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김자혜의 콩트 「라듸움」
오래된 과학소설로 꼽히는 김자혜의 「라듸움」은 1933년 《신동아》에 실린 짧은 글로 한 촌부가 신기한 돌을 서울의 일본 시계포에 1원을 받고 팔고는 횡재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돌은 라듸움 광물로 방사선 치료 능력이 있는 2,000원 값어치가 있는 돌이었다. 이 콩트 속을 걸어보자. 주인공 박 첨지가 어느 객주집 방에 들어섰다. 그는 허리춤의 돌을 보물이나 다루듯 조심스레 자리 밑에 넣었다.
먼저 주인 잡은 장돌뱅이 하나가 유심히 박 첨지를 바라보다가 말을 건넸다.
‘영감! 무얼 그렇게 꿍쳐넣소?’
‘돌이외다. 설도 가깝고 먹을 것도 변변치 않길래 우리 동리에서는 영약같이 여기는 돌이지만 팔려고 나왔더니 종일 돌아 댕겨도 팔기는커녕 미친놈 노릇만 했소.’
박 첨지의 말에 의하면 그 돌이 하도 이상스러워서 혹시 집안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돌을 삶아서 물을 먹이면 즉시 낫고는 했다 한다. 그 집뿐 아니라 그 동리에서는 웬만한 배앓이나 헌 데에는 그 돌이 명의 노릇을 하고 돌아 댕겼는데 지금은 하도 궁하니까 약은커녕 굶어 죽기나 면하려고 돌을 들고 팔러나온 길이라 한다.
장돌뱅이 말을 믿고 박 첨지는 서울로 올라와 돌을 산다고 알려진 어느 일본 시계점으로 들어가 돌의 영향력을 열심히 설명했다. 시계점 주인인 일본인이 두꺼운 책을 펼쳐 그림과 설명을 보더니 야릇한 웃음을 띠면서 흥정을 걸어온다.
‘얼마요?’
‘처분해줍쇼.’
‘일원 좋소.’
‘영감! 이원만 줍쇼.’
결국 1원짜리 지폐를 받아 쥔 박 첨지는 행복감에 젖었다. ‘미친놈’이란 욕을 먹고 다니던 차에 1원이라는 큰돈을 받았으니 횡재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1원을 10전짜리 10개로 바꾸어 장돌뱅이 손에 쥐어주었다.남은 돈을 돌 대신 꽁꽁 싸서 허리춤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 박 첨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돌았다.
바로 그때 일본 시계포에서는 광물분석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가져간 돌 속에는 라듸움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그 돌의 시가는 약 이천 원 가령이나 되겠다는 것이다. 주인은 자기 철궤에 이천원이 일원짜리 지폐 대신으로 들어올 것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박첨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구십 전만 단단히 쥐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 짧은 콩트 속에 몇 가지 과학을 물을 수 있다. 여기에서 ‘라듸움’이라 부르는 라듐(radium)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 어떤 현상을 보고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다고 했을까?
라듐은 원자번호가 88인 알칼리토금속류(칼슘, 바륨 등이 이에 속한다.) 중 한 원소로 자연계에는 4개의 동위원소가 존재하며, 모두 방사선 붕괴를 한다. 라듐은 1898년에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가 발견했다. 이 부부는 우라늄광에서 우라늄을 제거하여도 나머지가 방사능을 보여줌을 관찰하였다. 이들은 분리과정을 계속 거쳐 거의 순수한 바륨(밝은 녹색 불꽃 반응) 속에 심양홍색 분광선을 보여주는 새로운 원소가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분광선은 전에 보고된 바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라듐이 우라늄보다 300만~500만 배나 더 강한 광선을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라듐 광선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리관 벽면을 밝게 빛나게 하며 대낮에도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신비한 일이었을까! *
1903년에 앙리 베크렐과 퀴리 부부는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마리 퀴리는 다시 1911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사이 피에르 퀴리는 어처구니없게도 1906년에 마차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퀴리 부부의 업적은 과학사에서 영원히 빛날 일이지만, 자연방사능이라는 라듐의 특이한 성질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망상과 장삿속이 세상을 뒤흔들어버렸다. 퀴리 부부가 10여 톤 되는 우라늄 광석에서 1g 정도의 라듐염을 얻은 것은 1898년 11월 말경이었고, 이 놀라운 발견을 그 다음 달 프랑스 과학 한림원에서 발표하였다. 라듐이라는 이름은 1899년부터 사용하게 되었는데, 에너지를 광선(ray) 형태로 방출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믿지 못할 라듐의 광기
베크렐, 퀴리 부부와 원자구조를 밝힌 어니스트 러더퍼드 등은 원자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캐내기에 여념이 없었으나, 스스로 빛을 내는 라듐의 발견은 여러 가지 웃지 못할 희비극을 불러왔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믿지 못할 낭설들만 난무했다. 라듐이 내는 빛의 에너지로 인류의 에너지 문제 해결은 물론, 인류를 폐허로 몰고 갈 무시무시한 전쟁무기 개발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떠돌았다. 단순한 소문으로뿐만 아니라 언론까지 가세하여 잘못된 정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졌다.
라듐을 사용해 맹인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주고, 라듐 방사선으로 한센병이나 성병 등도 치료할 수 있는 등 의료적 이용가치도 높게 평가되는 상황이었다. 또 라듐 광선을 화학반응에도 사용할 수 있어서, 예컨대 물을 분해해 수소와 산소를 얻을 수 있다고도 믿었다. 한편에서는 라듐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세계시장에서 라듐의 가격이 1902년에서 1905년 사이에 20여 배로 뛰자, 투기꾼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했다. 덕분에 마리 퀴리에게 라듐이 들어 있던 우라늄 광석을 제공한 광산이 호황을 맞고, 다들 우라늄 광산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방사선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의사나 피부미용사들은 피부 흉터나 반점, 피부병과 습진까지 라듐 광선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을 정도였다. 그 밖에 붕대, 연고, 치약뿐만 아니라 여인들의 각선미를 살리는 비단 스타킹에도 라듐을 첨가했다. 라듐이 들어 있는 음료수를 건강음료로 계속 마셨다는 어느 브라질의 한 거부 얘기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미국 뉴저지 주의 한 시계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 여럿이 생명을 잃었고, 동물들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라듐이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준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발광도료에 라듐이 섞여 있던 것이다. 드디어 1931년에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던 라듐의 시판이 금지되었다. 마리 퀴리는 1934년 지나친 방사선 노출로 인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라듐 1g은 매초 370억 번의 분열을 일으키는 엄청난 방사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라듐에는 자연계에서 4가지 동위원소들이 발견되며, 가장 많이 차지하는 원자량이 226인 Ra-226은 반감기가 1602년으로 알파(a) 붕괴로 라돈이 된 후 더 붕괴된다. 이때 감마(c)선을 내보내 의료용과 공업용(방사선 사진법, 발광도료) 등에 사용되어왔다. 「라듸움」 속에서도 우리나라에 조차 라듐이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된 예를 박 첨지가 얘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라듐 함유량이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일본의 야마나시현의 호구토(北杜)에 있는 한 온천에는 오늘날도 류머티즘, 통풍, 당뇨병 환자는 물론 암환자가 특히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방사선이 많이 나오면 오히려 암을 유발할 터인데….