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디자인>
당연함으로, 그리고 그 당연함이 이제는 애착과 애증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월드컵은, 아마 그런 존재인 듯싶다. 물론 2002년을 기점으로 말이다. 그땐 그랬다. 아주 강렬했고, 또 신나기도 했고….
그럼 이쯤에서 그때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아마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었을 것이다. 이 경기는 숨 막히는 공방전과 연장후반 터진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로 우리 축구 역사의 신화가 되어버렸다.(물론 우리들의 입장에서만 말이다.) 그런데 혹시 이 경기를 자세히 기억하고 계시는지? 사실 이 경기의 가장 큰 묘수는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바로 주죽 수비수들을 모두 공격수로 교체한, 어쩌면 너무나도 무모했던 감독의 전술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바로 월드컵 이전부터 전 선수들이 멀티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한 ‘멀티 플레이어’훈련, 그리고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할 시스템 덕분이었다고 한다.(미디어를 통해서도 히딩크 감독은 이런 준비를 사전에 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를 둘러싼 제품 중에도 바로 이런 ‘멀티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오늘 이야기하고픈, 바로 이 제품처럼 말이다.
所費와 消費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암앤해머의 ‘베이킹소다’는 아주 재미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처음 이 상품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는 여타의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판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상품은 냉장고탈취제를 비롯한 다양한 활용법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고…. 그런데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바로 이 제품을 만든 암앤해머 사의 반응이었다. 구전되던 이 이야기를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공개했다는 것.(그 결과로써 암앤해머의 ‘베이킹소다’는 현재도 많은 용도에 사용되는, 탁월한 ‘멀티 플레이어’제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아시는가? 우리 주변에도 이런 ‘멀티 플레이어’상품들이 꽤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그 노력은 소비자가 직간접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이른바 이웃집 영희 엄마 비법과 같은, 공인되지 않은 방법들이지만 말이다. 오래된 와이셔츠 깃을 깨끗하게 만드는 주방세제, 민간요법과 같은 식초의 60여 가지 다양한 효능,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치약과 빨랫비누의 무한한 활용법 등….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세상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진 듯하다. 어느새 우린 빨래를 한번 하더라도 세제에 표백제, 섬유유연제 등, 3~4가지를 같이 넣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상품의 기능을 세분화해 돈을 벌려는, 기업의 전략에 빠졌기 때문일까?
결국 결론은?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한다.”로 정리되는 듯싶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꽤 오래전부터 그걸 더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멀티 플레이어의 전술이 우리를 환호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때처럼 말이다. 이유는? 우리의 세상이 너무나 분화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원치 않았던 방법으로, 원치 않았던 삶으로도 말이다.
디자인이란
단순히 그것이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기능하느냐이다.
_ 스티브 잡스(Steve Jobs)
멀티 플레이어란 사전적으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정보가 난무하는 지금의 삶 속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란… 사실 꽤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는… 모두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