없다. 방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동생을 안아준다. 흐르는 내 눈물을 닦고 동생 얼굴을 잡고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준다. 손바닥은 내 눈물로 젖어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왜 손등으로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주는지 처음 알았다.

화곡터널을 지나 가로공원으로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가는 중이다. 여동생은 그동안 나에게 맞아서 울던 그 어떤 울음보다 깊게 서럽게 울었다.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어지러워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앉는다. 내가 진심으로 한 첫 번째 사과였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데 여동생이 “왔어?” 한다. 눈을 마주치고 돌아선다.
“으응~”
동생이 대들어서 내가 때린 게 아니라, 내가 때려서 동생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많이 늦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동생에게 해준 건 겨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였다.

“미안해.” 그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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