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괜찮아>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말은 제 임상 경험 속에서 태어난 말입니다. 카운슬링으로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감성 체계나 세상을 사는 방식을 가진 분들도 계셨기에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예컨대, 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뒤의 발소리가 들려오면 나에게 뭔가 위해가 가해지는 것 아닌지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이런 마음이 내 일상적 심리 상태다’, ‘나는 늘 남들에게 맞춰 주기만 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굳이 맞춰 주지 않더라도 남들이 받아들여 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측에 불과하며, 정작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맞춰 주지 않으면 거부당해 나 자신이 사라질 수도 있는 공포의 세계다. 맞춰 주지 않아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추궁하듯 쏘아붙이는 말을 들으면 공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안해진다. 비판적인 이야기를 듣더라도 나의 인격이 부정당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은 이렇게 해 보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는 안 된다거나 모든 것을 부정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뭔가 비판받으면 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존재 수준의 불안
제가 상담했던 이들 가운데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감성 체계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 수준’에서의 안심감 결여입니다. 세계는 위협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늘 겁에 질려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는 신뢰가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 어떤 ‘부담감’이나 ‘죄책감’에 휩싸여 타인의 기대에 맞춤으로써 어떻게든 자신의 설 자리를 확보해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또 마음대로 ‘No!’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자신이 공격당하고 부정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안심감과 신뢰가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느꼈습니다. 이를 후에 자기긍정감이라 부르며 ‘인생의 구명튜브’에 비유하게 되었고요. 이 자기긍정감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아이들과 청년들을 보면, 앞서 든 예와 대단히 비슷하게 세상을 사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안심감과 신뢰가 있으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명확하게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느낀 것을 표현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많은 아이와 청년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안심감과 신뢰가 결여된 나머지 스스로 생각하거나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 ‘뭔가’는, 이를테면 자신의 가정, 자신이 속한 곳의 평화, 친구 관계, 집단의 분위기, 혹은 착한 아이로서의 자기 이미지 등이겠지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의 불화를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착한 아이’가 되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서 관계를 회복시킴으로써 붕괴된 가정을 지키려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 ‘착한 아이’로서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아이들도 있죠.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나 자체로 인정받으며 따뜻함과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부재한 가운데 작은 성냥불로 추위를 녹이려던 성냥팔이 소녀처럼 타인의 ‘OK’로 순간의 안심감을 얻어 보려 발버둥치는 ‘착한 아이’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를 탓하는 아이들과 청년들
현재 우리 아이 중 대다수가 자신의 삶이 힘겹고 괴로운 것은 ‘세상에서 뒤처진 내 탓’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저는 ‘요즘 아이들은 뭐든 사회 탓, 남 탓을 한다’는 말을 조금도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아이 중에 그런 아이는 없습니다. 만에 하나 겉으로 그렇게 보이거나 그런 특징을 보이는 젊은이가 있다 하더라도, 뭐든 자기 탓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괴로움을 거꾸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요.
자신의 괴로움을 세상에서 뒤처진 ‘모자란 나’의 탓으로 돌리기는 하지만, 이것을 남들 앞에서 표출하는 데에는 부담을 느낍니다. 그렇다 보니 괴로움이 해소되지 못하고 자기 안에 쌓이는 거죠. 하지만, 끝내 한계에 부딪혀 괴로움이 분출되는 순간이 옵니다. 이런 상황은 아이들이 안심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인간관계의 부재를 반증합니다.
특히 괴로움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사려 깊은 인간관계의 결여를 보여주지요.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자기긍정감을 갖지 못하는 건 이런 상황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아이들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에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