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같이 사는 게 기적입니다>
부부는 싸움을 하면서 전혀 모르던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갈등을 회피하려고 쌓아두었던 불만이 싸울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의 긍정적 기능이기도 하다.
부부싸움에는 여러 기능이 있다. 나를 표현하고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싸우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과 호불호를 주장하기 위해 싸울 때도 있다. 서로 자신의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싸워야 할 문제를 배우자 탓으로 돌리며 싸우기도 한다.
1. 나를 표현하기 위해
부부싸움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기능이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오죽하면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을까. 부부 사이가 좋을 때는 대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싸움을 통해 자기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보통 심기가 불편할 때는 주변이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불평을 하거나 “당신 왜 그래?”라며 시비를 건다. 이럴 때 배우자가 ‘아, 이 사람이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당신 무슨 일 있어?”라고 마음을 읽어주면 싸움이 안 된다.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마워서, 불편한 감정이 많이 가라앉는다. “응, 오늘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라거나 “아니, 뭐 별일 아닌데 약간 날카로웠나 봐” 등의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
그런데 심기가 불편해서 “당신 왜 그래?”라고 하니 배우자가 “왜?”, “내가 뭐, 어때서?”라고 발끈하면 악순환으로 간다. 보통 지적이나 공격을 받게 되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부터 하게 된다.
남편과 마트에 다녀와서 기분이 영 다운된 아내. 빡빡한 살림살이에 사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사지 못하고 돌아와 마음이 좋지 않다. 남편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넋을 놓고 TV만 보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크게 한숨을 쉬니 남편이 힐끔 쳐다본다.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당신 왜 그래?”
“내가 뭐?”
“왜 사람을 삐딱하게 쳐다봐?”
“당신이야말로 삐딱하게 왜 그래? 난 그냥 쳐다봤을 뿐이라고.”
아내는 심기가 불편해서 그걸 표현하려고 시비를 건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 마음을 읽어주기는커녕 자기더러 삐딱하다고 하니 기분이 더 언짢아진다. 아내는 다시 시비를 건다.
“당신이 힐끔힐끔 쳐다봤잖아.”
남편은 억울하다.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 눈 가지고 내 마음대로도 못 해?”
“거봐, 째려본 거잖아.”
남편은 아내에게 “도대체 왜 걸핏하면 시비야?” 하고 묻는다.
부부 관계가 선순환으로 가려면 대화를 할 때 ‘네가 어떻다’고 하지 말고, ‘내가 이렇다’고 해야 한다. “당신은 왜 그래?”라고 지적하는 대신, “내가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라고 말하면 관계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I-Message’로 대화를 하면, 시비를 걸거나 공격을 하지 않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다.
2. ‘나 여기 있어, 나 좀 알아봐줘’
“당신이 째려봤잖아”라는 말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째려보지 말라는 얘기도 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를 존중하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어색하게 하지 말아달라’는 마음이다. 이와 함께 ‘불편한 내 심기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평소에 서로를 잘 알아주지 못한다. 잘해줘도 알아줄까 말까다. 그런데 “왜 째려봐?”라고 상대방을 지적하면서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물론 대부분은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부부싸움은 이렇게 되면, 처음에 말하려고 했던 주제는 어느새 실종된 채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다가 “왜 그렇게 말하느냐”로, 누가 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 내기를 하듯 진행된다. 그 싸움에서 이긴들 상처뿐인 영광이 되고, 진 사람은 복수의 칼날을 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상대방의 까칠한 말에 방어로 반응하지 않고, 그 말에 담긴 마음을 읽어주면 된다. 아내가 “왜 째려봐?” 하면 남편은 “어, 그렇게 보였어? 당신 지금 기분 안 좋은 거야?”라고 말하면 좋다. 이렇게 마음을 알아주면 불편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환상적인 반응이다. 이런 반응을 원해서 시비를 걸고 공격을 한다.
3.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는데, 이러한 마음 중 하나가 판타지다. 판타지를 유지하기 위해 부부싸움도 한다. 집 안의 가구를 어디다 둘 것인가, 화분을 어디다 둘 것인가를 놓고 싸우면 괜찮다. 가구 놓는 걸로 싸우다가 “왜 내 말을 안 듣고 날 무시하느냐?”가 되면 작은 싸움이 작게 끝나지 않는다. 가구나 꽃을 놓는 자리에 ‘나’가 붙으면 싸움만 있고 해결은 없다.
34세에 결혼하여 10년이 지난 지금도 신혼처럼 지내는 소영 씨. 신혼 때 찻잔 세트를 사러 갔다가 큰 싸움을 한 적이 있다. 살림을 다 갖춰놓고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그릇이 모자랐는데, 특히 찻잔 세트가 없어서 불편했다. 남편과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찻잔 세트를 발견해 사려는데, “비싼 물건을 산다”며 남편이 사지 못하게 했다. 예쁜 찻잔은 소영 씨에게 예쁜 가정을 이루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주는 물건이었다. ‘예쁜 가정을 이루는 여자’가 소영 씨의 판타지였다. 소영 씨는 남편이 그 이미지를 깨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남편은 자기네 형편에 찻잔 세트가 너무 비싸다고 여겨 사지 않기를 바랐다. 남편은 신혼에 그런 얘기를 하자니 자존심이 상해 아내를 ‘쓸모없는 물건을 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찻잔 세트가 왜 쓸모가 있는지 소영 씨가 설명하면 할수록 남편은 더 완강하게 “무조건 사지 마라”고 했다. 공방이 오가며 서로 마음이 상했다. 그때 소영 씨는 ‘이 사람이 찻잔 세트 하나 내 마음대로 사지 못하게 하는구나. 이렇게 쪼잔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어 정말 심각하게 헤어져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남편에게는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멋진 남편이다. 그러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멋진 남편’이 남편의 판타지였다. 남편은 자기가 한 말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으면서 아내에게 자기 의사를 강요했다. 이런 싸움은 작은 싸움이어도 작은 싸움이 아니다. 서로에게 찻잔 세트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를 해봐야 본인들이 왜 그렇게 찻잔 세트에 목숨을 걸며 싸웠는지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