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Feb 26. 2018

01. 며느리도 손님이다.

<B급 며느리>




“난 시댁에 가면 손님이야.”


김진영의 이 한 마디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응?”

“나는 오빠네 집에서 어려워해야 할 사람이야. 시부모님 입장에서 나는 오빠보다 더 멀리 있는 사람이잖아?”

“뭐?”

“나는 오빠랑 결혼한 사람일 뿐이야. 그분들은 나를 잘 모른다고.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좀 어려워해야 하는 것 아냐?”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질문 자체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부부싸움을 관찰했다. 주로 부모님을 보았고 여러 친구들과 친척들이 시댁 문제로 싸우는 것을 지켜봤다. TV에서도 매일같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며느리가 손님이라니.

부모님이 주로 싸웠던 장소는 경부고속도로였다. 명절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날카롭게 아버지를 쏘아붙였다. 쩔쩔매면서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표정도 기억난다. 어머니는 바둑기사가 대국을 복기하듯이 그날의 일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시댁 어른들이 무심히 던진 한마디, 동서가 시댁에 나타난 시각, 눈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아버지…. 어머니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아버지는 식은땀을 흘렸다. 뒷좌석에서 나는 스쳐 지나가는 가드레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김진영이 어머니처럼 말했다면 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눈치껏 핑계를 대며 시어머니 기분을 맞춰주다 적절한 때 시댁을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 그분들 기분을 내가 맞춰줘야 해? 그분들은 왜 내 기분 안 맞춰줘?”

“제사에 며느리가 꼭 참석해야 돼? 내 할아버지도 아니잖아. 오빠 할아버지잖아.”

“여기는 엄연히 내 집인데 그분들이 좀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남의 집에서 왜 그렇게 행동해?”

“왜 날 존중하지 않아?”


김진영의 질문은 훨씬 근본적인 것이었고, 나의 대답은 궁색했다.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냥 그런 거라고. 이유 따윈 없어. 으른들은 다 그래. 바뀌지 않는다고.”

김진영은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매너를 묻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는 보통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 고부관계만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을까? 나는 왜 이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04. 스토리 만들 때 주의할 점 4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