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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7. 2018

02. 진정한 고부갈등은 출산 후부터

<B급 며느리>



진영이는 아이를 낳고 나서 여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자는 평생에 걸쳐 외모를 가꾼다. 진영이에게 그것은 일종의 즐거움이었다. 진영이는 다채로운 옷, 신발, 가방, 헤어스타일을 가꾸며 쾌락을 느꼈다. 옷에 대한 선택지가 많지 않은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출산 후에는 화장품은 물론 로션도 마음대로 바르지 못한다. 수시로 젖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씻을 시간도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출산 후에는 신체가 변해서 예쁜 옷을 입을 수 없다. 편하고 실용적인, 젖 주기 좋고 이물질이 묻어도 관계없는 옷을 입게 된다. 젖이 새서 옷에 묻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때 여자의 몸은 젖을 먹이기 위한 기계다.
  
그리고 수면이 부족해진다. 자신이 영위하던 생활은 박탈되고 아기에게 완전히 종속된다. 몸과 마음이 전부. 진영이는 이 종속이 남편이 가사분담을 하는 정도와 관계없이 아기를 낳은 모든 여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남편이 해줘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진영이는 아기에게 종속되어 옴짝달싹 못하던 이 시기에 모든 것을 원망스러워 했다. 전례 없이 우울하고 예민한 시기였다. 산모의 박탈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이때는 친구, 가족, 동네 아줌마까지 모두가 아기를 중심에 놓고 말을 던진다. 엄마가 아파도 “아이를 위해서 빨리 나아야지.”라고 말한다. 음식도 젖이 잘 나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준다. ‘이거 먹어라’, ‘저건 하지 마라’, ‘이게 좋다더라’ 등등은 모두 아기를 위한 것이다.
  
시부모 역시 새로 태어난 손주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화법을 구사한다. 게다가 그들의 눈에는 손주가 굉장히 예쁘기 때문에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이때 진영이는 몹시 날카로웠다. 진영이는 “내가 오빠네 집에 애 낳아주러 왔어?”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아기를 돌보고 소모되는 것은 자신인데, 본인들이 필요하고 원할 때 맡겨놓은 짐 찾아가듯이 아기를 요구하면 몹시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되물었던 것 같다.
  
이때는 부부관계 역시 소원해진다. 처음 겪어보는 육아는 모두에게 힘들다. 지친 부부는 대화가 줄고 정서적으로 멀어진다. 이 와중에 시부모가 자꾸 찾아오면 더 위험해진다. 진영이는 이런 시기에는 부부가 차분히 극복할 수 있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다. 시부모는 손자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며느리에 대한 배려를 망각할 때가 많다. 그런 시부모님의 작은 말에 며느리는 큰 상처를 받는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서울에 온 부모님은 해준이와 맛있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해준이를 데리러 온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
“해준이 고기 좀 먹여라. 아주 그냥 허겁지겁 먹더구만.”
  
나는 이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람? 내가, 아빠인 내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아이한테 고기를 안 먹일까? 젠장.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 나는 진영이가 말했던 분노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제삿날에 폭발한 것은 이런 방식으로 켜켜이 쌓인 감정 때문이었다고 진영이는 말한다. 진짜 고부갈등은 출산 후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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