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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19. 2018

01. 편할 것인가, 변할 것인가?

<교양인을 위한 고전 리더십>



‘참고 견뎌라’, ‘고진감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은 너무 많이 들어 별 감동이 없을 것이다. 모두 아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니 너무 진부한 주제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감동이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너무 흔히 듣다보니 공기나 물처럼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춘추전국시대의 리더들을 살펴보면 그 자리에 쉽게 오른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쉽게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도 있지만 그들도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했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리만 높다고 리더가 된 것이 아니다. 

역사는 무슨 일을 했는가로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사서에 이름을 올리려면 참고 견디며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忍은 리더가 자신의 몸을 일으키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공자(孔子)가 진(陣)·채(蔡)의 국경 근처에서 재난을 당해 식량마저 떨어져 제자들이 배를 곯을 때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에 자로(子路)가 들어가 불평을 털어놓았다. 
“선생님께서는 이 지경에도 노래를 부르시니 그것도 예(禮)입니까?” 

공자는 대답도 없이 노래를 모두 마치고 말했다. 
“유(由)야! 군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교만을 덜기 위함이며 소인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다. 이런 깊은 뜻을 누가 알겠느냐? 너조차 나를 알지 못하면서 나를 따라다녀 무엇을 배우겠느냐?”

자로는 그래도 즐겁지 않아 방패를 들고 춤추다가 세 곡이 끝나자 나가버렸다. 그 후로 7일 동안 공자는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자로가 다시 원망감에 공자를 뵙고 “선생님의 연주는 지금 때가 맞는 것입니까?”라고 불평했다.

이번에도 공자는 대답하지 않더니 음악이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유야! 옛날 제환공은 거에서 곤액을 치를 때 비로소 패자가 될 생각을 했고 구천은 회계산으로 쫓겨갔을 때 패자를 꿈꾸었으며 진 문공은 여 씨의 핍박을 받을 때 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폐를 당해보지 않으면 생각이 원대하지 못하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어지지 않는다. 어찌 너는 지혜롭다면서 이 때를 찾아내지 못하고 불우하다고 여기느냐?”
그러고는 일어섰다. 

이튿날 그 곤액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자공이 수레 고삐를 잡아 몰면서 “친구들이여! 선생님을 따르다가 이런 곤경에 빠졌으니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속담에 이르지 않았느냐? ‘세 번 팔을 꺾어봐야 양의(良醫)가 된다.’ 무릇 진나라와 채나라 국경의 일은 나에게 큰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너희도 나를 따랐으니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남의 임금이 된 자가 곤경에 처해보지 않으면 왕도를 이룰 수 없고 선비로서 곤액을 겪어보지 않으면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들었다. 옛날 탕(湯)은 여 땅에서 곤액을 당했고 문왕은 유리에 유폐당했으며 진 목공은 효산에서 곤액을 당했고 제환공은 장작에서 곤액을 당했으며 구천은 회계까지 쫓겨갔고 진 문공은 여희의 핍박을 받았다. 따라서 곤액이 도를 낳는 것은 찬 것이 따뜻한 것을 낳고 따뜻한 것이 찬 것을 낳는 이치와 같다. 현자만 이것을 알며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역(易)에 ‘곤은 형통하고 곧게만 한다면 대인에게는 길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말해주어도 믿어주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바로 성인이 남에게 일러주고 싶어도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정말 맞는 말이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어려움을 알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현자만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실을 말해주고 싶어도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보통사람들은 정말 이 사실을 모를까? 나는 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견디지 못할 뿐이다. 포기하면 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편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한자 편할 편(便)자는 변소 변자, 대소변 변자로도 읽을 수 있다. 왜일까?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인생을 너무 편히 마음대로 살면 나중에 똥 같은 존재가 된다는 뜻 아닐까? 10대 때 인생을 편히 살면 20대 때 똥이 된다. 20대 때 인생을 편히 살면 30대 때 똥 같은 존재가 된다. 평생 편히 살면 나이를 먹어도 똥처럼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 똥도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거름의 역할은 나름대로 소중하다. 거름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똥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100명 중 100명 모두 꽃이 되고 싶지 똥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내가 꽃 같은 존재가 되어 거름 역할을 할 때 그것이 보람 있고 가치가 있고 뜻 있는 일이다. 인생을 엉망으로 살아 결국 똥 같은 존재밖에 안되어 어쩔 수 없는 거름 역할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진짜 똥은 거름 역할이라도 하지만 인간이 똥이 되면 거름 역할도 못한다. 오히려 없어도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 뿐이다. 인간은 꽃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거름 역할도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변(變)해야 한다. 변할 변자 위의 글자(䜌)는 실이나 말이 헝클어진 듯 사물이 뒤섞인 모양이다. 아래 글자攵는 ‘회초리로 치다’라는 뜻이다. 실이 엉킨 것처럼 엉망인 상태를 회초리로 때려 바로잡는 것, 이것이 변하는 것이다. 즉 변한다는 것은 회초리로 맞는 고통이 따른다는 뜻이다. 고통을 견디는 자와 포기하는 자는 각자 가는 길이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주인공으로 살고 싶은가? 엑스트라로 살고 싶은가? 대부분 주인공으로 살고 싶어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라. 일단 엑스트라들은 잘 죽는다. 칼에 살짝만 스쳐도 죽어야 한다. 분명히 안 맞은 것 같은데 10미터나 날아가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총에 맞아도 칼에 찔려도 절벽에서 떨어져도 산다.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회를 보면 멀쩡히 살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에 맞는 고통, 칼에 찔리는 아픔,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망감을 이겨내야만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포기한다면 인생에서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름을 사서에 남기기는커녕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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