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중국의 보석 디자이너, 정쯔잉

<중국 디자인이 온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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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쯔잉은 중국의 대표적인 쥬얼리 디자이너로 현재 젠 디자인(Zen Design) 보석 공작실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파격적인 표현 형식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특히 전위 예술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에 빠져 들었다. 그 스스로도 머리를 길게 길러 예술 청년의 이미지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생동감 넘치는 예술에 열광했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던 그가 섬세한 쥬얼리 디자인을 전공으로 삼은 것은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쥬얼리 디자인은 그의 성격에 잘 맞았다. 말수가 없고 행동이 차분했던 그는 혼자 무엇에 골몰하여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꼼꼼한 마감을 요하는 보석 세공은 그에게 꽤 잘 맞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쥬얼리 디자인의 세계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았다. 워낙 값비싼 재료를 취급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고,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학부생에게 누군가 프로젝트를 의뢰할 가능성도 희박했다. 그래서 그는 각종 공모전에 닥치는 대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만약 선정이 된다면 기업의 후원으로 다양한 재료의 쥬얼리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을 터였다. 특히 국제 공모전은 더 넓은 시야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 결과 그는 국내외 디자인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 일찍이 쥬얼리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졸업 전시회 때 쥬얼리 디자인 작품을 내놓으며 중국 내에서 촉망받는 쥬얼리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쥬얼리 디자인 작업은 흥미로웠지만 그는 쥬얼리 디자인의 고전적 전형들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로서는 과거와 똑같은 형태들을 답습하는 관행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기존 쥬얼리 디자인의 고전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쥬얼리 디자인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장식적이고 고풍스러운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보다 순수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시도했다. 그래서 그의 쥬얼리 작품은 액세서리이지만 마치 조각이나 건축과도 같은 묵직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징션왕궈(精神王国)>만 보더라도 그렇다. 황금색의 순금으로 제작된 이 쥬얼리 작품은 보통 금목걸이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형태를 탈피해 마치 거미줄과도 같은 기하학적 짜임새를 갖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동그라미와 직선, 네모로 연결되는 이 목걸이는 정쯔잉이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조형미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jpg?type=w1200 기하학적 형태의 목걸이 <징션왕궈(精神王国)>


이후에도 그는 DIA, Gold Virtuosi, EFD, HRD 등과 같은 세계적인 쥬얼리 디자인 상을 휩쓸며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2010년 상하이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쩐시후즈(珠穆朗玛)>, <쭈모랑마(钻石胡子)> 등과 같은 작품을 출품하며 자신의 독특한 쥬얼리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쩐시후즈>는 ‘다이아몬드 수염’이라는 뜻으로, 여배우가 턱 밑에 수염처럼 쥬얼리를 매달고 있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2.jpg?type=w1200 다이아몬드 수염 목걸이 <쩐시후즈(珠穆朗玛)>


다이아몬드라는 고급스럽고 값비싼 재료를 로큰롤 스타의 액세서리처럼 경쾌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그가 지금까지의 중국 쥬얼리 디자이너들과 다른 길을 걸으려는 신호탄으로 읽을 수 있다. <쭈모랑마>는 특유의 화려한 조형미로 벨기에의 왕실에 소장되는 등의 성과를 올리며 국제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그간 몸담았던 대규모 쥬얼리 브랜드에서 독립하여 2012년 젠 디자인이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설립한다. 대기업에서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만 부서의 분업이 세분되어 있어 일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그는 상업적인 이익이 적더라도 자유롭게 창작하며 작업의 성취감을 느끼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열망했던 부분은 쥬얼리 소재의 선택이었다. 그가 재직했던 회사는 다이아몬드 브랜드였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쥬얼리의 종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나 관례적인 귀금속에 얽매이지 않고 디자인에 맞추어 자유롭게 재료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한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전시를 보러 다녔다. 전시는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루는 베이징에서 열린 전시를 보러 갔는데, 2014년 말의 해를 기념하며 말과 관련된 유물과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여기서 그는 고대의 말 투구를 마주하게 된다. 말 투구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말을 보호하기 위한 무구로 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 형상에서 영감을 얻어 말의 머리 모양을 본뜬 쥬얼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군사적인 상징에서 벗어나 장식적인 목적으로 말의 머리를 재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머리라는 뜻의 <마쇼우(马首)>라는 작품에서 말의 정면을 백금, 로즈골드, 그리고 대나무까지 다양한 소재로 투각하여 새로운 개념의 쥬얼리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금속뿐 아니라 비교적 가벼운 소재인 대나무로도 시리즈를 만들면서 말 머리가 지니는 군사적 흔적을 완벽히 제거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기존 쥬얼리의 고전적인 형태와 소재를 전복하는 시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jpg?type=w1200 말 머리를 형상화한 쥬얼리 <마쇼우(马首)>


중국과 프랑스의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정쯔잉의 <마쇼우> 작업이 프랑스의 미술관에 전시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자체 제작한 대나무 말 브로치를 넥타이에 달고 프랑스에 방문했는데 관람객들이 그의 말 시리즈에 관심을 표하며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다양한 소재로 제작한 말 머리 시리즈의 가능성을 직감했다.

이후에는 다양한 전통 동물들로 디자인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예로부터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용을 비롯하여 다른 12지 동물들을 대나무 투각으로 만들었다. 이 대나무 펜던트, <스얼셩샤오(拾贰生肖)> 들은 《2017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하며 기존 쥬얼리 디자인에서 벗어난 그의 실험적 시도를 성공적으로 입증하였다.

4.jpg?type=w1200 12지 쥬얼리 펜던트 <스얼셩샤오(拾贰生肖)>


이 밖에도 정쯔잉은 서양의 양식을 따르면서 동양적 소재를 응용한 쥬얼리 작품들로 동서결합의 가능성을 꾀하고 있다. 중국 산수화에 나오는 울퉁불퉁한 돌 모양의 크리스털 쥬얼리, 중국 전통 공예에서 볼 법한 양 모양의 옥 세공이 장식된 반지 <산양카이타이(三羊开泰)> , 중국 찻주전자 모양이 조각된 목걸이 <츠차취(喫茶去)>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중국적인 쥬얼리 디자인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5.jpg?type=w1200 용을 형상화한 다이아몬드 쥬얼리


6.jpg?type=w1200 중국 전통 찻주전자를 형상화한 쥬얼리<츠차취(喫茶去)>


7.jpg?type=w1200 양 머리를 형상화한 반지 <산양카이타이(三羊开泰)>


이렇게 실험적인 작업이 가능한 독립 스튜디오를 설립한 것은 그의 작업 방향에 있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는 애로 사항도 있다. 대기업 직업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그가 직접 고객들을 응대할 필요 없이 하달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맞춤형 쥬얼리를 콘셉트로 내건 이상 자신이 직접 고객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정서와 취향을 적극 발굴해야 했다. 애초부터 말수가 적은 그에게 이러한 응대 과정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구매로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쥬얼리 디자인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시장성과 예술성을 함께 아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상업성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지극히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하는 쥬얼리 디자인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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