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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6. 2018

07. 청소용역을 시작하다.

<계단을 닦는 CEO>



“아파트나 빌딩을 청소하고 관리해 주는 일이에요. 처형과 함께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어요. 같이 해보실래요?”
“그런 일이 있구나. 일할 곳들이 많아요?”
  
셋째 제부는 강남의 아파트들을 다니면서 베란다에 샷시를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제부는 새롭게 생겨나는 아파트와 빌딩을 관리하는 사업을 생각해 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청소용역업은 너무나 생소한 업종이었다.

지금이야 웬만한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과 빌딩들은 건물 청소 및 관리를 위해 용역회사(요즘은 고상하게 ‘아웃소싱’이라고 표현한다)를 이용하는 게 상식처럼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일은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자리 잡은 상태가 아니었다. 또한 용역이라고 하면 소위 ‘깡패’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남의 이권을 빼앗으려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고 과도한 소개비를 떼어먹는 정도의 일로 인식되었다.
  
용역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참여하는 CEO 모임에서도 내 직업을 소개하면 무시하는 말투로 바뀌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와 같은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비도덕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양심적으로 운영하면 편견쯤은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어머니는 집을 대출받아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낮에 청소용역 일을 하고 밤에는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소용역 일이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남대문 가게를 친구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잘나가던 가게였지만 아무 대가도 받지 않았고, 판매 수익만 분할하기로 했다.
  
청소용역업은 남대문 옷장사와 여러모로 달랐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발로 뛴 만큼 효과가 바로바로 나타났다. 땀 흘린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파트와 빌딩 건설 붐까지 맞물려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남대문 점원부터 시작했던 열일곱 살 꼬마, 스물둘에 과부가 되었던 내가 회사를 차리고 성공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타이밍과 촉이 좋았을 뿐 아니라 운도 따라 주었다. 내가 시도한 일이 시대의 니즈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인생이 온통 ‘재수 없는 년’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바로 매일의 최선이다.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았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약수 물이라고 여겼듯이 모든 일은 내 마음에 달렸다고 믿었다. 내가 마시는 물이 썩은 물인지, 약수인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악착같이 매달렸고,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초라하지만 언젠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간절히 믿었기 때문이다.
  
  
달걀 프라이가 되기 싫다면
닭장을 박차고 나가라.

간절함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매일의 최선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 두 가지를 느끼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곤 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스펙이 좋은 사람이라도 이 두 가지가 느껴지지 않을 때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리 회사가 담당하는 어느 빌딩에 청소용역을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빌딩 앞 공원에서 직원들과 함께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준수한 외모에 말쑥한 차림새, 점잖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건물 청소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이런 일 안 해보셨을 것 같은데, 저희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세요?”
  
그가 아까부터 우리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도 호기심이 가던 차였다.
  
“네, 괜찮으시다면 방법을 알고 싶네요.”
  
그는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명예퇴직을 한 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인 여유는 있지만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집에서 소일하게 된 상황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나에게 와 닿았다. 나는 “관심이 있다면 이쪽으로 한번 방문해 주세요.” 하며 명함을 건넸고, 그는 약속을 잡아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청소용역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사무실도 구경시켜 주었다.
  
“대표님, 저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설명드린 것처럼 저희 일은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그동안 하셨던 일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요. 시켜주시면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간절히 일을 원했다. 일터에서 쫓겨난 자기의 처지가 너무나 한스러웠던 중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마치 먹잇감을 입에 문 맹수처럼 그는 일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첫눈에 남달라 보였고 대화를 나누면서 신뢰감이 싹텄지만, 나는 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재차 확인했다. 그동안 나에게 일을 하게 해달라며 부탁을 해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일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금세 그만두었다. 우리나라 정서상 땀을 흘리는 일은 호감을 받기 어려웠다. 나는 그의 마음이 순간적인 것인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저처럼 명퇴를 한 친구들이 주위에 많아요. 경제적 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공통점은 그동안 하던 일과 동떨어진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저는 아예 물러서는 것보다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그는 우리 회사에 입사하여 6개월간 현장근무를 했다. 현장근무를 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빌딩이나 아파트 등을 직접 청소, 관리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열정이 있는 데다 눈썰미가 뛰어나 현장을 빠르게 익힌 그는 이후 사무실에서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고, 몇 년간 충실히 일한 후 직접 청소용역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해준 그가 사업 초반에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거래처를 소개해 주고, 회사운영 시 주의할 점들도 알려 주었다. 현장 경험을 탄탄하게 쌓은 그의 사업체는 지금 순항 중이다.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는 정의는 많다. 유명인들,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의 좋은 말들을 내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의 정의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는 성공은 한 발짝 차이다. 불만족스러운 현재에서 새로운 미래로 딱 한 발만 내디디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고 싶어 한다. 남들 보기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리고 근사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한 바람이 너무나 간절한데, 정작 뛰어들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인생을 꿈꾸면서도 가만히 머물러 있는 한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을 한탄하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순응한다면 달걀 프라이가 될 뿐이다. 병아리가 되고 싶다면 깨어져 프라이가 되기 전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설혹 따뜻한 닭장을 나가는 위험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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