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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20. 2018

05. ‘움파룸파’는 어떻게 탄생했나?

<동화경제사>



2월 초하루 아침 10시. 드디어 찰리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웡카 공장 문을 들어섰다. ‘초콜릿의 마술사’라 불리던 창업자 윌리 웡카(Willy Wonka)가 손수 5명의 어린이 일행을 맞이했다. 웡카의 손에 이끌려 둘러본 공장 내부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공장의 심장부 격인 ‘초콜릿 방’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곡 양쪽으로 초콜릿 초원이 펼쳐졌고, 계곡 사이로 ‘갈색의 강’이 흘러 폭포를 이루었다. 거대한 장관이었다. 높은 천장 어디에선가부터 강물 속으로 내려뜨려진 수많은 유리 파이프는 죄다 초콜릿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저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누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저길 보세요. 저게 뭐죠? 움직여요. 어머, 난쟁이들이네요.” 어린이들이 잔뜩 놀란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웡카는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진짜 사람들이란다. 움파룸파 사람들이야.”


로알드 달의 원작을 토대로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년 작)의 한 장면.


꼭꼭 감추었던 웡카 공장의 비밀이 마침내 풀리던 순간이다. 달콤한 초콜릿을 소재로 순수한 동심을 아름답게 그려낸 것만 같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냉혹한 현실세계가 살짝 얼굴을 내비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찰리를 무릎에 앉히고 웡카 공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웡카 씨네 공장엔 수천 명이나 되는 일꾼들이 일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웡카 씨는 갑자기 일꾼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지. 일꾼들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했어. 그런 다음 공장 문을 닫고는 사슬로 단단히 잠가버렸단다.……그리고 몇 달 뒤, 놀랍게도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 기둥이 다시 피어올랐어. 아무도 공장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없는데 말이야.”
  
웡카 공장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비밀을 풀 실마리는 “자신들을 다시 일꾼으로 받아 주리라 기대하고 몰려간 사람들이 잔뜩 실망하고 돌아섰다”는 문장에서 엿볼 수 있다. 웡카가 공장 문을 사슬로 굳게 닫아거는 상황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지은이 로알드 달은 웡카 초콜릿의 제조비법을 경쟁자한테 몰래 팔아넘긴 ‘스파이’의 존재를 스치듯 언급했다. 말하자면, 잘못을 저지른 직원에 대한 경영자의 정당한 ‘징벌’이라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들려준 웡카공장 이야기를 좀 더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풍경이 떠오른다. 집단해고와 공장 폐쇄, 대체인력 투입으로 이어지는 기업의 구조조정 전략, 그리고 일자리를 둘러싼 백인 노동자와 ‘이방인’의 갈등이 어른거린다.
  
무엇보다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세상에 나온 때는 인도와 카리브해 지역 영연방국가 출신자에게까지 영국 시민권이 확대되어, 일자리를 둘러싼 영국 노동시장의 긴장감이 매우 높아진 직후다. 지은이가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간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1960년대 이주노동자의 등장에 따른 영국 사회의 불안감과 반발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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