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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27. 2018

03. 가정자원을 재구성할 합가의 조건

<가정경제 재구성>




‘리터루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결혼을 하면서 세대를 분리하여 독립하였다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리터루족은 ‘돌아가다’라는 의미인 ‘리턴(return)’과 ‘캥거루족’을 합성한 말입니다. 최근 전세난과 높은 주택가격, 자녀양육비 문제로 부모 집에 다시 합가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합가를 한다고 해서 비용을 줄이거나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합가를 하면서 가족 간에 생기는 불편함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각자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가 살림을 합치면 관리비 정도는 절약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항목은 ‘식비’인데, 부모님은 합가한 자녀 가정을 위해 음식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자녀는 그런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외식비를 더 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 관리비로 절약한 돈을 식비에 다 써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죠. 그 외에도 지출이 늘어나는 항목이 생기고, 아낄 수 있는 것도 아껴지지 않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약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세대출 1억원을 받아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한 달 대출 이자만 25만 원, 1년이면 3백만 원이 나갑니다. 50만 원짜리 월세에 살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1년에 6백만 원, 5년이면 3천만 원이 나가죠. 부모님 댁에서 합가를 한다면 써보지도 못하고 없어진 이 돈들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님께서 자녀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기존 전세보증금 등의 여유자금을 통해 금융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합가를 해서 살고 계신 분들이나 합가를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지출 항목을 줄이기보다 ‘세이브 통장’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합가하고 3년, 5년이 지났는데, 경제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례가 많습니다. 합가를 통해 돈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면, 어떤 항목에서 얼마를 절약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관리비 2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 돈은 무조건 저금을 해야 합니다. 20만 원씩 4년이면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결코 작은 돈이 아니죠. ‘세이브 통장’은 나 자신이나 부부, 부모님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통장’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합가를 앞두고 가족이 함께 ‘재무 계획과 목표’를 미리 의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경제의 주거 환경, 인적자원, 시간자원 등을 재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를 대충 넘기지 말고, 분명한 목표와 실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아끼고 돈 모으는 재미를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돈의 방향을 주도하면, 갈등이 생겨도 원만하게 풀어갈 지혜가 생기고, 그로 인해 만족감도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점은 ‘돈이 섞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께 아이를 맡겼다면 ‘양육비’와 ‘생활비’를 따로 구분해서 드려야 합니다. 한 달 용돈을 드리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슬쩍 포함시킨다거나, 부모님이 워낙 손주를 사랑해 돌봐주기로 한 것이니 따로 양육비를 드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육비는 통상적인 수준에서 드리면 될 것입니다. 금액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합니다. 또한 돈을 아무리 자주, 많이 드려도 용도가 확실하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부모님에게 필요한 노후자금, 연금이나 의료실비보험을 도와드리는 ‘용도자금’으로 저축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지출 항목을 좀 줄여 30만 원씩이라도 저축하면, 5년 동안 1천 8백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형제자매에게도 합가를 통해 실질적으로 부모님께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드리고 있는지 알리고, 공유하십시오.


그리고 생활 가운데 생기는 갈등을 풀어갈 ‘생활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식사를 언제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언제 같이 먹고, 따로 먹을 것인지, 청소나 빨래는 누가 언제 담당해서 할 것인지 등 세세한 부분들에 기준과 원칙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자녀 가정이 부모에게 기대서도 안 되고, 부모가 자녀 가정에 짐으로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제가 상담을 했던 한 가정은 합가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미리 이런 기준과 규칙을 정하고, 서로 생활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매우 잘 살고 있습니다.


콕 집어 언제 합가를 하는 것이 적당한지 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무래도 부부가 맞벌이를 할 때가 제일 절실하지 않을까요? 실제 상담사례를 보면, 합가를 고려하는 이유가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녀를 부모님께 맡기고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결혼하고 2~3년 정도에 아기가 생긴다고 하면, 출산휴직(최고 3개월~1년) 기간이 끝나는 시기, 즉 맞벌이를 다시 시작하게 되는 시점이 가장 적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둘이 생기면 맞벌이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둘째를 낳고 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거나 전문성을 키워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합가를 해야 한다면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될 때라든지,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정확하게 시기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런 경우는 ‘기간제 합가’가 되겠죠.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다시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리턴’의 상황이 생겼다면 가정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자원을 잘 활용하되 합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간에 생기는 갈등을 잘 극복하기 위한 원칙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독립해서 나갈 수 있도록 시기를 미리 정하시고 건강하게 유턴(U-turn)하도록 세이브통장을 잘 키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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