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후반전>
신체적 기능이 저하될 때 노화로 인한 상실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지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예전엔 일을 몰아두었다가 밤을 새우며 한 번에 처리했다면 이제는 매일 조금씩 분산해서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스케줄도 미리미리 조정하게 된다. 기능이 없어진다는 것은 한계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한계는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한계에 부딪히면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What should I do?)’, ‘무엇을 할 수 있지?(What can I do?)’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 자체가 지혜로 가는 길이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그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힘 좋고 혈기 왕성할 때를 떠올리며 자꾸 그때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곳은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중년기에 성숙으로 가려면 한계에 부딪힐 때, 기능이 상실될 때 한계를 인정하고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주변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어머니는 눈이 안 보인다며 종종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아들에게 내가 필요한 자료의 서베이를 부탁한다. 아들이 데이터를 쫙 뽑아서 가져오면 나는 ‘이건 되겠다, 저건 안 되겠다’ 같은 판단을 한다. 중년의 삶은 아랫사람을 돌보고 이들을 활용하면 된다. 중년은 자원이 없는 청년을 돕고 청년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중년을 돕는 것, 이것이 세대 간의 화합이다.
노화를 수용하는 첫 단계는 인식이다. 얼굴도 몸매도 성적인 기능도 전과 같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거울을 보며 ‘쯧, 이제 나도 늙는구나!’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화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전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괜찮지? 멋있지?’라고 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전과 같지 않다.’는 이 인식이 참 어렵다.
내가 달라졌음을 알게 되면 내 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그러면 그 저항이 무슨 저항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분석을 해봐야 한다. 젊은이 중심의 삶, 활기차고 건강한 삶, 팽팽한 피부와 건장한 몸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나 젊은이 중심의 삶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전과 같지 않음을 수용한 뒤 다음 단계로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마음은 여전히 젊은이다.’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러면 몸과 마음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 마음 따로 몸 따로. 수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면 분열된 삶을 산다. 그렇게 살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몸과 마음을 일치시켜야 한다. ‘내 마음이 20~30대로 가고 싶구나. 그때처럼 원기 왕성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여전히 있구나. 그런데 나는 40대50대지. 그때처럼 살 수는 없는 거지.’라고 나를 달래며 마음을 재조정해야 한다. 나이에 내 마음을 맞추다 보면 슬퍼진다.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있던 것이 없어지면 상실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상실감 때문에 남자들이 속으로 운다.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화가 필요한데, 남자들은 대화 대신 몸으로 상실감을 극복해보려고 한다. 중년기엔 남자들도 앉아서 대화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남자들에게도 수다가 필요하다. 수다를 안 떠니까 술 마시고 난장판을 만든다. 술만 마시면 계속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 이걸 주사라고 하는데 사실 이건 주사가 아니다. 평상시에 할 말을 못하니까 술을 마시고서 하는 행동이다.
노화를 수용하려면 이렇게 첫째, 이전 같지 않은 나를 인식하고 둘째, 내 마음을 분석해서 몸과 마음의 나이를 일치시키고 셋째, 상실감 극복을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다. 젊게 사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이 세대의 흐름에 따라 살지 말고 영원한 것에 뿌리를 내리는 마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