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경제사>
재미와 환상, 모험이라는 여러 흥행 요소가 황금비율로 배합된 『피노키오의 모험』 곳곳에 ‘못된 사람’이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지독한 ‘악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콜로디의 원래 의도가 잘 반영된 전편이 특히 그렇다. 거짓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거짓말은 엄중하게 단죄해야 할 죄악이라기보다 호기심 가득한 말썽꾸러기들이 어울리는 자연스런 일상에 좀 더 가깝게 묘사되었다. 이뿐 아니다. 후대의 해석과 윤색에 익숙해진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인간이 되고픈 나무인형의 ‘꿈’ 역시 원작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원작에서 피노키오는 내내 나무인형의 삶에 만족했고, 작품 끝자락에 가서야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모험심과 호기심 가득한 어린 주인공이 소소한 일탈 행위를 일삼는 이른바 ‘모험소설’, ‘건달소설’ 범주로 묶을 수 있는 『피노키오의 모험』이 일차적으로 그리려 했던 건 삶의 풍요로움, 일상의 다양성에 가깝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겐 오랜 분열과 정체를 끝내고 찾아온 확장의 시대, 팽창의 시대, 진보하는 시대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여러 사회경제지표가 말해준다. 남부지역 농업경제의 생산성은 여전히 낮았고, 구매력도 부족해 제조업 발전에 필수적인 ‘국민시장’의 형성은 더뎠으나, 생산재 부문과 북부의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성장전략은 수치상으로 놀라운 성과를 냈다. 1880년을 전후한 10여 년간 평균 성장률은 7퍼센트를 웃돌았다. 경제발전론의 관점에서 이탈리아는 분명 ‘이륙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속도만큼이나 빛과 그늘의 대비는 확연했다. 성장과 풍요의 열매는 북부 공업지역, 신흥 시민계층, 대기업 조직노동자에 한정되었다. 남부 농촌지역을 포함해 도시 하층계급, 비조직 노동인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아니 외려 더욱 혹독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이탈리아 디아스포라(Italian diaspora)’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이민 행렬은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 대부분이 짊어져야 했던 고된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피노키오의 모험』에는 자유와 모험의 코드와 조금 다른 흔적도 눈에 띈다. 통일국가가 내세웠던 약속과 이상이 채 완수되지 못하는 걸 지켜보는 당대 사람들의 실망감과 불안감, 이와 맞물린 통렬한 사회비판의 정서다. 조직범죄(인형극단)나 강도·사기(여우와 고양이)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는 카를로 콜로디가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도 결코 눈을 감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라 할 만하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볼 때, 『피노키오의 모험』이 서 있는 자리는 ‘통일국가와 파시즘의 딱 중간 정도’라는 비평가들의 평가가 설득력을 지닌 듯 보인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만큼 『피노키오의 모험』은 ‘원본’보다 ‘해석’의 무게감이 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