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괜찮아>
자기긍정감과 자기만족의 차이
저는 강연에서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가 사용하는 ‘자기긍정감’이라는 말을 다시 검토하고, 그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어떤 강연에서 은둔형 외톨이 경험이 있는 젊은이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내용인즉슨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자기긍정감과 ‘자기만족’은 결국 같지 않은가요?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선 ‘자기만족’은 ‘이렇게 되고 싶다’라든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클리어하면 자기애가 충족되면서 경험하는 만족입니다. 하지만, 자기만족에는 기준이 있으므로 이를 달성하지 않으면 자기애가 충족되지 않아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나 기준을 제시하고 아이가 이에 부합할 때 만족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만을 느끼는 부모들이 있죠. 심한 경우 기준에 맞지 않는, 즉 기대를 저버린 아이에 대해 싫다, 그런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거부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드는 자신에게는 만족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런 내가 싫다!’면서 거부하게 되는 것. 자기만족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기만족’이라고 가볍게 말해 버리는 순간 이면에서는 부정적인 ‘자기혐오’, ‘자기거부’가 생깁니다. 이것과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자기긍정감은 전혀 다릅니다. 기준을 충족했으니 ‘괜찮다’고 안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을 포함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약점’, ‘결점’까지도 포함해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칭찬의 함정
오늘날의 경쟁 사회에서 ‘칭찬한다’는 일은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칭찬을 받으면 기쁘십니까? 긍정적 영향이 작용한다고 느끼십니까? 저도 어릴 때는 꽤 착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거든요. 여기서 가령 제가 여러분들로부터 ‘다카가키 선생님 말씀은 정말 이해가 잘돼요, 훌륭한 강연입니다’라는 칭찬을 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물론 저는 기쁘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제가 소위 말하는 ‘착한 아이’라면 ‘또 칭찬받을 수 있는 강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발전시키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강연에서의 실패를 두려워하겠죠. ‘착한 아이 강연’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제 강연은 불가능해집니다. 자칫하면 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비위를 맞추는 ‘착한 아이’, 말하자면 타자의 강연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자기긍정감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될 테고요.
여러분은 혹시 칭찬받는 건 좋지만, 다시 칭찬을 받아야만 한다는 압박을 느낀 경험이 있지 않은가요? 일단 칭찬받고 나서 다시 칭찬받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만 한다’는 함정에 빠지는 아이가 많습니다. 이런 ‘착한 아이’가 많다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착한 아이’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메시지가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받은 경험
그런 ‘착한 아이’의 함정에 빠져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수도 없이 봐 온 저로서는 ‘칭찬으로 자기긍정감을 길러 주면 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칭찬보다는 ‘용서’가 훨씬 중요하니까요.
‘착한 아이’는 좌절과 실패를 받아들임으로써 강박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안심하게 됩니다. 경쟁에 시달리며 자란 아이들에게는 ‘안심’이 가장 부족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은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등교거부를 하는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자기긍정감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해 왔습니다. ‘인생의 구명튜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기긍정감이 의미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 로 표현되는 안도감입니다.
우리가 아기였을 땐 모두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았습니다. 당시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아마도 ‘우리 아기, 쉬야 해서 기저귀가 차갑겠네? 옳지, 옳지, 지금 기저귀 갈아 줄게. 옳지, 옳지’, ‘응가 했어? 기분 나쁘겠네? 옳지, 옳지, 기저귀 바로 갈아 줄게. 옳지, 옳지’라는 말씀과 함께 기저귀를 갈아 주셨을 겁니다. 저도 제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까요.
이 ‘옳지, 옳지’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대소변을 잘 볼 정도가 되었구나, 착한 아이네’라고 평가하는 ‘옳지, 옳지’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쉬야를 했으니까 기저귀가 차갑겠구나? 알았어’, ‘응가해서 기분이 나쁘겠구나, 그래’ 하는 의미입니다. ‘쉬야를 해도, 응가를 해도 상관없어, 괜찮아’ 하는 ‘옳지, 옳지’인 겁니다. 제가 말하는 자기긍정감에서의 ‘긍정’이란 이렇듯 ‘공감’과 ‘용서’의 의미가 담긴 ‘옳지, 옳지’입니다.
만약 아기에게 명확한 의식이 있다면, ‘기저귀에 대소변을 봐서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나도, 옳지, 옳지 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 성가시기 짝이 없는 나지만,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은 거구나’ 하며 안심할 수 있겠죠. 이와 같은 일로 상징되는 ‘배려’나 ‘보살핌’의 경험이 축적됨으로써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내면화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옳지, 옳지’를 말할 힘이 길러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