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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08. 2018

04.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 창의적인 도전가

<리더십, 난중일기에 묻다>


학익진, 해전(海戰)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이순신 하면 많은 이들이 필사즉생(必死卽生,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의미), 즉 장군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필사즉생이 좋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면, 너무 비장하지 않은가?
  
나는 필사즉생이란 말에서 죽음보다는 삶을 보았다. 적을 무찌르기 위해 죽어도 좋다는 게 아니라, 죽을힘을 다해서 적을 무찔러 다 함께 살아나자는 의미인 것이다. 나 하나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에 대한 적극적이고 필사적인 애정, 이것이 필사즉생이다.
  
조선 수군을 폐하겠다는 선조의 명령에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로 답했다. 열 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승리한 명량해전을 두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기적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한 계산과 예측, 치밀한 사전준비, 치열한 심리전을 통해 거둔 승전이었다. 장군은 살아야겠다는 투지 하나만 갖고 무모하게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조선 수군과 백성들을 살릴 방법을 죽기 살기로 연구했다. 과학적으로, 치열하게. 그러한 연구 결과로 나온 것이 학익진(鶴翼陣)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 활용한 학익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름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으로 진형(陣形)을 짜는 것으로, 적을 포위해 공격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본래 학익진은 육지에서 전투를 벌일 때 쓰이는 진법 중 하나였다. 먼저 일렬로 진형을 취했다가 적을 맞닥뜨리면 가운데에 있는 군대가 뒤쪽으로 물러서고 좌우의 군대가 앞쪽으로 전진하면서 적을 둘러싸는데, 이때 학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반원형의 진형이 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해전의 모습은 멀리 적이 나타나면 적의 배를 향해 포와 화살을 쏘며 기세를 올리다가 배를 맞대고 넘어가 칼과 창으로 적과 싸우는 백병전(白兵戰)을 벌였다. 이것이 전 세계 모든 해전의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일반적으로 육지 전투에서 사용되던 학익진을 해전에 도입했다. 이는 장군의 창조적 응용력이 대단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많은 학자와 군사학 전문가들이 장군의 학익진을 칭송하는 이유는, 이것이 당시 조선 수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은 왜군과 비교하면 수적으로 명백히 열세이고 조총 때문에 전력상으로도 불리했기에 기존의 백병전 방식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었다. 장군은 아군과 적군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과학적인 전술을 연구했다. 그래서 적을 맞닥뜨려 총, 칼로 싸우는 백병전보다 적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포위해서 공격할 방법을 찾았다. 학익진, 거북선은 이러한 전략전술의 일환이었다.
  
장군의 전략전술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공격 무기가 있다. 바로 화포다. 포구에 포탄을 장착한 후 심지에 인화해서 발사하는 화포는 조선 수군의 원거리 공격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주는 무기였다. 당시 조선은 여러 종류의 화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포의 크기, 화약의 무게, 사정거리 등에 따라 구분된다.
  
그중 하나인 천자총통의 경우 대장군전(길이 약 2~3m, 지름 약 15cm의 크기에 앞쪽에는 쇠 촉으로 만들어진 대형 화살 모양)을 장착해서 발사하면 약 1km까지 날아가 적선을 관통했다고 한다. 적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무기로 쇠로 만든 탄환인 조란환(새알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 영화 ‘명량’에서 마지막 전투에 적선과 배를 붙여놓고 발사한 무기가 조란환이다)도 있다. 조란환을 총통에 수백 개씩 장착, 발사하면 한 번에 많은 적을 살상할 수 있었다.
  
함포 공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조선 시대의 수학책이라고 볼 수 있는 <구일집>에는 거리측량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바다에서 섬을 바라보면서 거리와 높이를 계산하는 방법인 ‘망해도술’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 그럼 학익진과 화포를 활용해 조선 수군과 왜군이 싸우는 모습을 잠깐 상상해보자. 왜 수군의 배 100척이 4열 종대로 오고 있을 때 조선 수군은 1열 횡대로 10척을 배치하고 기다린다. 적군이 점점 가까이 접근하면 조선 수군 10척 중 중앙에 위치하던 배들이 뒤쪽으로 물러서면서 좌우의 배들이 앞쪽으로 전진한다. 그러면서 포를 쏜다. 4열 종대로 진격하는 왜군은 앞쪽의 4척에서 포를 발포한다. 왜군의 배에는 대개 2문 정도의 포가 배 앞쪽에 장착돼 있다. 따라서 4척의 배에서 쏘아대는 화포는 총 8발이다. 이에 반해 조선 수군의 배에는 한 척당 적어도 좌, 우 6개씩의 화포가 장착돼 있다. 10대에서 함께 발포한 화포는 60발이다.



조선 수군과 왜군의 화포 공격 모습



처음 전투가 시작될 때는 100 : 10의 열세였지만, 학익진을 형성하는 순간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배가 4 : 10으로 바뀌었고, 화포를 발사할 때 8 : 60으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다. 명량해전,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 모두 장군이 주변의 지형과 학익진, 화포를 활용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앞서 2장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조선 수군의 판옥선도 장군의 전략전술에 유리한 배였다. 판옥선은 속도가 빠르진 않았지만, 좌, 우의 노를 이용해 배를 회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화포 공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보통 화포를 발포하고 나면 포구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고 난 후, 화약을 장착한 후 포탄을 넣고, 불을 붙이는 긴 시간의 공정이 필요했다. 왜군은 한 번 화포를 쏘고 나면 다음 포를 쏠 때까지 일정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조선 수군은 포를 발포하고 나면 바로 배를 회전시켜 반대쪽에 준비된 화포를 발사할 수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왜군보다 더 많은 함포 공격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상황에 맞게 여러 진법을 이용하면서, 조선 수군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고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사실, 학익진이 완벽한 진법은 아니었다. 육지에서 전투할 때에는 군사들의 방향전환이 쉽지만, 해전에서는 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 진형을 빠르게 전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적군이 선봉 부대를 희생시키고서라도 돌파하려고 밀고 들어온다면 학익진의 포위 진형이 깨어지고 아군이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즉, 학익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빠른 방향전환이 가능한 배, 빠른 공격으로 적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장군은 판옥선, 화포의 장점을 가지고 학익진의 약점을 극복하고 효과적인 전술로 활용했다. 장군의 승리는 자신이 소유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던 지혜롭고 창의적인 능력 덕분이었다.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
창의적인 도전가
  
얼마 전 A 제약 대표이사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엔 대표뿐만 아니라 몇몇 임원들도 함께했는데, 식사를 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던 중 대표가 인사담당 임원에게 웃으면서 한마디를 했다.
  
“좀 게으르더라도 톡톡 튀는 애들은(창의적인 직원들은) 좀 봐줘요!” 모두가 껄껄댔지만 그 얘기의 참뜻을 모두 알아들은 듯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고정관념을 벗어나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창의적인 직원들을 더 배려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얘기였다. 대표이사는 나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요즘 다른 기업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많은 기업이 어떤 커리큘럼의 교육에 관심을 두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기업들이 창의적 사고와 창조적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구성하고 있다. 현대의 조직은 왜 창의적인 인재를 찾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변화가 빠르다. 그런 만큼 돌발변수도 많아서 기업 환경이 예측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창의적 인재들의 독특한 발상은 기업의 미래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3M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는 강력 접착제를 연구하다가 실패했다. 그가 만든 건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거리지 않는 접착제였다. 실패의 결과물이었지만 그는 이것을 회사 기술 세미나에 보고했다. 이 이상한 발명품을 눈여겨 본 사람은 같은 회사 연구원이었던 아서 프라이였다. 프라이는 실버의 이상한 발명품을 활용해서 붙였다가 쉽게 뗄 수 있는 서표(書標, 읽던 책 페이지에 표시를 해두기 위해 끼우는 종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3M에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한 제도(개인의 연구를 위해 근무시간의 15%를 투자하도록 허용한 제도로, 15% 룰이라고 부른다)가 있었다. 프라이는 이 제도를 활용해서 실험을 거듭했고 마침내 포스트잇을 만들어냈다.
  
포스트잇의 탄생 배경에는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않았던 실버의 노력, 좋은 발상을 더욱 연구 발전시켜서 상품으로 만들어낼 줄 알았던 프라이의 독특한 발상, 직원의 창의적 연구를 격려한 회사의 제도가 있었다. 이처럼 조직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들과 그들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리더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창의성이라는 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분해와 재결합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길이 남는 창조적 발상의 경우 경쟁자 혹은 기존 시장의 장단점, 혹은 소비자의 욕구를 철저히 분석하고 관련 지식을 공부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장점을 극대화한 끝에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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