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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13. 2018

04. 자전거가 페미니즘을 만났을 때

<동화경제사>




『빨간 머리 앤』의 속편들에는 앤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자전거는 어른으로 성장한 앤의 중요한 이동수단이자 상징적 장치다. 앤은 자신의 두 발로 씩씩하게 페달을 밟으며 원하는 곳으로 자유로이 옮겨 다닌다. 매슈가 몰고 노새가 끄는 마차에 ‘얹혀’ 이동하던 열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모습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자전거는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전거의 역사만 따져도 알 수 있다. 19세기 초반에 발명된 자전거는 오래도록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초창기 자전거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자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다. 페달을 밟는 힘을 뒷바퀴에 전달하는 체인기술이 아직 발전하지 못한 때라, 자전거의 속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앞바퀴를 뒷바퀴보다 크게 만드는 것 밖에 없었다. 앞바퀴의 지름이 뒷바퀴보다 5배나 큰 경우도 다반사였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건 제쳐두고라도, 자전거에 올라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초창기 자전거의 모습. 체인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앞바퀴의 지름이 뒷바퀴보다 5배가량 컸다. ⓒ Agnieszka Kwiecień / CC BY-SA 3.0


여성들을 억압하는 사회규범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여성이 두 다리를 벌리고 자전거를 타는 건 풍속에 위배되며 단정하지 못하다는 왜곡된 시선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했고, 일부 의사들은 자전거가 여성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그럴듯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옆으로 걸터앉아 타는 자전거가 등장한 적도 있으나 별다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여성 복장도 자전거를 타는 데는 심각한 방해 요소였다. 이런 연유로 여성들은 자전거로부터 한동안 배제되어 있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1880년대 들어서다. 1887년 영국에서 ‘안전자전거’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전거가 등장했다.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같고, 두 바퀴를 이어주는 체인도 갖춘 신상품이었다. 이때부터 말 그대로 ‘자전거 열풍’이 휘몰아쳤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1890년대는 자전거 열풍이 정점에 이른 시기로 꼽힌다. 문학작품을 비롯해 음악, 만화, 그림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자전거는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1897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안전자전거가 200만 대나 팔려나갔다. 30명당 한 대꼴이다. 수많은 자전거 생산업체가 난립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당 가격도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1896년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그레이트바이시클 전시회’란 이름의 박람회는 전시 공간이 모자라 야단법석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실상 ‘금녀의 영역’이었던 자전거가 여성들에게 문호를 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897년 미국 자전거협회에 등록된 여성회원 수는 순식간에 2만 2,000명으로 불어났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가리켜 ‘신여성’이라 부르는 풍조도 유행했다. 자연스레 자전거는 여성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촉매제 노릇을 했다. 여성을 옥죄는 사회규범을 몰아내고 전통적인 복장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남성(마차)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이동의 제약을 이겨내는 여성의 이미지와 자전거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두 다리로, 두 바퀴로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남녀평등의 알레고리였다. 앤의 시대, 몽고메리의 시대가 그랬다.


1890년대 들어 자전거의 대중적 보급과 여성운동의 확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여성들에 게 자전거는 제약에서의 해방, 이동의 자유를 의미했다.


작품 속 앤은 작가 몽고메리의 분신이었을까? 둘은 닮은 점이 참 많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상상력으로 이겨낸 몽고메리는 나고 자란 프린스에드워드섬에 있는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교사로 일했고, 1897년부터 잡지에 단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고 에이번리 학교의 선생님이 된 앤처럼. 열네 살 때 학교에서 만난 네이트 록하트(Nate Lockhart)라는 남자아이와 즐거운 경쟁을 벌인 사실도 경쟁자 길버트와 티격태격하는 앤과 판박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점도 꽤 많다. 작품 속에서 주근깨투성이에 빨간 머리를 한 앤이 길버트한테서 “홍당무, 홍당무”라는 놀림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졌으나, 같은 반 남학생을 빨간 머리라고 놀려댄 건 실은 몽고메리 본인이었다. 앤의 부모가 어린 앤을 남겨두고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몽고메리의 아버지는 몽고메리의 어머니가 죽은 뒤 어린 딸을 남겨두고 재혼해 멀리 떠나버렸다. 어머니가 죽고 4일 뒤에 아버지마저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향한 작가 몽고메리의 반감이나 의도적인 복수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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